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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연수 Nov 16. 2023

행복과 안전을 지키는 착한 질서

              

1. 질서란 무엇일까요?


자연의 순리가 만물이 함께 사는 지혜라면, 질서는 인간이 모여 사는 기본입니다. 사전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질서란 사물 또는 사회가 올바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지켜야 할 일정한 차례나 규칙”  그리고 다음사전에서는 관등이나 직책의 상하관계에서 생기는 복종과 예절 등의 질서를 ‘위계질서’라 하고, 교통의 안전을 위하여 차와 사람이 통행하는데 마땅히 지켜야 하는 질서를 ‘교통질서’, 사회의 일반 구성원에게 두루 관계되는 질서를 ‘공공질서’, 그리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안전하고 사회의 모든 질서가 바로잡힌 상태를 ‘안녕질서’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유통질서, 법질서, 경제질서 등 수많은 분야의 질서가 있습니다. 분야마다 내용은 다르지만 모든 질서의 공통점은 “지켜져야 할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질서가 지켜지지 않으면 반드시 피해가 발생합니다      

질서를 지키지 않으면 혼란이 생기고  그로 인한 사회적 비효율은 비용을 발생시킵니다. 그 비용은 아무 죄도 없는 사회의 구성원, 즉 우리 자신이 부담하게 됩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직접적으로는 세금에서, 간접적으로는 사회적 손실로 우리도 모르게 빠져나가는 비용은 의외로 천문학적인 규모입니다. 그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왜 아무 상관도 없는 우리가 어렵게 번 돈으로 메꾸어야 하는 것인가요? 그렇지 않아도 각종 공적 부담금에 허리가 휘는 상황인데요.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질서를 지키지 않는 것이 비용이고 그 비용을 우리가 부담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저지르는 사람이나 보고 있는 사람이나 단순히 양심상의 문제, 도덕적인 문제로 치부하는 한 이것을 감시하고 바로잡기 위해서 공권력 운영 등 또 다른 비용이 들어간다는 점입니다. 경악할만한 문제는 자신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법질서를 위반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잘못으로 남에게 비용을 유발하는 것을 넘어서 남의 것을 강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질서를 지키지 않는 것을 두고만 보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공권력은 그에 대한 합당한 비용을 빠짐없이 징수해야 합니다. 법질서를 지키는 것은 우리의 양심을 지키는 것을 넘어 우리의 지갑을 지키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질서를 지키지 않으면 위험이 초래됩니다 

사고로 인한 피해는 돈으로는 회복할 수 없는 신체의 손상과 재산의 손실과 생명의 상실로 나타납니다. 더구나 그 회복할 수 없는 피해는 저지른 사람은 물론이고 아무 죄도 관계도 없는 선량한 사람에게도 발생합니다. 청천벽력이지요. 중요한 사실은 그 선량한 사람이 자신이나 자신과 관계된 사람이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소한 잘못으로 당하는 대가치고는 너무도 감당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문제는 저지르는 사람이나 죄 없이 당하는 사람이나 그 씻을 수 없는 결과를 불러오는 시작이 아주 사소한 잘못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쉽게 저지르게 되고 아무 일 없으면 그만이라는 데서 반복성이 강합니다. 한번 위반한 사람이 반복적으로 쉽게 위반하고 점점 위반의 내용은 대담해지고 그에 비례해서 위험도는 커집니다. 그리고 이 사소한 위반은 전염력이 강해서 잠시만 그대로 두면 쉽게 번져 나가고 급기야는 지키는 사람이 눈치를 봐야 되고 더 나아가 지키는 사람이 눈총을 받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그때부터는 위반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하게 되는 상황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어느 수준에 있는 것일까요? 

    

질서는 편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한때 우리 사회 질서운동의 캐치프레이즈가 ‘질서는 편하고 아름다운 것’이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과연 지금도 질서는 편하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천상의 옥음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요? 질서가 편하기 위해서, 수준 높은 도덕사회를 위해서 존재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인구 5천만의 시대, 자동차 2천만 대 시대, 세계 12위 경제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물동량과 비즈니스 활동이 밤낮없이 팽팽 돌아가는 시대, 높은 민주화 수준이 이룩되어 생각과 활동의 자유도가 거의 무한적으로 확대되고 그에 따른 이해관계와 갈등정도도 그때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질서는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지키지 않으면 죽거나 다치거나 크게 손해를 보거나 왕따를 면치 못하는 현실이 된 것입니다. 자동차가 생활의 필수 장비인 지금은 양보가 미덕이 아닙니다. 순서와 차례를 지켜 주어야 합니다. 남의 차례를 가로채서도 안 되지만 내 차례를 양보하는 것도 이제는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체의 교통 흐름이 깨질 수도 있고 내 뒤에 정말로 급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질서는 필수사항입니다     

질서는 필수사항입니다.

그리고 질서는 행복한 사회가 되기 위한 중요한 전제조건 중의 하나입니다. 

질서가 필수사항인 이 시대, 대한민국의 질서상황과 우리 국민의 질서의식은 어디에 서 있을까요? 우리가 『88 올림픽』과 『2002 월드컵축구대회』를 개최하던 때와 비교하면 괄목할만한 진전을 이룬 것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긍지이고 자랑입니다. 그러나 선진국, 특히 국민행복을 이룩하고 있는 진정한 선진국과 비교하면 많은 격차가 존재함을 또한 부인할 수 없습니다. 비교를 위해서, 그들을 따라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진정한 평화와 행복을 위하여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의 행복과 안전을 지키는 『착한 질서』를 위한 사회적 운동을 한번 제대로 시작해 봄이 어떨까요?            

2. 행복한 사회     

대한민국은 인구폭발을 막고 국토의 산림녹화를 성공시키면서 이룩한 알찬 경제성장, 그리고 세계가 경이로워하는 정치 민주화까지 명실 공히 세계역사에 기적으로 기록될만한 모범적인 발전을 성취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장 중요한 목표인 삶의 행복과 만족을 잃어버렸습니다. 무한 경쟁의 삶의 방식과 물질에 대한 끊임없는 탐욕이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만족의 DNA를 몰아내고 행복과 공존의 따뜻함이 존재할 자리를 밀어 내 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공동체적 요소도 행복을 느낄 수 없게 하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입니다.  

    

어떤 삶이 행복한 것일까요?     

행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돈이 많으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도 건강을 잃으면 돈도 소용이 없습니다. 큰 집에서 살아도 가족 간에 불화가 있으면 불편해도 작은 집에서 화목하게 사는 것만 못합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서로 간에 직접 간접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삽니다. 건강도 돈도 화목한 가정도 잘 갖추어졌어도 이웃이 또는 직장 상사가 스트레스를 주면 사는 것이 힘듭니다. 그래서 행복의 기준은 달라도 행복의 조건은 대동소이합니다.      

행복의 조건 중 첫째는 자신의 문제로서 ‘만족할 줄 아는가’입니다. 영국작가 찰스 H. 스파존은 사람의 행복은 얼마나 많은 소유물을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잘 즐기느냐에 달려 있다고 했습니다. 행복은 자신이 결정하고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지요. 이런 점에서 교육이 중요합니다. 삶의 목표와 삶의 즐거움을 일깨워 주는 것이 교육입니다. 오로지 출세, 오로지 승리, 더 나아가 오로지 많이 가지는 것만을 주입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하여 왜 사는지도, 무엇이 삶의 즐거움인지도 모르는 채 무한경쟁의 톱니바퀴 속으로 우리를, 우리 아이들을 던져 넣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합니다.     

행복의 조건 중 두 번째는 사회적 환경적 문제로서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가‘잘 되어 있는가’입니다. 여기에서는 사회의 구성원이 추구하는 바가 어디에 있는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자연을 사랑하고 법과 질서를 잘 지키며 더불어 함께 사는 마음을 기리는 가운데 맡은 바 소임에 책임을 다하는 사회라면 어떨까요? 모두가 다른 가진 바 재능을 바쳐서 생활이 영위되고 그것을 존중받으며 자랑스럽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 사회 구성원들은 얼마나 행복하고 삶은 즐거울까요.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사회는 누군가가 제공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안에 따라 많은 원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초점을 두고 정리해 보면 역시 행복의 조건으로 돌아갑니다. 개인적인 조건인 만족에 관하여 생각해 보면 물질에의 만족은 그 끝이 없습니다. 결코 객관적으로는 만족될 수 없는 것이지요. 더구나 그것은 탐욕으로 이어지고 격차로 나타나서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사회를 살기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갑니다. 이는 사회적인 행복의 조건과 불가분의 관계로 이어집니다. 삶의 행복과 사는 즐거움을 찾는 방법과 탐욕을 억제시키는 방안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조사기준에 따라 다르지만 행복지수 10위권에 드는 나라는 하나같이 패권보다는 내실을, 성장 자체보다는 삶의 질을 중요시하는 나라이고 자연을 잘 보존하고 사람다운 관계를 중시하는 국민들입니다. 일정 단계 이후의 성장은 성장 그 자체에 매달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며 그 사회의 성숙도에 달려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것은 우리가 행복한 삶을 위하여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옳다고 생각하고 가야 할 길이라고 정하면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내고 달성하는 뛰어난 목표의식과 오성을 가지고 있는 국민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진정한 목표는 삶의 행복이고 그것은 삶의 내용의 다양성과 방식의 올바름에서 나온다는 것을 함께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만 작금의 모습 중 안타까운 것은 실망과 분노에 지쳐 냉소와 포기로 길을 잡고 있는 일단의 풍조입니다. 이를 극복하고 제대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우리 사회가, 국가가 올바른 방향을 잡고 달라지는 가능성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 순간 우리 사회에는 희망의 물결이 일어나고 결국 모두가 희망을 가지고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변화는 빨라지고 상황은 정리되면서 우리 세대 안에 행복의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영원할 것 같던 빈곤을 극복하고 권력의 압제를 떨쳐 낸 것처럼 말입니다. 다시 강조하건대 이것을 좌우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정치가, 교육이 올바른 방향을 잡는 것입니다.  

    

국가가 올바른 방향을 잡고 달라지는 가능성     

국가가 올바른 방향을 잡고 달라지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방법은 세 가지입니다. 

단, 이  세 가지는 함께 가야 합니다.      

하나는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의 재정립입니다. 경제만을, 성장만을 우리가 가야 할 길인 것처럼 주장하고 몰아가는 것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배고픈  기아의 시절에 세워진 이 절대가치는 선진사회 진입의 시대에는 그 고집스러움이 중대한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가치의 기준을 경제성장이라는 단일 기준에서 벗어나 공존과 행복에 기반을 둔 다양성에 두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새로 듣고 바로 방향을 설정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교육입니다. 오로지 이기기 위한 훈련을 시키는 교육이 아니라 공존의 방법과 삶의 즐거움과 행복을 찾는 다양한 방법을 알려주는 교육을 시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10%를 위한 경쟁에 뛰어들지 않아도 되는, 뛰어들 필요가 없는 아이들까지 의미 없는 무한경쟁의 도가니에 밀어 넣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선생님과 학부모가 먼저 그리고 함께 바뀌어야 합니다. 그를 위한 선순환의 고리를 만드는 방법은 정부가 찾아내야 할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우리 사회의 유지입니다. 양 삼승 변호사는 스스로 분명해 보이는 법과 질서, 즉 사회의 질서유지에 관한 법규와 타인에 대한 배려와 관련된 법규의 집행에는 '예외가 없어야 한다'라고 주장합니다. 모두가 분명하다고 인식하는 것에서 무너지면 다른 것은 당연히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기초질서가 좋은 사회를 탄탄하게 받쳐 주는 기반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것이 제대로 되면 변칙과 반칙이 통하지 않게 되고 나아가서는 탐욕이 설 자리를 없애게 됩니다. 변칙과 반칙에 의하지 않는 결실은 존중받고 선망의 대상입니다.

그리고 소임을 중하게 여기는 데까지 그리고 정직의 범위 내에서 사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데까지 가야 합니다. 이것은 국가의 소임이고 지도자의 책임입니다.  

             

3. 안전한 사회     

우리는 끊임없이 안전을 위협받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위험은 인간이 만들어 내는 것이며 사고는 인간세상에서만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수는 일찍이 자연의 제어에서 벗어나 급격하게 늘어가고 있습니다. 지구인구가 10억 명을 돌파한 것은 1800년으로 추정되며 이후 160년이 지난 1960년에 30억 명을 넘었고 60억 명을 돌파한 것은 1999년입니다. 출생률이 현 수준을 유지할 경우, 2050년에는 90억 명, 2100년에는 250억 명까지도 늘어날 수 있다고 인구학자들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지구촌 수준의 각성과 대응이 있지 않는 한, 인간의 가치는 떨어지고 생존경쟁은 치열해질 것이며, 이 많은 인구가 먹고 쓰고 개발하고 해치는 과정에서 자연은 훼손되고 생태 균형은 깨져서 기후변화가 심화되어 파국으로 향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또한 한 사회 울타리 안에서도 인구가 많아진다는 것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아지고 인간관계도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관리가 어려워지는 만큼 위험도 커집니다. 앞으로는 어느 사회가 질서 있고 안정되게 유지되는가에 따라 험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맘 편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느냐가 결정될 것입니다. 불안과 불신 속에서는 반목과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고 너나없이 제 살길만 찾는 것이 당연시되기 쉽습니다. 그러면 질서는 무너지고 사회기강은 흐트러지면서 크고 작은 사고가 빈발하게 됩니다. 결국 질서는 우리 사회가 안정되고 신뢰 속에 운영되고 있느냐의 바로미터이자 밝은 미래를 가지고 있는가를 가늠할 수 있는 가늠자입니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그리고 COVID-19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그리고 코로나는 우리 사회 깊숙이 내재되어 있는 수많은 위험 가운데 드러난 빙산의 일각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최근의 연이은 위험의 실체를 경험하면서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병리현상을 걱정합니다. 흔히 사고는 어쩔 수 없이 발생하고 피해자는 불운을 위로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고의 실체를 보면 수많은 필연의 퍼즐조각이 완벽하게 모여져야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수많은 퍼즐조각 가운데 하나만 없어도, 하나만 맞지 않아도 일어날 수 없는 것이 사고입니다.       

세월호 참사의 경우 오랜 세원에 걸쳐서 수많은 적폐가 전방위적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선주의 탐욕이 오랜 세월, 사고를 부르는 수많은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는 동안 단 한 번도 제지하거나 바로 잡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부정부패와 무책임 그리고 감시감독 시스템의 붕괴였고 더욱 한탄스러운 것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모럴해저드의 만연입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기강이 총체적으로 무너져 있다는 반증으로 사회기강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우리 사회는 커다란 위험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비록 사고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체제적, 사회적 위험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메르스 사태는 돌발적인 위험상황에 대처하는 우리 사회 체질의 시험이었습니다. 세월호 참사라는 뼈저린 대가를 치르고 난 직후라는 점에서 우리의 우려는 컸습니다. 사고나 위험은 예고도 없고 정해진 형식도 없는 것입니다. "체질화된 좋은 역량"만이 옳게 대처를 할 수 있고 신뢰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사회적 수준을 의미합니다. 


사회적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질서 수준’이 아닐까요? 

사회기강은 질서에서 나옵니다. 질서는 지켜야 하는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법질서, 경제질서, 교통질서, 사회질서 등 질서가 바로 서있다는 것은 그 사회가 건강하다는 것을 말해줄 뿐만 아니라 그 사회가 믿음, 즉 사회적 신뢰의 기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회가 잘못되어 가는 것을 아무도 용납하지 않는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사고나 위험 같은 비정상적인 일이 일어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혹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해도 실수를 인정하는 믿음을 보여줄 것입니다.


그러한 질서의 시작은 어디에서부터 일까요? 

           

4. 『착한 질서』를 위한 첫걸음     

착한 질서     

『착한 질서』란 우리의 안전과 행복을 지켜 주는 큰 질서를 말합니다. 질서는 사소한 것 같아도 질서가 무너졌을 때 그 사소한 것이 우리의 공동체의 안녕을 깨뜨리고 위험을 초래하며 급기야 사람들은 불안하며 그 사회에서 사는 것이 스트레스가 되어 행복감을 상실하게 됩니다. 독야청청이란 상상할 수 없습니다. 도시의 공기가 온통 오염되어 있는데 우리 집 정원에 나무가 많다한들 건강을 잃는 것을 피해 갈 수 없는 이치와 같이 아무도 질서가 무너진 사회에서 영향받지 않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착한 질서운동     

『착한 질서』운동이란 건강한 사회로 돌아가는 노력입니다. 

우리 사회에 대한 믿음의 회복을 통해서 질서 지키는 일이 즐거움이 되고 나아가서는 스스러운 일상이 되는 것입니다. 질서가 바로 서면 사람들은 안심할 수 있게 되고 우리 사회에 대한 신뢰도 깊어지는데 이는 다시 거부감 없이 질서를 지키게 만드는 선순환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다른 방향으로 사람들의 우리 사회에 대한 신뢰가 깊어지면 의심과 주저 없이 질서를 지키게 됩니다. 무엇이 먼저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둘 다 함께 시작되고 함께 진전을 이루면서 상승작용을 이루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따로 가면 어느 하나가 잘되는 다른 하나를 끊임없이 끌어 내려서 진전을 이루기 힘듭니다. 애써서 올려놓으면 어느 사이에 도로 제자리가 되고 마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 사회의 믿음의 회복     

우리 사회의 믿음의 회복은 오직 큰 부의 축적만이 행복으로 잘 못 알고 있는 상황을 정리하고 다양한 행복의 내용과 거기로 가는 다양한 길을 인식하게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납득하게 할 수 있으려면 우리 사회가 공정한 사회임을 대다수의 사람들이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한 사람이 권력도 명예도 돈도 건강도 즐거움도 한꺼번에 거머쥐는 것이 가능한 사회이거나, 돈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사회는 공정하지 못한 사회입니다.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순간 그 사람을 제외한 대다수는 불만과 스트레스가 쌓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독식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회비용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를 선택할 때는 반드시 다른 선택을 포기해야만 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고 인간세상의 순리입니다.      

공정한 사회는 기회비용이 살아있는 사회입니다. 탐욕을 위하여 편법, 탈법, 범법과 일탈로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경우 반드시 벌을 받는다는 믿음의 시작이 우리 사회를 정상으로 돌려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경제만이 아닌 안전과 행복을 누리는 건강한 사회로 돌아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한 줄 서기 운동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축구대회를 맞아 월드컵문화시민협의회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중점적으로 추진한 “아름다운 화장실 운동”은 대한민국에 화장실혁명을 성공시켰고 “한 줄 서기 운동”은 질서를 정착시켰던 성공사례입니다. 그러나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자 선진국 진입을 준비하는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2017년 평창동계올림픽을 맞아 전개했던 질서운동은 그 의미와 대상과 목표, 그리고 방식이 달라져야 합니다.  

   

운동의 방식     

현장에서 옳은 방법을 홍보하고 계도하는 캠페인 방식은 식상합니다. 이미 줄을 서고 차례를 지키는 것은 그동안의 성과에 힘입어 몸에 배고 환경으로 정착되었습니다. 거기에서의 일탈은 사람들의 눈총만으로도 바로 잡아집니다.     

이제는 다음 단계로 올라서야 합니다.

그것은 시민운동으로 전개되는 하나의 물결, 즉 큰 흐름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운동의 목표는 우리의 안전과 행복을 일탈과 탐욕으로부터 지키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하여 캠페인이 아닌 행동으로서 행동을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하여 자각을 행동으로 연결시키는 뇌관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의 안전과 행복을 지키는 시작과 중심은 정부입니다. 질서의 관할권을 반드시 행사하는 정부가 되어야 하지만 마주치는 손이 있어야 합니다. 시민운동본부가 결성되고 전국으로 확산되어 효과적인 방법과 능률적인 시스템을 구축하여 근본을 제대로 하고 일탈의 뿌리를 뽑는 성과를 도출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후진국형을 벗어나지 못하는 교통질서는 사설 운전면허 학원이라는 독특한 제도와 거기에서 벌어지는 면허시험 합격에 대한 수요가 결탁된 결과입니다. 즉, 운전행태가 형성되는 것은 처음 운전을 배울 때 무엇을 배우는 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운전학원에서는 운전기능을 위주로 가르칩니다. 안전하게 운전하는 방법, 위험에 대처하는 방법, 바르게 추월하는 방법, 운전할 때의 에티켓 등 가장 중요한 것은 가르치고 익혀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면허시험이 ‘기능시험’이기 때문이고 운전학원은 ‘운전교육기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처음 운전을 배울 때 제대로 하면 우리나라 교통안전과 질서는 선진국 수준이 될 기회가 계속해서 포기되고 있는 것  은 우리 사회의 풍토 때문입니다. 아무도 운전면허와 운전교육에 대한 진정성 있는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근본을 제대로 하는 것은 ‘운전교육’을 바꾸는 일이고 일탈의 뿌리를 뽑는 것은 교통현장에서의 일탈을 철저하게 신고하는 풍토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과를 거두면 우리 사회의 사고피해와 스트레스는 획기적으로 감소될 것입니다. 이 성과를 발판으로 혹은 이것과 병행하여  탐욕으로 자행되는 사회파괴 행태, 우리 사회의 위험과 스트레스를 초래하는 각종 일탈행위 등이 그 대상으로 운동을 전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키고 지키자 우리 안전 우리 행복, 시민의 힘으로!”     

착한 질서 운동은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나와 우리 사회의 ‘안전과 행복’을 위하여 스스로 질서의 기준을 지키고 그것이 제대로 지켜지는가를 지키는 운동입니다. 질서의 기준을 지키지 않는 것은 우리 모드의 안전과 행복을 무너뜨리는 일이므로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결기를 가지고 ‘지키고 또 지키는’ 것입니다.      

1980년대 독일에서 근무한 한 외교관의 술회입니다. 하루는 업무관계로 만나 가족까지 친해진 독일인 친구의 집에 초청을 받아 저녁대접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즐겁게 담소를 나눈 뒤 집으로 돌아온 며칠 뒤 경찰로부터 호출을 받았습니다. 이유인즉 초청받았던 그날 일방통행 도로를 역주행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독일친구의 집은 큰길에서 두 번째 집이었고 그 집을 연결하는 골목길은 큰길에서 들어가는 일방통행로였는데 저녁식사 후 돌아오면서 주택가라 차도 없고 거리도 짧고 해서 바로 큰길로 나간 것이었습니다. 분명히 잘못을 했으니 과태료를 물었지만 도대체 경찰이 그 밤에 어떻게 알았을까가 궁금했겠지요. 얼마 후 초대해 주었던 독일인 친구를 만났을 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가 경찰에 신고를 했으니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라며 친구는 친구, 위반은 위반이라고 했답니다. 이 사회는 정이 없는 사회, 살벌한 사회인가요? 아니면 제대로 된 사회인가요? 

어쨌건 이 사람은 그 후 남이 보건 안 보건 교통질서를 위반한 일이 없었답니다. 물론 독일에서 살 때뿐이었다는 단서가 붙어 있지만요.     

미국에서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보통 parkway 하면 숲길인 경우가 많은데 그 길을 가다 보면 “littering is illegal"이라는 간판을 많이 보게 됩니다. 창밖으로 물건을 버리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앞뒤로 경찰차가 전혀 보이지 않아도 차문을 내리고 담배꽁초를 비벼서 버리면 그 길을 벗어나기 전에 나타난 경찰차로부터 갓길에 차를 세우라는 방송을 들어야 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알았을까요? 

신고 때문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혹여 넘어지면, 지나가는 차마다 빠짐없이 차를 세우고는 “Are you OK? Need help?(괜찮아요? 도와드릴까요?)"하는 따스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불법을 보는 순간 사정없이, 그리고 빠짐없이 신고하는 것입니다. 이 사회는 살벌한 사회인가요? 제대로 된 사회인가요?

     

“나는 질서를 지킨다. 그리고 우리 사회도 지킨다.”

이것이 정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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