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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연수 Nov 28. 2023

응답하라 대한민국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유튜브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오래전 기억에 남은 결말이 생각났습니다. 덕선이네도, 택이네도, 선우네도, 정팔이네도, 동룡이네도 모두 잘되어 골목을 떠났습니다. 보라와 선우는 신혼여행을 떠났습니다. 해피엔딩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가슴에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가슴 한켠이 아리고 허전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떠남’이 아닐까 싶습니다. 집을 떠나는 자식, 이웃이 떠난 골목, 그리고 어려움 속에서도 눈물과 웃음과 끈끈한 정으로 버무려졌던 그 애틋하고 정겨웠던 시절이 가는 것, 그리고 그런 추억을 일깨워 준 드라마의 종영도 한몫했을 겁니다. 

 우리는 ‘응팔’에서  우리가 그동안 놓치고 있던 삶의 훈훈함, 사람 사이에서 피어나는 행복, 그리고 우리가 목말라하던 그리움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보았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그 속에서 잊고 있었던, 평범하지만 진한 삶의 맛 속에 빠져들 수 있었고 잠시나마 치유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끝나서 다시금 풍요롭지만 불만족스럽고, 첨단의 편리함 속에서도 끝없이 불안하고, 눈부신 발전의 감당할 수 없는 속도 속에서 외롭고 두려우며, 빛나는 성공신화 속에서 나만이 갈 곳이 없는 듯한 참담한 현실과 마주해야 하는 대책 없는 일상으로의 복귀가 새삼스러운 것입니다. 

 

 해피엔딩 속에서의 떠남이 추억이 아니라 상실로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요? 

 우리가 그때 그 시절을 떠난 이후로 지금 우리의 삶에는 가족의 애틋함도, 골목의 훈훈함도, 미래의 풋풋한 희망도 찾아보기 어려운 이 팍팍한 현실이 그 이유가 아닐까요? 이웃이 떠난 골목, 가난과 소외와 찬바람만 이는 골목이었으면 떠남이 아쉬웠을까요?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든든함과 따뜻함. 무관심과 힐책과 경쟁만을 부추기는 채찍, 그것을 넘어서 짜증과 부담, 급기야 분노가 짓누르는 가정이었으면 떠나간 빈자리가 그토록 허전했을까요? 우리 사회의 희망은 자식들에게서 보이는 미래, 그 미래에 대한 기대와 믿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자식들의 성장은 그 자체로 희망이요 든든함이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었습니다. 그것이 희망의 진정한 본류이자 본질이 아닐까요? 그 고리가 끊긴 가정은 암울하고 사회는 활력을 잃습니다.  ‘응팔’은 우리가 실제로 가졌었고 누렸던 그 공동체와 그 희망에 대한 회상이고 되새김질이었던 셈입니다. 아쉬움이 클수록 그 가치는 크고 진하게 다가오는 법이지요.


 요즘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듣기에도 끔찍한 일들이 연일 벌어지고 있습니다. 인륜이 무너지고 공동체가 붕괴하는 모습입니다. 일시적이고 돌출적인 패륜과 범죄현상으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너무도 근원적이고 그 빈도도 잦습니다. 이미 우리 사회에 울리는 경종의 단계를 많이 넘어 선 것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우려일까요? 분명한 것은 범인을 잡아내고 합당한 벌을 주는 범죄 대응 차원으로는 결코 치유될 것 같지 않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종합적, 전방위적, 전 사회적 대응이 필요합니다. 정치도, 교육도, 행정도 결코 책임의 범위에서 단 한치도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국가도, 자치단체도, 기업도, 시민단체도, 국민도 모두 나서야 할 비상시국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참담한 현상은 우리나라 우리 사회의 풍토와 환경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며 이런 풍토와 환경 속에서는 계속해서 발생할 가능성이 크고 그렇지 않아도 어려움에 처해 있는 우리 사회가 받을 충격과 절망감은 치유하기 어려운 사회적 원심력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의 풍토를, 환경을 바꿔 가야 하는 쉽지 않은, 그리고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 되는 시급한 과제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분명한 것은 경제성장만으로는 해법이 될 수 없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마음의 병이라고 해서 대증요법만으로 고치려고 한다면 그 또한 바른 처방이 아닙니다. 

 원인은 이미 파악되어 있습니다. 진심을 가지고 건강한 나라를 위하여, 좋은 사회를 위하여, 국민의 행복을 위하여 근원적으로 접근하고 긴 호흡으로 다가서야 합니다. 이 실현의 주체는 두 말할 것도 없이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들입니다. 그리고 지도자들이 그렇게 선택하고 행동하게 하는 것은 국민들의 마음가짐이며 추상같은 결기입니다. 그리고 그 심판의 날은 투표일입니다. 제대로 된 지도자라면 문제점을 찾아내고 진지한 마음으로 그 해결을 국민 앞에, 유권자 앞에 선언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작입니다. 진정으로 문제를 보고 온 힘을 다하여 해결에 나서는 것만으로도 큰 물줄기는 잡히고 우리 사회는 오랜만에 ‘희망’이라는 빛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사회를 위기에서 구하고 더불어 국가발전을 이루는 일거양득의 지혜임을 부디 깨달았으면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023년 이 시절을 20년 후 우리의 아이들은 어떻게 회상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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