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오늘도 출장 중
미국 학교는 왜 이렇게 행사가 많은 걸까. 한 달에 한 번은 학교를 찾는 기분이다. 미국은 아이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나라이지 않은가. 행사 때마다 엄마 아빠는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오시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온 가족이 모이는 분위기의 학교 행사 속의 나를 '주재원 와이프'라 쓰고 '홀로 된 여인'이라 읽는다. 그렇다.
난 누가 봐도 홀로 된 여인이다.
오늘도 남편은 출장 중이다. 그는 항상 출장 중이거나 미국 업무시간에는 미국 일, 한국 업무시간엔 한국과 관련된 업무를 한다. 시차 덕분에 그의 퇴근 시간은 한국의 점심시간, 그러니까 매일 밤 9시쯤이다. 이건 뭐 2년이 지났는데 적응이 안 되고 적응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지 않은가. 내가 이렇게 살려고 여기 나온 거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지만 그에게 불평할 수도 원망할 수도 없다.
가장 힘든 건 결국 가장이니까.
오늘도 홀로 된 여인은 아이와 단둘이 집을 나섰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 7시. 아이의 농구클럽 트레이닝을 위해 나왔는데 자동차의 라이트가 안 켜진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 그대여.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단전에서부터 올라와 밖으로 배출되지 않은 채 활활 타오른다. 결국 그대의 빈자리는 오늘도 구글과 챗GPT로 채웠나니. 십수 년 전 이 땅에서 스마트폰 없이 살아왔던 나의 선배들이 실로 대단하게 느껴진다.
농구클럽은 주 2회 가는데 대부분의 아빠들이 함께 온다. 아빠들 오라고 저녁 7시로 잡은 듯한데 난 사연 많은 여인처럼 매번 홀로 아이를 데리고 간다. 저녁 7시에 미국 주재원 아빠는 한국 사무실과 한창 회의 중인 경우가 많으니까. 농구클럽의 아빠들은 내게 전혀 관심 없다 해도 내가 눈치가 보이는 건 왜일까. 그들 눈엔 내가 미혼모나 이혼녀 또는 사별한 여인 뭐 그렇게 보이진 않을지. 별별 상상을 다 하게 된다.
'좀 밝게 많이 웃어볼까?'
'사연 많은 여자처럼 보이긴 싫은데'
나 혼자만의 생각이겠지만 괜히 남들 시선이 신경 쓰인다. 어디 그뿐인가. 농구코트에서 온통 미국인들 속에 나 홀로 동양인인 아이가 뛰고 있는 모습이 왜 갑자기 불쌍해 보이는 건지. 혹시라도 아이 친구들이 쟤만 왜 맨날 엄마랑 오냐고 쟤는 아빠 없냐고 오해를 하면 어쩌지 신경이 쓰인다. 농구 연습이 끝나고 아빠들이 각자의 아들을 데리고 슛 연습을 해줄 때는 바쁜 일이 있는 사람처럼 농구장을 빠져나오곤 한다.
지난번에는 농구클럽의 리더 엄마가 인사를 건넸다. 묻지도 않았는데 나는 세상 밝은 표정으로 활짝 웃으며 말했다.
“My husband is on a business trip again, so I’m here alone today. But I'm OK.”
에라이. 아임 오케이 같은 소리는 괜히 했나 싶었다. 그녀는 유쾌하게 웃으며 떠났는데 난 왜 찜찜한 걸까. 남들은 아무렇지 않은데 난 왜 그들을 신경 쓰며 눈치 보는 건지.
내가 아무렇지 않기 때문이리라.
그거다. 난 아무렇지 않다고 괜찮다고 "I'm OK"라고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다. 한국 사회는 많은 아빠들이 바쁘니까 결핍을 느낄 수 없었으나 여긴 아니니까. 주재원들이 미국 친구들, 가족들과 가까워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이 문제. '아빠의 부재'라는 분명한 사실을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우린 모른 척하며 살아가고 있다.
행복해지려고 미국으로 나온 건데 가끔 이게 맞는가 싶을 때가 있다. 살다 보면 그런 순간이 예상치 못한 소나기처럼 아주 갑자기 그것도 강하게 훅 들어온다. 그러한 순간들의 중심엔 항상 아이가 있다. 난 엄마니까. 우산으로도 막아지지 않는 이 갑작스러운 폭우를 막아주고 싶은데 방법을 찾을 수 없을 때가 대부분이다. 아이가 더 이상 힘들지 않고 남은 시간들을 잘 버텨주길 간절히 바랄 뿐.
홀로 된 여인처럼 보일지라도 그 어떤 아빠보다 큰소리로 파이팅 해가며 아이를 응원했다. 아빠들이 응원하는 걸 보고 있자니 이 네 가지 단어면 충분한 분위기라 자신감이 샘솟는다.
"굿잡. 그뤠잇. 뤼바운드. 고고!!"
고래고래 소리 질러 목은 아프지만 마음은 편안하니 그걸로 됐다. 심지어 한 시간 동안 응원하고 나오면 노래방에서 소찬휘 언니 노래 열곡은 부른 듯한 시원함과 뿌듯함이라니. 어찌 보면 이 시간은 내겐 힐링포인트가 아닌가.
지금 내 상황이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이곳 생활은 신데렐라의 호박마차처럼 4년이라는 정해진 기한이면 끝난다. 호박마차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매일은 아니지만 누구나 꿈꾸는, 우리도 꿈꿨던 삶이지 않은가. 한국으로 돌아가서의 시간 속에서는 그토록 그리워지는 오늘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곳 생활 중에 우산도 없이 폭우를 만났을 때에는 지금처럼 아무렇지 않은 듯 나만의 방법으로 잘 풀어나가는 내가 되길. 금방 지나갈 폭우 아닌가. 차라리 빗속에서 그 순간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슬기로운 미국 생활의 끝자락에 도달했을 때 우리 셋 모두가 단단해진 모습을 기대해 본다. 그날이 오면 지금의 폭우조차 추억 속 햇살로 기억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