變: 변할 변 德: 덕 덕

나는 원래 책 싫어했다.

by 나아인


매거진을 펴내던 시절,

샘플페이퍼를 한껏 쓰다듬고 손으로 넘기며

150페이지가 되면 두께와 무게가 어떻게 달라질지 상상하곤 했다. 또 목차를 지나며 읽는 독자들의

호흡이 끊기지 않도록 흐름을 수정하고, 3일 내내 교정을 4교까지 보고도 오타가 있을까

잠을 못이룬채 교정지를 들추곤 했다.

인쇄가 되면 절대 수정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쫓기듯 4개의 매거진을 출간하면

정말 숨돌릴새도 없이 1년이 지나있었다.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 들어갈 것처럼

유튜브만 쳐다보는 사람들과

가벼운 ebook으로 책을 읽는 사람들을 보며

출판시장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실감했다.

서점에 가면 우리 매거진과 타 매거진이 어떻게 다르게 깔려있는지만 볼 뿐

다른 책을 읽고 만지는 일은 거의 없었으며,

내 이름 석 자가 박힌 책들이 서점에 깔리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도 모른 채

밤새 엘리베이터도 없는 파주 감리소 계단을

오르내리며 뻘게진 눈으로

CMYK 값을 조정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여러 이유로 출판사에서 퇴사하고

종이와 잉크 냄새가 지긋지긋하다며

책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는 원래 책 싫어했다.


한데 요즘 주변 동네 책방들을 서성이고 있다.

종이책을 들고 한껏 넓게 벌려 코를 박고 킁킁대며 종이책 특유의 쿰쿰한 냄새를

강아지 발바닥 꼬순내 맡듯이 맡고 다닌다.


스스로를 탓하며 고통스러운 고뇌를 거쳐

퇴고되었을 원고들과.

그저 읽히기를 바라며 힘을 덧댄

수많은 사람의 노력.

직접 경험했기에 더 숭고한 기록들이다.


그래서인지 책방에 쌓여있는 책들이 서운하지 않게 거의 모든 책을 한장 한장 만지고

괜히 책의 가장 끝에 자리한

여러 사람들의 이름을 눈에 담으며

나만 아는,

그들을 응원하는 시간을 보내다 돌아오곤 한다.


시간이 흘러 출판사에서의 기억이 희미해지니

더이상 이전처럼 교정보듯 책을 보지 않게 되었다.

다른 책을 읽을 때마다 편집 과정들이 떠올라

글이 글처럼 안 보였는데,

이젠 슬슬 글도 써볼까 싶고

내 이름으로 책도 다시 내보고 싶어졌다.


자신도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라며
왜 갑자기 이렇게 변덕을 부리냐고

스스로를 구박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계속해서 책을 읽고

글을 쓰려 애써온 날들이었다.

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술에 만취한 채 책을 펴보기도 하고, 펜을 들어 일기를 쓰기도 했다.

일부러 맞춤법을 틀리게 쓰고

띄어쓰기 없이 톡을 보내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러 개의 냄비 받침대가 책상 옆에 쌓이긴 했지만.


편집자에서 벗어나니 글 쓰는 게 이리도 자유롭다.

꽤 변덕스러운 생각들이 괜스레 민망한데,

내 글을 읽은 친구가 글마다 톤이 왜 이리 다르냐고 묻는다.


'쓸 때마다 기분이 다른 걸 어떡하라고'


글도 본인 닮아 꽤나 변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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