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감각을 세우는 삶

by 지초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굳이'라는 단어를 삶 속에 자주 적용하기 시작했다. 굳이 강이 보이는 카페에 찾아가고, 굳이 음악을 켜거나 끄고, 굳이 트러플 오일을 한 두 방울 떨어뜨리고, 굳이 다양한 향수를 사용한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 일들. 하지만 그 작은 선택들이 쌓여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를 보여준다.


특히 나는 감각을 키우는 데에 '굳이'를 쓴다. 보통 나이가 들어가며 일이 바빠지고, 효율을 추구할 수록 감각은 무뎌진다. 디지털 화면과 꽉찬 스케쥴표, 대중교통 소음에 익숙해지면서 감각을 키우는 일은 사치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반대로 살기 위해 노력한다.


감각은 내가 나로서 살아남는 수단이다. 외부의 관여 없이 내 몸이 느끼는 감각을 믿을 수 있을 때, 나는 더 나다운 선택을 할 수 있다.


시각적 풍요로움

요즘 일부러 '보기 위해' 돌아간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굳이 강이나 공원이 보이는 길을 걷는다. 굳이 공원 벤치에 앉아 잠깐 하늘을 올려다본다. 바쁜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눈이 좋아하는 장면'을 찾아 간다. 사무실의 블라인드를 올려 바깥 풍경과 햇살을 온전히 감상한다. 식당이나 카페에서 자리를 선정할 때에도 시각적으로 만족스러운 자리로 굳이 골라 간다.

나는 지하철보다 버스를 선호한다. 지하의 어두컴컴하고 습한 기운을 싫어하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시각적으로 너무 많은 차단을 당하기 때문이다. 효율이 우선시되는 순간에는 지하철을 선택하지만,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무조건 버스를 택하는 편이다. 버스 창 밖에서 볼 수 있는 어딘가로 향하는 사람들, 가지각색의 상가, 가끔씩 보이는 공원과 강. 버스를 타는 동안 느껴지는 시각적 풍요로움은 지하철과 비교할 수가 없다.

그 대신 걸을 때나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 굳이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여전히 디지털 화면에서 오는 자극의 유혹을 자주 이기지 못하지만, 문득 '굳이'라는 생각이 들면 눈을 들어 지나가는 사람들, 하늘, 창밖의 나무를 본다. 지하철에서도 휴대폰 화면보다는 듣는 것을 선택한다. 음악을 듣던 유튜브를 듣던.


청각적 풍요로움

나는 태생부터 청각에 굉장히 예민한 사람이다. 음악을 듣다 진심으로 전율이 흐르고, 울컥하거나, 벅차오르거나, 나도 몰랐던 감정을 느낀다. 음악을 듣지 않는 순간이 거의 없을 정도로 밖에서는 에어팟으로 음악을 듣고, 집에서도 굳이 재즈나 피아노 음악을 틀어놓고 지낸다. 귀를 쉬게 하는 법을 모를 정도로 듣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그래서 오히려 에어팟을 빼는 것이 나에게는 청각적 풍요로움을 가져다준다. 외부의 소음과 에어팟을 통한 음악이 맞물려 제3의 소음처럼 느껴지는 것을 인지하게 되는 순간 에어팟을 뺀다. 외부의 소음을 온전히 받아들인다. 외부의 소음에 맞서서 음악을 듣는 것이 스트레스로 느껴지는 순간이 더 많기 때문이다.

새소리, 바람소리, 카페의 음악 소리가 날 행복하게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에도 에어팟을 착용하지 않는다. 그런 순간은 온전히 외부의 소리를 감각적으로 느끼려고 노력한다.

노이즈 캔슬링의 등장은 나에게 혁신적이었다. 아무리 외부 소음을 이겨내려해도 도저히 이겨낼 자신이 없을 때 노이즈 캔슬링을 즐겨 사용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듣지는 않는다. 그저 외부 소음의 데시벨을 낮추기 위한 선택일 뿐이다.

언성이 높거나 소음이 느껴지는 공간으로부터 의도적으로 멀어지는 것도 나의 청각적 풍요로움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다. 버스 정류장, 지하철 등 공공장소에서 사람들의 소리가 소음으로 느껴지는 순간 그 공간에서 멀어지기 위해 노력한다.


후각적 풍요로움

후각이 제일 둔한 편이다. 그래서 다른 감각에 비해 온전히 후각을 느끼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술을 좋아하면서부터 향에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했다. 위스키를 좋아해서 다양한 위스키의 향을 맡는 순간을 즐긴다. 최근 여러 종류의 사케를 마시며 사케의 은은하고 달콤한 향도 매력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일 좋아하는 술인 칵테일을 즐길 때에도 비터스를 활용한 칵테일을 즐겨 마신다. 향이 큰 역할을 하지 않는 칵테일 종류라면 시나몬 스틱을 태우면서 칵테일을 마시는 것도 정말 좋아한다. 여전히 미세한 향의 차이는 구분하지 못하지만, 술을 더 풍부하게 즐기기 위해 후각을 예민하게 발달시키려고 노력한다.

음식에서도 향을 온전히 느끼려고 노력한다. 굳이 음식의 질을 높이기 위해, 트러플 오일, 시나몬 파우더, 후추, 바질, 파슬리 등 향신료나 허브를 활용하여 요리를 한다.

향수를 뿌리는 취미가 있다. 다양한 향을 접하고 그 중에서 내 취향인 향들을 찾고 모으는 과정을 즐긴다. 향수 본품은 아직 나에게 가격적 부담이 있기 때문에 샘플 향수(5-10 mL)들을 활용한다. 향수를 통해 그날 그날의 분위기를 선택한다. 좋아하는 향수 브랜드가 나이를 먹음에 따라 변화하는 과정을 지켜보다보면 내가 추구하는 내 모습이 무엇인지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자연 속에 있을 때면 열심히 발달시킨 후각이 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특히 비 냄새, 꽃 냄새, 풀 냄새, 더 나아가면 계절 냄새까지. 자연에서 오는 향은 인간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향보다 훨씬 그 강도가 약한데 요즘은 그 향들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미각적 풍요로움

최근 가장 집중해서 기르고 있는 감각이다. 다이어트, 더 깊이 들어가면 건강한 식습관을 위해 시작한 연습이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삶의 질 자체를 바꾸어버렸다. 미각이 깨어난 이후로 나는 음식을 단순히 '채우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으로 바꿔버렸다. 덕분에 삶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범위가 한 층 넓어졌다.

음식을 먹을 때 온전히 그 재료의 맛을 느끼려고 노력한다. 예전에는 허겁지겁 이게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먹었다. 이십 몇 년 간을 자칭 '막입'의 대명사로 지내왔다. 하지만 식습관을 교정하면서 지금은 온전히 미각을 깨우는 것에 집중하는 시간을 늘려간다. 가장 잘 맞는 방식은 '음식의 끝맛'을 인식하는 것이다. 끝맛에 집중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천천히 먹게되는 동시에 재료의 맛을 온전히 알 수 있다.

자취를 오래 하다보니 밥을 먹을 때 유튜브를 보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 시간을 줄이려고 노력한다. 일부러 '오늘 식사 시간에는 유튜브를 보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가끔 의도하지 않았는 데에도 불구하고 정성들여 직접 만든 요리의 맛을 느끼기 위해 유튜브를 보지 않고 식사를 마치는 경우가 있다. 굉장히 신기한 경험이었다.

아마 미각적 풍요로움을 키울 수 있던 계기는 프랑스에서 지낸 시간들 덕분일 것이다. 새로운 맛들을 접하면서 음식의 질에 엄청난 가치를 부여하게 되었다. 나를 감동시키는 맛이 무엇인지 알고, 필요할 때 그 요리를 만들어 먹으며 행복감을 느낀다. 요즘에는 치즈 구이(+토마토, 올리브오일, 후추, 소금, 견과류)를 굉장히 좋아한다. 재료에 따라 호불호가 심하긴 하지만 웬만하면 샐러드를 좋아하는 편이라 시기에 따라 꽂히는 샐러드를 자주 만들어 먹는다. 디저트류에도 환장하는 편인데 특히 크레페와 제과류를 좋아한다. 이런 단 음식을 먹을 때에는 최고의 맛을 찾고 온전히 느끼는 것에 집중한다. 나를 감동시키는 단맛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다.

집에 홀로 있을 때 만족스러운 요리나 디저트를 먹고 난 후 박수를 칠 때가 종종 있다. 맛에서 오는 감동과 감사함에 대한 표현이랄까.


촉각적 풍요로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순간은 수영을 할 때 느껴지는 물살이다. 자신있는 영법(나에게는 자유형)을 즐길 때는 여유가 생겨 물살까지 느껴버리는 경지에 이르기 때문이다. 손날의 방향, 어깨의 각도, 무릎을 구부리는 정도, 발목의 움직임에 따라 몸이 전체적으로 느끼는 물살이 달라진다. 어떤 순간에는 부드럽고 포근한 느낌이 들고, 어떤 순간에는 날카롭고 무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명상을 하는 것 마냥 물살을 느끼다보면 수영이라는 운동 자체가 나의 감각을 풍요롭게 해주고 있음을 알게 된다.

겨울에는 촉감에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 부드러운 담요, 포근한 니트, 폭삭폭삭한 이불 덕분일 것이다. 고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와 잠 들기 전 전기 장판을 틀어 침대를 따뜻하게 만든 다음 잘 준비를 마치고 그 침대에 들어가는 순간 느껴지는 아늑함. 그 순간 추운 겨울에 이 행복을 느낄 수 있음에 본능적으로 떠오르는 감사함.


오감을 일깨운다는 것은 결국 '자기 감각을 신뢰하는 사람'이 되는 연습인 것 같다. 내 몸의 감각과 감정을 존중할 줄 알게 된다. 감각을 통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한다.


여성이라는 존재는 원래부터 감각적이다. 여성성의 본질은 '느끼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각은 단순히 예민함으로 오해받기 쉽다. 특히 논리와 분석을 더 가치있고 훌륭한 도구라고 평가되어지는 현대사회에서는 훨씬 평가절하되기 쉽다. 나 또한 자기감각의 중요성을 모른채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감각을 더 강하게 만드는 것에 집중한다. 내 몸의 반응을 믿는다는 것, 나에게 불쾌한 것을 알아채고 피하는 것, 나를 감동시키는 것을 찾아가려는 것. 그게 내가 나를 보살피고 지키는 방식이자, 여성이기에 가질 수 있는 강점이다. 내가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거절해야 하는지를 '논리'가 아닌 '느낌'으로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가장 원초적이며 강력한 생존 기술을 연습한다.


제품과 브랜드의 생존과 성장을 책임지는 CMO로서도 감각은 굉장히 중요한 도구로 작용한다. 수많은 판단들 속에서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것은 감각이기 때문이다. 물론 숫자, 시장조사, 구체적인 전략도 당연히 중요하고 좋아한다. 하지만 수치화되지 않은 불쾌감, 설명되지 않는 끌림, 트렌드 변화의 공기, 소비자 말 속의 미묘한 맥락. 이건 데이터로 보기 전에 몸이 먼저 아는 것들이다.

비즈니스를 한다는 건 결국 사람을 대하는 일이고, 사람의 반응은 언제나 감각에서 시작된다. 그 감각을 날카롭게 세우고 훈련하지 않으면 결국 중요한 순간에 아쉬운 선택을 하게 된다. 아직 그럴싸한 경험이 없는 사회초년생 CMO는 관련된 지식과 경험을 늘리는 동시에 감각을 발달시키는 것에도 집중한다. 앞으로 만들어나갈 더 큰 비즈니스를 위해.


그래서 나는 '굳이' 이렇게 살아간다. 누군가에겐 의미 없어 보일 작은 선택들이 나에게는 나를 중심에 두는 훈련이고 내 삶을 내 것으로 만드는 방식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