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박 밤을 새워 보기는 난생처음이었다. 공포가 엄습해 오는 가운데 딸아이와 남편과 함께 뚫어져라 텔레비전 화면만 바라보던 그 밤, 짬 날 때마다 창밖을 내다보며 불빛 머금은 창문들을 헤아려보곤 했다. 잠 못 드는
이웃들이 많은가, 그들도 우리처럼 동그마니 모여 TV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가? 비슷한 공포와 우려로 밤을 하얗게 새우는 이웃의 존재를 확인하고 공포감의 무게를 덜고 싶었던 까닭일까.
피난을 가야 하나. 지금은 피난도 소용없는 시대이거늘 어디로 간단 말인가? 가 봐야 안전한 곳이 있기나
할까. 북한의 도발을 경계, 대비해야 하는 우리나라가 내부의 적에 의해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과 마주하다니! 그는 다수 야당의 횡포 때문에 이런 일을 벌였다고 했다. 처음에는 사과 비슷한 걸 하더니, 당당하게 뻗대며 탄핵할 테면 해 봐라, 큰소리를 쳤다. 야당에게 발목 잡혀 국정이 마비가 된 탓에 말도 안 되는 시도를 했다고? 다수 야당이라 하면 국민들이 뽑아준 당이고 다수 야당의 뜻은 곧 국민 다수의 뜻이기도 한데, 그런 국민들의 뜻을 저버리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였다고? 자꾸만 찬물을 찾고, 불안과 걱정으로 잠 못 이루던 그 밤 그 시점부터가 전부 꿈이었다면, 차라리 꿈이었다면......
계엄=통치행위. 21세기에 새로운 수학 공식 하나가 추가되었다. 계엄은 통치 행위라! 자신이 명명한
공식을 증명하기 위해, 그간 치밀하게 준비해 온 정황들이 속속들이 드러나면서, 무슨 계엄을 그리도 어리숙하게 준비해서 두 시간 만에 해제되게 만드나, 어이 상실하던 것이 순진한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틈만 나면 연관 뉴스를 검색해 들여다보고, 분개하고, 근심하고 염려하는 일로 몇 시간이 날아가던 하루하루. 불안하여 일도 취미도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주경야브런치’를 즐거움으로 삼던 평화로운 일상은 겹겹 포위망을 뚫고서야 닿는 곳으로 숨어버렸다.
어느 날, 알고리즘은 지난 9월의 국방부 장관 임명 청문회 영상으로 나를 인도하는데, 그의 측근인 후보자가 입에 침도 안 바르고 태연자약하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21세기에 계엄이라니, 가당키나 하냐고,
국민들이 용납하겠냐고. 국방부 장관 내정자의 기막힌 연기력(완전 연기대상감이다!)에 놀랐고 질문하는
야당 의원의 혜안에 거듭거듭 놀랐다. 혜안이라 하며 감탄하는 내게, 그 정도는 뉴스만 열심히 보아도
누구나 도출해 낼 수 있는 합리적 의심이라 핀잔을 주는 옆 지기!
맞다. 뉴스만 보면 스트레스받는다 하여 거의 뉴스와 담을 쌓고 살았다. 정치인들이 나와서 싸우는 장면이
대부분인 뉴스, 골치 아프잖나? 그렇잖아도 신경 쓸 게 많은 세상!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자칫 3차 대전으로
번질 수도 있었던 계엄사태와 그 후폭풍으로 피를 말리는 듯한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엄동설한에 거리로
나서는 용감한 시민들과 기득권을 놓치기 싫어 앙버팀 하는 밉살스러운 세력들의 추이...... 미적지근한 수사 속도,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 피의자, 피의자의 또 다른 수하의 망발에 환율은 휘청대고, 제2의 계엄이 오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고서는 결코 살아날 수 없을 듯한 압박감! 무언가 희망적인 소식이라도
기대하는 마음으로, 눈만 뜨면 뉴스속보부터 검색하는 게 첫 일과가 되어버렸다. 선진국 대열에 올랐다는
자부심, K문화로 높아진 국가의 위상이 헌법 위에 군림하려는 독재자의 미몽으로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렸다는 사실. 참담하고 비참함, 나만의 심정일까.....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우리의 몸부림을 세계가 지켜보고 응원하고 있다는 일말의 희망만이 한 줄기 빛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지금, 지난 12월은 잔인한 달이었다. 계엄은 광주의 아픈 역사를 소환하게 만들었고, 그
후폭풍은 거세기도 거세어서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라는 국가의 경사도 혼란에 묻혀 빛을 잃었고, 크리스마스와 연말 특수를 기대하던 상인들과 새해를 맞는 우리의 설렘과 기대는 잿빛 현실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설상가상으로 제주항공 참사는 또 한 덩이의 묵직한 슬픔으로 우리를 옭아매고 있다. 슬픔을 당한 유가족과 유명을 달리한 영혼들에게 깊은 애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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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감당하는 주머니가 꽉 차지 않도록, 차고 넘쳐 해일이 일지 않도록 작은 희망의 몸짓이라도 멈추지
말아야 할 텐데...... 희망의 몸짓이라 하면 뭐가 있을까. 그것은 법과 정의가 승리한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견고한 믿음, 그 믿음을 주는 지도자에 대한 신뢰와 응원, 아낌없는 기도일 것이다. 우리네 삶에서 신념은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한쪽으로 쏠린 신념은 때때로 위험을 내포하기도 한다. 그 위험은 자신은 물론 공동체를 멸망의 수렁으로 끌고 갈 수도 있다. 기울어 감을 인지했을 때 재빨리 균형을 잡는 것은 말이 쉽지 결코
쉬이 행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용기 있는 자만이 그 일을 해내고 지혜로운 자만이 그럴 수가 있다.
지혜와 용기, 잘못을 인정하고 고쳐나갈 수 있는 겸허함까지 지닌, 지도자를 기다리며, 2025년 새해 아침의 상념을 접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