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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탈리 Dec 21. 2022

내 소중한  가방

 

"딸내미, 이거 너 줄까?"

완성된 가방을 내밀며  엄마는 솜사탕처럼 설렌다.

한 달여를 공들여 만든 퀼트 가방이다. 퇴근 후 피곤을 달래며 날마다 조금씩 만든 작품을, 딸내미는 단호하게 거절해 버린다.


내 스타일 아냐. 이모 줘. 이모는 그런 가방  좋아하잖아.


시르죽은 모습으로 가방을 도로 가지고 나온다. 감히 나의 작품을 거절하다니.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가방이라고!


정말이다. 퀼트 패키지를 구입하여(딸내미 도움을 받아 온라인에서 구입) 도안을 오리고, 천에 옮겨 그리고,  자르고, 아플리케 수놓고,  퀼팅 하여  가방을 완성하기까지, 한 땀 한 땀 오로지 수작업만으로 했다. 실로 쉬운 일은 아니다. 구도(求道)의 길처럼  인내와 끈기, 자기와의 싸움을 필요로 한다. 명품가방에 비길 바가  아닌(희소성에서 따져 보자면), 그런 작품을 거절하다니..... 실망 대실망이다.  


서프라이즈 파티에서나 봄직한 반응은  기대조차 않았다.

'와 정말? 친구들에게 자랑해야지.'

이 정도까지도  안 바랐다. 응 고마워, 정도는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너희들,  왜 퀼트 가방이 싫은 건데?"

"엄마, 요즘 누가 그런 가방을 들고 다녀? "

"왜, 개성 있고 좋은데. 난  가끔  그런 사람들 본다 뭐."

"다 아줌마들이겠지, 젊은이들은  못 봤을걸?"

"하긴, 그렇네. 싫으면 말려무나. 내가 갖든지 이모를 주든 해야지."


동생에게 작품을 선물하면 딸내미들과는 정 반대의 반응을 보인다.

택배를 받는 즉시로, 가방을  든 채 입이 귀에 걸린 모습을 찍어 보낸다. 물각유주(物各有主)라더니, 네가 그 가방의 임자인가 보다고..... 그 기뻐하는 모습에 만들던 순간의 수고로움은  눈 녹듯 사라진다.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가방이라며 동생은  그 가방을 애지중지하며 갖고 다닐 것이다.

'내 소중한 가방을 그리 대접해 주니  고맙구나, 아우야.'

동생에게 보내기로 마음을 먹는다. 적당한 박스가 어디 있.....


동생은 오래전 만들어준 쿠션이나 손가방도 여지껏  지니고 있다.(얼마 전, 동생 집 들렀을 때 발견함) 버리라 해도 못 버리겠단다. 세상 둘도 없는 가방이라. 내가 이런 것도 만들었던가? 새록새록 옛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헌 옷을 재활용하여 만든 초기 작품. 천은 낡았어도 바느질은  요즘 작품보다 더 꼼꼼해 보였다. '좀 버리면 안 되겠니?' '새로 하나 만들어주면  그때 가서 생각해 볼게.' 동생은 나와 협상하며 웃었었다.


지금이야, 패키지가 워낙 잘 나오니 그때보다 예쁜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지만,  그때는  재활용 천이 버리기 아까워 무얼 할까 고민으로 시작된 바느질이었다. 고민하는 순간도 행복했고 만들어진 테디베어나 인형을 가지고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는 것도  만족스러웠다.


퀼트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대번에 알아본다. 레이더망에  작품이 인지된 순간, 감탄사와  동시에 몽실몽실 피어나는 친근함! 퀼트가방을 들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는 오랜 지인이 되어버린다.

'저기 나처럼 퀼트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네. 계 묻자고 할까나.....'

그 수고로움을 알기에, 완성했을 때의 뿌듯함을 알기에, 인사라도  몇 마디 건네고 싶어진다.


젊은 사람이 눈 빠져라  들여다 보고 그런 걸 만드냐고  엄마는 성화셨지만,  한 번 빠지면 헤어날 수 없는 것이 퀼트의 매력인 것을..... 처음엔 파우치 같은 소품을 만들어 딸내미들에게 무조건 쓰라고 갖다 안겼다. 그리고는 가방이나 에코백에 도전했다. 얼른 완성품을 보고 싶어 서두르다가 '세요각시'에게 찔린 적도 많았다. 퀼트 바늘은  보통 바늘보다 작고 예리해서 한눈팔다 보면  바늘에 찔리고 만다. 그럼에도, 고 작은 바늘 끝에서 탄생하는 동화 같은 풍경을 보노라면, 아마추어 퀼트인의 마음은  엄마품에 잠든 아이처럼 따사롭고 평화로워지곤  하였다.


다양한 체크천을 한 아름 벌여놓고  무얼 만들까 궁리하는 때만큼 즐거운 순간이 또 있을까. 햇발이 놀러 오는 오전이면 더 좋을 것이다. 따뜻한 차 한  잔, 잔잔한 선율과 함께라면 더더욱 좋을 것이다. 손에는 바늘, 탁자에는 사랑스러운 체크 천이 널려 있고, 햇발에 두 발을 담그고 행복한 고민을 시작하는 퀼트애호가. 또 어떤 작품이 나오려는지. 주인은 누가 되려는지. 동생에게는 여러 차례 선물했으니 이번에는 언니들 중 한 명이 주인으로 낙점될 듯싶다.


참, 퀼트 가방에 대한 '취급 주의사항'을 동생에게 일러주지 않았다.  

"아우야, 그 가방은 습도에 약하니 비 맞으면 안 된다.  갑가지 비를 만나도 머리에 쓰지 말고 품에 꼭 안아야 된다, 알겠지. 그리고  낡은 가방은 말없이 고이 보내드려라,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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