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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탈리 Jan 12. 2023

울 언니

걱정댁의 언니, 울 언니

  

한 가지에서 나고도 언니와 나는 너무 달랐다. 언니 동생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달라도 아주 많이 달랐다. 아롱이다롱이란 말이 있잖가. 아마도 그 말은 우리를 위해 생기지 않았나 싶다. 활달하고 명랑하여 맘에 구석진 데라고는 없던  언니는, 몸이 몹시도 야리야리하여 길을 가노라면 사람들은 당연히 나를 언니로 알았다. 어린 마음에  그런 오해를 받는다는 것이 찌나 속상하던지......


언니는 틈만 나면 친구들과 어울렸고 그러다 보고 들은 얘기를 참 재미나게도 들려주곤 했다. 그와 달리 수줍음을 많이 타던 나는 집에서 조용히 놀았. 자연스레 밖으로 말을 내뱉기보다 온갖 생각들을 안으로 삼키는 좀 의뭉스러운 아이가 되어갔다. 핏하면 동생을 놀려대던 언니, 그때마다 바락바락 대들 나. 그러니 곱게 언니란 호칭이  나와주질 않는 것이다. 언니란 단어는 입가에서 맴돌기만 하다가 한참 성장한 후에서야 겨우 비집고 나와주었다.


니와 나는 세 살 터울이다. 내가 등학교 들어가기 전, 그러니까 언니가 3학년 때쯤이었나..... 그날도 언니는 학교가 파하자마자  밖으로 나가버렸다.  혼자 집을 보며 놀자니 너무도 심심했다. '가만, 언니의 책가방이라도 뒤지며 놀아 볼까?' 하며 열심히 았건만 그것이  영 보이지를 않았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책가방이 높다란 서랍장 위에, 얌전히  올려져 있음을 발견했다. 야속하게도, 언니가, 동생의 손이 닿지 못하는 곳에 올려놓고 가버린 것이다. 혹시라도 철없는 동생이 책장을 찢을까 봐 그런 모양인데 그 사실이 나를 더 애타게 만들었다.


세상에, 책을 찢다니? 나를 뭐로 보고. 단지 책 속의 신기한 글자와 그림을 좀 보고 싶었을 뿐이야, 언니! 매정한 언니!


언젠가 언니는 엄마를 따라 땔감을 하러 산에 갔다. 땔나무로 난방을 하던 시절이었다. 언니 나무를 잘 타는 까닭에 엄마곧잘 언니를  데려갔다. 그날도 언니는  날렵하게 소나무에 올랐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이 나서는 청솔을 베 엄마 곁으로  던지던 언니. 이제 됐으니 그만 내려오라고 거듭  재촉하시  엄마 말씀을 흘려듣고  조금만 더, 고집을 부린 게 화근이었을까. 손에 꼭 쥐고 있던 낫이 미끄러져 언니의 목을 스치는 불상사가 일어나 버렸다. 순식간에 목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엄마는 쑥을 짓이겨 급하게 지혈을 하신 뒤에 황급히 언니를 읍내의 병원으로 데려가셨다.


언니는 여러 바늘을 꿰매고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몇 번이고 당신 말을 듣지 않은 언니를 질책하셨다. 아무런 대꾸도 못 하던 언니. 그날부터 삐쩍 마른 언니의 목에 훈장처럼 따라다니던 흉터! 다행히 머리카락으로 가릴 수  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시집 못 갈 뻔한 사건이었다. 그러고도 항상 언니는 용감했다.

 

한 번은 외할머니 댁에 갔는데  가까운 산에 불이 났다. 동네 사람들불을 끄러 간다고 난리법석인 가운데 언니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사촌언니들과  산으로 올라갔다. 한참 만에 내려온 언니가 불이 진화되었다고, 소방서 아저씨들한테 치하의 말을 들었다고, 무용담을 자랑스러이 펼쳐놓았다. 부러웠다. 화마로부터 마을을 구했다는  뿌듯함이 언니를 한빛나게 하는 것 같았다. 마루 한 켠에 앉아 멀거니 바라만 보던 나와 달리  언니는 발 벗고 나  줄을 알았다.

 

언니는 아침잠이 좀 많았다. 말라깽이 언니가 그토록 활동적일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충분한 수면 분인지도 몰랐다. 침마다 언니를 깨우는 것은 나의 임무였다. 깨우다 깨우다 지쳐 돌아서면 아버지는 언니의 방을 향해  소리치셨다.

 늘락지야, 일어나라, 일어나

 

그러고도 한참을 뭉그적거리다가 일어나는 언니! 그런 언니에믿는 구석이 있었다. 바로 자전거였다. 언니에게는 자전거가 있었다. 여유롭게 씻고 여유롭게  밥 먹고 유유히 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밟던 언니! 아침에 언니는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그와 달리 종종걸음으로 학교에 가던 나. 나는 자전거도 못 탔고 탈 줄 안다 해도 내 몫의 자전거는 없었다.

 

세월이 흘러 결혼한 언니 집에서 직장을 다니던  어느 날, 다니러 오신 엄마는 말씀하셨다.

 

"렇게도 싸워대더니 같이 붙어사는구나. 하나가 큰방에 있으면  큰방으로 쫓아가 싸우고 은방에 있으면 작은방으로 건너가 싸우고 하더니"


'사실, 어머니 못지않게 저도 그것이 상당히 신기할 따름이옵니다. 참으로 수없이도 싸웠네요. 저도 징글징글합니다요. 언니가  마구 약을  올리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언니는 나를 골려먹다. 눈에 잡티가 들어가 걱정스러워하던 내게 언니가  하는 말이 이랬다

 "눈과 코는 연결되어 있어서 눈에 티끌이 들어가면  모두 코로 나와 코딱지가 되어 배출된대."

 "정말?"

 반문과 동시에 철같이 믿으며 고개를 끄덕이 나, 참 순진함도 이 정도면 예술이라!

 "농담이야 농담!"

 깔깔거리는 언니. 자주도 속아 넘어가서, 순진한 건지 미련한 건지 모르겠다 싶으면서도

고약하지 않은 놀림에 우리는 함께 웃고 마는 것이다.


사소한 일에 고민스러워하던 나를 걱정댁이라 부르던 언니,  여전사처럼  용감하고 지혜롭던 울 언니.

흑과 백처럼 확연하게 달랐던 언니와 나는  지구 반대편에서 각자 삶의 터전을 착실히 일구어나가는 중이다.

"언니, 나 이제 언니한테 더 이상 속지 않을 자신 있구먼. 내기할까? 언제 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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