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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탈리 Oct 16. 2023

부치지 못 한 편지

엄마가 졌다

딸아, 기어이 엄마의 만류를 뿌리치고 네가 그토록 염원하던 땅으로 떠난 지도 벌써 열흘이 지났다. 텅 빈 방을 애써 의식하지 않도 쓸쓸한 마음은 좀체 숨길 수가 없구나. 아침저녁으로 창문을 여닫을 때, 커튼을 걷고 치고 할 때, 냉장고에서 네가 다람쥐처럼 물어다 놓은 간식거리를 꺼내 먹을 때마다 네 생각이 와락 달려들고는 하는구나.


'내가 두고 간 간식을 먹어도 됨을 허(許)하노라!'

30킬로짜리 대형 커리어와 16인치 커리어에 네 모든 짐을 구겨 넣고 갈 순 없고, 체류기간이 최소 1년이라 인심이 후해진 너. 너는 영광스럽게도 남은 간식 처리반으로 언니와 나를 임명했다.  평소에 네 간식에 손을 대는 것은 역린(逆鱗)을 건드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말이다.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는 네 비상식량을 야금야금 축내며 우리는 허전함을 달래곤 한다.


왜색은 싫다고, 여행 갈 적마다 선물 같은 거 사 오지 말라 해도 앙증맞은 소품을  사다 들이밀던 너. 엄마가 일본을 싫어하는 이유를 나열해도, 너는 그런 것과 무관하게 일본을 여행하고, 배우고, 알고 싶다고 했다. 노래도 일본노래, 애니메이션도 일본 거, 소지품을 보아도 온통 일본풍. 엄마가 싫어하는 줄 알면서도 너는 아랑곳 않고 너의 색깔을 고수했다.


그래, 엄마는 국수주의자는 아니다. 하지만 예로부터 근세까지 일본의 만행은 제쳐두고 최근 몇 년간 일본의 행태를 볼 적에 어찌 그 나라에 호감을 가질 수가 있겠니. 극우주의자들이 판치는 그런 나라에서 네가 하이, 하이, 굽신거리는 생각만 해도 마음이 언짢다. 오밀조밀한 소품은 우리나라에도 얼마든지 있는데, 예쁜 가게도 엄마든지 많은데 그런 거에 마음을 빼앗겨버린 네가 안타깝다.


지난 1년 동안 두 회사를 옮겨 다니며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너는, 매순간순간마다 힘들어했다.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하다며 아파하는 네게 엄마 아빠는, 차차 적응이 되면 나을 거라고 좀 더 견뎌보라고, 스트레스 없는 일이 어디 있나, 남의 돈 먹기가 쉬운 줄 아냐고 훈계만 했지, 아픈 딸의 마음을 들여다볼 줄은 몰랐다. 그저 남의 집 아들딸들처럼 사회생활에 잘 견뎌주었으면 바라고만 있었다. 평범할망정 그저 사회의 일원으로 문제없이 살아주길 바랐다. 남들처럼.  


너는 퇴직 후 너를 가둬버렸다. 네 아픔에 갇혀 주위를 볼 줄 몰랐다. 편찮으신 외할머니로 인해 가슴이 무너지는 듯한 엄마의 슬픔 따위는 네 괴로움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제 방을 동생에게 내어주고, 좁아터진 동생 방에서 재취업을 위해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는 언니의 스트레스와 근심 불안도 너와는 무관한 일이고, 어깨관절이 아파 잠을 설치는 아빠도 네 안중에는 없었다. 너는 온갖 상처를 혼자 짊어진  독재자였다. 기분이 상하면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입을 다물었고, 무심코 네 심기를 거스르면 고인돌 무게만치의 둔중한 아픔을  우리에게 던져주길 서슴지 않았다.


그럼에도 너는 당당했다. 대청소 후 쉬고 있는 엄마에게 혼자 있고 싶다며 밖에 나가 줄 것을 요구하던 너. 너는 손수 네 식사를 만들어 네 방에서 혼자 먹었고, 네가 원하는 식재료가 떨어지면 세상의 종말이라도 오는 듯, 조금 남았을 시점부터 귀찮을 정도로 구매를 종용했다. 내일 먹을거리가 있는지, 간식은 남았는지 밤마다 냉장고를 체크하는 너는 시어머니보다 더한 상전이었다. 깜빡 잊고 네가 요구하는 재료를 빠뜨린 날은 너의 우거지상이 더더욱 구겨지는 모습을 각오해야 했다. 미식에 눈을 뜬 네게 대체의 유연성이라고는 없었다. 꼭 방송에서 나온 재료만 고집했다. 네게는 인터넷이나 핸드폰이 가족보다 더 소중하고 믿음직스러운 듯 보였다.


집에 가기 싫었다.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너를 지켜보는 우리의 속은 곯아질 대로 곯아졌다. 대화도 친교도 차단해 버린 우거지상의 시르죽은 네 모습을 너는 기억하느냐? 접시 물에 코 박고 확! 가버리고 싶은 엄마의 그 심정을 너는 아느냐? 좀 웃어라 해도 웃을 일이 없다며 기분 나빠하던 너. 행복하여 웃는 게 아니라, 웃으니 행복해진단다......


그러다 너는 상담을 받으러 다녔다. 몇 차례, 가족들에게 못말을 허심탄회하게 늘어놓으며 너는 적으나마 위로를 얻었을 것이다. 정답은 언제나 네 안에 있음을 확인하고 너는 결심을 굳혔 게다. 비로소 어둠을 털어내고 일상으로 조금씩 걸어 나오던 너.


"나, 일본에 워킹 홀리데이 비자 신청했어"

산책하자며 끈질기게 옷소매를 잡아끌던 너의 속셈도 모르고, 아무 생각 없이 따라나섰던 엄마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에 한동안 눈만 꿈벅거렸다. 말리고 싶었다.

"가지 마, 하필 일본 같은 곳에 가서 고생을 하려고 그래?"

"엄마가 일본 싫어하는 줄은 알지만 나 좀 응원해 주면  안 돼?"  

"교환학생 한 학기, 예닐곱 번의 여행으로도 부족해 워홀까지 가려는 이유가 뭔데? 일본이 그렇게 좋아?"

고집불통 쥐띠 딸, 너는 완고하고 단호했다.

통보와 달리 머뭇머뭇, 약간의 경제적인 도움을 청하는 네게 엄마는 어쩔 수 없이 끌려가고 말았구나.


다들 그러더라. 고생 좀 해 보면 정신 차릴 거라며 지원을 끊으라고. 그런데, 주저주저하며 엄마에게 도움을 청하던 너를, 어렵사리 도움을 청하던 너를 어찌 매정하게 거절할 수가 있겠니. 궁조입회(窮鳥入懷)라 했는데, 자존심 강한 네가 오죽하면 엄마에게 도움을 다 청했을까 생각하니 눈시울이 젖어들더구나. 


아빠는 그랬어. 그렇게 일본이 좋으면  제 힘으로 살게 내버려 두라고. 지인들도, 이모들도 모두가, 대학 졸업시켰으면 됐지, 홀로서기에 무슨 보조냐 놔두라는 것을, 엄마는 말했어. 있는 집 같으면 유학도 보내는 마당에 집세 좀 보조해 주는 일이 대수냐고. 엄마도 남의 일 같으면 똑같이 그렇게 말했을 거야. 하지만  울 딸내미가 일도 하며, 일본을 고루 여행하며 배우고 싶다는데....


딸아, 일본행이 도피가 아닌 새로운 출발이길 바라며 엄마는 네게 짤막한 편지를 썼다. 그리고는 비행기 타면 읽어 보라며 찔러 주었다.

'너 자신을 믿고 응원하렴. 너는 꽤 괜찮은 아이야.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하고 축복한다. 잘 챙겨 먹고 건강하게 지내다  만나자꾸나! 잘 다녀오렴!'


'딸내미 보고 싶어 어찌 살까나?' 엄마가 안아주니까, 너는 눈물을 보이며 촬영하는 언니에게는 찍지 말라고 눈을 흘겼다. 뜻밖이었다. 그러더니 채 일 초도 안 지나, 눈물을 훔치고 표정을 바꾸며 사진 찍어 달라 부탁하던 너. 변색의 천재로구나, 너! 그러나, 탑승 게이트에서는 촬영금지라 떠나가는  네 뒷모습은 눈 안에만 담아야 했다.


'엄마, 응원해 줘서 고마워, 여권 만들어서 한 번 와. 사랑해.'

너를 떠나보내고, 네 방에서 쪽지를 읽으며  엄마는 속으로 울었다. 너도 엄마의 쪽지를 읽으며  울었니, 딸아? 오글거려 어떻게 이런 쪽지를 다 썼을까나. 오래 살고 볼일이다.....


딸아, 지금은 네가 갈길을 몰라 방황하여도 언젠가 너만의 길을 찾아 굳게 서리라고 믿는다. 후생가외(後生可畏)라, 공자님은 말씀하셨지. 지금은 네 앞길이 뿌연 안개로 가득하여도 언젠가 햇빛이 들면 여러 갈래의 길이 보일 것이다. 그중에서 네가 가장 원하고 즐길 수 있는 길,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내길, 엄마는 바라 마지않는다. 왜색에 현혹되지 말고 네가 한국인임을 절대 잊지 마라. 좋은 점은 배우고 나쁜 점은 단호하게 물리쳐라. 행운을 빌며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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