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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탈리 Feb 12. 2024

전화벨 소리

화요일.

전화벨이 울렸다. 왠지 반갑지 않다, 두렵다.

울먹거리는 동생의 음성!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엄마 상태가 안 좋다고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며, 알아나 두라고.

애써 오열을 참는 동생을 달래야 했다.


"아우야, 마음 단단히 먹어라. 엄마가 누워 계신 지

일 년이 지났잖니."

"엄마가 이대로 가시면 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엄마처럼 우리도 아이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앞길이 구만 리 같은

아이들의 삶을 응원해 주어야지. 약해지지 마."

그렇게 말하는 나도 조마조마, 마음 가눌 길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언제고 닥칠 일이언만,

당장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었다.


수요일.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 겨 점심으로 식어버린 치킨을 뜯고 있는데 동생한테 전화가 왔다. 엄마

호흡이 너무 가쁘고 가래가 끓는 데다가 한쪽 발에 청색증까지 보이고 있다고. 아침 일찍

언니랑 오빠랑 면회하고 갔고 막둥이들만 남아 곁을 지키고 있다는. '청색증'이란 말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요양원 실습 때 보았던 어르신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손수 머리까지 감을 정도로 보행에 지장 없던 어른이, 그날도 머리를 감고 침상에 누웠는데,

너무 조용하고 기척이 없어 다가가 보니 양손에 청색증이 뚜렷하게 퍼져 있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 보고를 했다. 간호사의 심폐소생술에 이어 요란한 119의 사이렌 소리! 불과

이삼십 분 사이에 일어난 변고로, 놀라 어쩔 줄 모르는 같은 방 어르신들을 안정시키느라

한참 동안 갖은 노력을

다해야 했다.


청색증과 가래! 때가 오고 있는 것이다. 한시바삐 내려가 엄마를 뵈어야 했다.

'아이야, 엄마 아빠 차페(울 엄마의 언어) 좀 구해 다오.'

근무 중인 딸애한테 SOS를 보냈다.

SRT는 당연히 없고 한 시간 정도 후 고속버스 승차권이 있단다.

촉박했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시간 안에 도착해야 했다.


일할 때 빼고는 너무도 느긋한 그이를 재촉하느라 얼마나 눈을 흘리고 옷깃을 잡아끌었던지...... 가까스로 '출발 십 분 전 도착'을 이루어냈다. 평일이라 우리 부부 말고는 승객이 없었다.

우리 탓도 아닌데 괜히 미안해지는 기분이라니...... 자가용 우등 고속버스를 타고 세 시간여를 달리리는 동안, 간간이 마스크 속으로 눈물이 파고들었다.


공주를 지날 즈음이었을까. 빈 가지를 펼치어 시린 하늘을 맘껏 껴안은 나목들, 나목들을 품은

높고 낮은 구릉과 겹겹 산등성을 아우르는 거대한 차령의 한 줄기. 멀찍이서 하얗게 빛나는 산봉우리가 너무나 매혹적이어서 야속했다. 하나의 소우주가 생사를 다투는 이 시간도 세상은, 우주는 제각기의 궤도를 따라 운행을 계속하는 것이 비정하고 야속했다.


J시는 온통 눈천지였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오고부터 사방을 보아도

소복소복 쌓인 눈으로 도시 전체가 동화 속 풍경을 방불케 했다.

"눈이 많아 풍년이 들겠네. 눈이나 좀 털고 다니지."  

차의 지붕 한 켠에 쌓인 눈을 그대로 싣고 다니는 막둥이, 잘 안 떨어진다 변명을 한다.


"엄마, 넷째 딸이랑 사위가 왔구만요. 힘들어 어째."

엄마는 실눈을 뜨고 우리를 응시하지마는 상기된 얼굴에 호흡도 가빠, 몹시 힘들어 보였다.

종잇장보다 얇은 살가죽은 실핏줄이 보이도록 투명했다. 산소호흡기를 썼지만 가래로 인해

호흡은 몹시 거칠고, 구부러져 펴지지도 않는 다리 한쪽 조그만 발에는 청색증이 엷게

퍼져 있는, 차마 눈 뜨고는 못 봐줄 만치 가련한 모습! 그래도 막둥이들이 오전부터

곁을 지킨 탓에 많이 안정된 상태라는데......


"아침나절에는 의사선생이 임종면회라 생각하라고 했었어.

신체의 모든 기능이 다해가는 중이고, 가래는 석션으로 제거해 드리겠지만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거라며, 귀에 대고 좋은 말만 들려드리라 하대."

"아닐 거야. 작년 4월에도 위기가 있었지만, 엄마는 이겨내셨잖아?

면회 끝나는 대로 가래 제거하면 좀 나아지실 거야."

우리는 질문인지 다짐인지 모를 말들을 주고받았다.

"엄마, 치료받으면 숨 쉬기가 좀 나아질 거래. 사랑하는 울 엄마, 또 올게요. 고마워요, 엄마. 미안해요, 엄마."


아이만큼 작아진 엄마의 얼굴을 부비며 안녕을 고하고 물러나왔다. 24시간 곁을 지킬 수가

는 게 병원의 규칙이기도 하고, 또 엄마가 작년처럼 곧 괜찮아지실 거라 믿었기에, 밤차를 타고 집에 오는 편을 택했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우리의 한계..... 차라리, 막연함 속에서는 직관을

따르는 게 현명할 지도 몰랐다. 같이 가자는 그이 말을 듣지 말고, 박박 우겨서 남았어야 했다.


몇 분만 있으면 새날- 내일이 오는 시각.

"잘 도착함?"

다정한 동생은 언니와 형부가 잘 도착했는지 체크하지 않으면 잠이 안 오는 모양이었다.

"응. 여태 안 자고 뭐 해? 내일 출근해야 되잖아. 병원에서는 아직까지 연락 없어?"

"연락 없는 거 보니 괜찮아지신 거 아닐까?"

"그렇겠지? 그럼 잘 자고 또 연락하자."


목요일.

톡을, 마치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병원에서 연락 왔는데 엄마 상태가 아주 안 좋으시대."

잠시 후 또 벨이 울렸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언니, 엄마가 돌아가셨대. 연락받고 병원 가는 중에 돌아가셨다고

병원에서 다시 연락이 왔어. 0시 5분에 호흡이 멎으셨대. 언니, 준비해서 조심히 내려와."

울음 반죽인 동생의 음성......


불쌍한 양반. 그 조그만 체구에서 아홉을 빼내었으니 어디 한 군데라도 온전한 부분인들 있었을까. 지금까지 정신력으로 깡으로 버텨내셨을 터. 날이 궂을라치면 무릎이 쏙쏙 아리다 한탄을 하시던 분. 갈퀴처럼 휘고 마디마디 관절이 부은 손으로 새끼들을 어루만지고 쓰다듬던 분. 막둥이들과 손자 손녀, 증손자 증손녀들의 재롱을 보는 낙으로 지금까지 살아내셨을 우리 엄마. 세상 모든 어머니들이 그렇듯, 가련하지만 위대한 우리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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