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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탈리 Feb 14. 2024

하늘 소풍

지구별 소풍 끝내시고 엄마는 하늘 소풍을 떠나셨습니다.

삼일 내내, 날씨도 따뜻했습니다. 겨울답지 않게. 소복이 쌓인 눈, 푸르디푸른 하늘,

햇살조차 맑아 엄마의 가시는 길을 배웅하는 듯했지요.

그림처럼 산세 좋고 물 좋은 곳에 위치한 입암 시립 묘지. 증손자들은 눈사람 만드느라 신이 났고 어른들도 쌓인 눈을 보고 미소가 벙글었지요. 합장(合葬)을 해 드린 덕에 엄마는 밤마다

아버지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우리 망구, 내가 먼저 와서 미안하네. 노심초사 자식들 챙기느라 수고 많았구먼.'

아마 아버지는 이런 위로를 하시겠지요. 그리고는 당신과 손 잡고 아바이 어마이 뵈러 가자고 조르실지도......


시시때때로 야만이 춤추는 정글에서 힘겨운 일상을 일구다가, 고인의 영전에 서는  우리는 한없이 겸손해집니다. 지난 삶을 돌이켜보기도 하고, 사노라 소원해진 피붙이들이나 지인들과의 친목도 다져 봅니다. 조카나 조카손주들이 자라나는 모습에는 놀라 탄성을 지르기도 하지요.

요만할 때 봤는데 벌써 이렇게 컸어? 

그러나 우리의 노쇠한 모습을 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닌 것을요. 세월을 절로 느끼며 고인의 지난한 삶에 고개가 절로 숙어지는 게 상주나 문상객들의 인지상정이겠지요.


엄마가 살던 동네의 노인회장님과 과수원 아저씨가 오셨습니다.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은

오시려 해도 못 오시고 그나마 정정하신 어른들만 오신 것입니다. 남숙이 친구 누구라 인사를 드리니 어르신은 반가워 어쩔 줄을 모르셨습니다. 할아버지 몸으로 지금도 과수원을 하고 계신다니

놀랍기만 했습니다. 문상객들 모두가 다 고맙고 고마울 뿐이었습니다.


육신의 장벽이 허물어진 엄마가 숨을 곳은 없었습니다. 누구도 엄마의 숨을 거처를 마련해 드리지 못했요. 숨지 못한 엄마는 언어의 문마저 닫아버리셨습니다. 요양병원 병상 위에서 까물거리는 촛불처럼 위태로운 생명줄을 붙잡고 일 년여를 버티신 엄마. 위저드 베이커리의 셰프마술사라면 엄마를 숨겨 드릴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되겠지요. 우주의 법칙에 균열이 생기면 온 우주의 생명체들이 그 충격을 나누어 떠안아야  하니까요.


구십을 넘긴 엄마의 고단한 육신이 고통의 갑주를 벗어버리고 영면에 든 것은 다행이라고 수없이 되뇌고 되뇌어도 슬픔이 줄어들지는 못할 것입니다. 삶과 죽음의 교차점에서 아슬아슬 하루를 영위하는 우리들에게 장례식은 어쩌면 축제 같습니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모여, 삶의 의미와  내세를 생각하게 하는 엄숙하고도 떠들썩한 축제가 아닐는지요.


행복하게 살아라. 우애 있게 살아라. 사랑하며 살아라. 죽어 보니 아무것도 다 필요 없다.

허무하기 짝이 없는 생이라도 살아 있다는 건 축복이다. 하니 행복하게, 너무 아끼지만 말고

적당히 써 가며 누리며 재미지게 살아라.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했습니다. 엄마가 베풀어주신 한없는 사랑을 닮아 우리도

사랑을 베풀고 사랑하다 가야겠습니다.


그나저나 엄마, 다음 생에는 딸과 엄마로 다시 만나요. 가 엄마가 될게요.... 저의 딸로 태어나 엄마에게 진 빚을 갚을 기회를 주세요. 꼭,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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