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덜덜 떨린다. 수전증도 아닌데 손은 왜 떨리누? 직선도, 그렇다고 완전한 곡선도 아닌 난초의 잎새, 부드러움과 강함의 조화를 덜덜 떨리는 손으로 표현해 내기가 너무 힘겹다. 붓끝에서 피어나는 난을 보면 힘조절이 관건인 듯한데, 난공불락 같다.
붓이 안 좋은가 하여 붓을 바꿔 보았더니 느낌이 좀 나아졌지만,
화선지, 그대 앞에만 서면~ 난 왜 작아지는가......
일주일에 한 번, 선생님은 신선의 경지에 오른 듯 붓을 자유자재로 놀리시며 채본을 완성해 주신다. 가지고 온 채본을 놓고 일주일 동안 낑낑대며 연습을 한다. 짧게는 하루에 두세 시간, 길면 네다섯 시간 정도를 난초와 씨름하는 요즘. 인내와 더불어 오랜 시일이 필요한 취미를 하필 왜, 지금 시작했을까 하는 후회가, 이왕 시작했으니 끝장을 낼 때까지 파고 들어보자는 욕구랑 맞서 싸운다.
'기회가 좋잖아, 지금 쉴 때,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햇빛 날 때 건초 말리라 했다고.'
아기 달래듯 자신을 다독여 준비물을 펼쳐 놓고 방바닥에서 '난 그리기 공부'를 한다. 무릎이
아파 자세가 안 나온다. 아무래도 식탁에 펼쳐 놓고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옛 선비들이나 규방의
여인들은 앉아서 잘도 하던데, 이런 자세로 몇 시간을 연습하노라니 허리가 구부러지고 몸이
배배 꼬이고 난리다. 중노동이다. 겨우 하루의 연습량을 마치고 먹물을 버리러 일어서며 절룩절룩 움직거려 본다.
연습한 만큼 성과가 나면 다행인데 아무리 봐도 그렇지 못하니 급한 마음에 그만두어버리고 싶기까지 한다. 그리느니 대파 같고 꽃은 피었으되 향기 없는, 뭉떵뭉떵 조화 같다. 농담은 또 어찌 맞춰야 하나, 선생님은 감으로 맞추어야 한다고만 하시는데 감은 어찌 잡나...... 언제쯤 그리기가 아닌 '난을 치는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을까..... 선생님의 채본에서는 난향이 그윽이 풍기는 듯한데, 초짜의 난꽃은 영, 생기가 없다.
숙제 검사를 맡으니, 잘했네 하시는 선생님. 진정 잘해서 그리 말씀하신 게 아닌 것쯤 알지만 기분은 좋다. 열심히 하라시는 격려의 말씀인 줄. 오늘은 선생님께서 몹시도 복잡스러운 바위와, 사이사이에 핀 난을 그려주셨다. 동영상을 촬영할까 하다가 눈으로 보는 게 더 낫다 싶어 선생님의 붓끝에서 탄생하는 바위와 눈싸움을 하였다.
"나 때는 이런 거 안 그려 주셨는데, 연습을 열심히 해서 그런가, 멋진 작품을 그려 주시네요?"
왼쪽이 채본이고 오른쪽이 학생의 연습작(굳이 표시를 하지 않아도 구분이 가실 것입니다.
익살꾼 학생의 악의 없는 시샘에 웃음이 번진다. 제일 먼저 도착하여 이래저래 수업 준비를 해 놓는 학생선생이다. 나이 지긋한 학생들의 말싸움도 배우는 내내 귀를 즐겁게 한다. 만담꾼 저리 가라 입담이 세다. 그들은 배우는 자체를 즐기는 것 같다. 좋아해서 배우는 단계를 지나 즐기는 경지에 이른 선배들이 부럽다. 열심히 갈고닦아 선배들의 경지에 도달하고 싶다는 욕심은 너무 성급할지도 모르지만, 뚜벅뚜벅 걷다 보면 오늘보다는 나아지리라는 기대만은 버리지 않으련다.
눈에 심지를 돋우고 관찰, 또 관찰. 그리고 흉내내기...... 겨우 두 장 연습하고 돌아왔다. 난도 어렵지만 바위는 더 어렵다.그리고자 하는 사물을 마음껏 그려볼 날을 향해 굼뜬 걸음 멈추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