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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탈리 May 02. 2024

수브다니의 여름휴가

진정한 나를 찾아

 

수브다니는 녹슬고 싶었다. 녹슬지 않는 삶이 견디기 힘들었다. 안드로이드였다가 인간이 되어, 인간의 삶을 누리고 싶었으나, 본질에의 염원이 그를 압도하는 걸 막을 수는 없었던가. 수브다니는 금속 피부를 얻고 싶어 한다. 그리하여  바이오해커의 메카인 성수동 버드나무거리의 솜솜 피부관리숍을 찾는 수브다니. 유전자 개조 셀프 키트를 쉬이 손에 넣을 수 있고, 신체가 요상스레 변형된 사람들이 기묘한 모습으로 활보하는 버드나무 거리!


'인간의 재료가 달라지면 인간과 세계의 상호작용이 바뀌지 않을까'

본질과 피부와의 관계에 깊이 탐구하는 사장의 위와 같은 가설이 수브다니의 경우를 통해 입증될 수 있을까. 사장은 신체의 극단적 변형에 따르는 위험을 알리며 수없이 많은 거절을 하지만, 수브다니의 집요함을 꺾지는 못하고 위험한 시술을 승낙한다. 경제적인 보상에 밀려 시술은 이루어지고, 벌떼처럼 달려드는 매스컴을 피해 솜솜 피부관리숍은 잠정적 영업중지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


한때 수브다니(수안 최)는 유명 아티스트의 연인이자 동료였고, 반인간 시술 후 결혼까지 하여 세인들의  이목을 끌었던지라, 그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운 이들이 많은 건 당연했다. 파경 후 진흙탕 싸움에 빠진 그들. 얼마 전까지 매스컴을 오르내리던 어느 커플처럼 그들도 네 탓으로, 서로에 대한 원망으로 일관했던 터였다.  


수브다니로 추정되는 주검의 발견으로 수브다니 사건이 사람들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날 즈음, 솜솜 피부관리숍 사람들은 수브다니의  근황을 담은 사진을 받는다.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수브다니의 모습! 수브다니는 시술 후 여름휴가를 떠날 거라 했었다. 그토록 원하던 여름휴가를, 그토록 원하여 시술받은 금속 피부를 푸른 바닷물에 담가 녹슬게 만드는 데에 허비하다니. 팔꿈치 아래까지 파고든 녹은 그의 운명을 말함인가. 적극적인 순응을 말함인가. 그 순간 그는 행복할까?


한창때 연인과 작업했던 '변화의 실행'을 재연하는 그. 폐기된 로봇들과 손을 묶고 밀려왔다 빠져나가는 파도를 맞으며 행복하게 웃던 순간(연인이 곁에 있던 그 순간)! 폐기된 로봇은 차차 녹슬어 가도, 그는 영원히 녹슬지 않는 바이오플라스틱 피부를 지녔기에 녹이 침범하지 못할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수브다니는 안드로이드가 아닌 반인간에다가 금속피부를 지녔다. 이미 해체된 동료 로봇처럼 녹슬어, 소멸을 향해 다가갈  수 있는 존재다. 게다가 연인과 만들었던 작품을 해체하여 어깨에 장식으로 달기까지 했다. 파도에 몸을 담그는 그는 철저히 혼자다. 고독한 수브다니. 그는 동료들과의 동질감을 찾아,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여름휴가를 떠난 건 아닐까. 가장 행복한 순간은 '자신이 남이 아닌, 오로지 자신인' 순간일 거라는, 그에게 필요한 건 반인간이 아니라 녹슬 수 있는 강철 심장일지도 모를 거라는, 추측. 녹이 비집고 들어도 행복한 순간의 진정한 나는 녹슬 수 없다는 것을 강철 심장은 입증해 줄 거라는 믿음. 수브다니와 떠나본 여름휴가가 서늘한 아름다움으로 가슴을 할퀴는 이유이다.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의 결말이 오버랩되는 수브다니의 여름휴가! 영원한 생명-기계 몸을 얻기 위해 우주를 항해하던 철이, 전 재산을 다 바쳐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들의 말로를 철이는 보았다. 그들에게는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도 꿈도 없었다. 기계몸을 얻은 그들은, 끝도 없는 나락(행성의 부품이 되는 운명)에 발을 담근 채 영원함을 주체할 수 없어 자신을 내팽개치는 우를 범한다. 그토록 바라던 영원이 자신에게 발등의 도끼가 되어가는 모습! 처참함의 극치와도 같았다.  


영원이란 건 뭘까? 시간이 영원하다 한들 어제의 시간은 오늘의 시간이 아니고 어제의 하늘은 오늘의 하늘이 아닌 것을. 유한한 존재로서의 삶이 우리가 지고 나가야 할 정체성이다. 시한이 있기에 삶은 더더욱 소중하고 귀하다. 신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지 않은 것, 유한한 생의 묘미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동감하십니까, 수브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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