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탈리 Oct 15. 2024

목요일, 성수동에서


직장에 적응한다는 핑계 하에 석 달 가까이 글과 멀리하며 지냈다. 너무 멀리 와 버린 건 아닌지 생각할수록 걱정만 늘어가는 와중에도, 바지런히 새 글을 발행함으로 필력을 맘껏 발산하는 작가 님들이 못 견디게 

부럽기만 했다. 질시가 반의 반, 또 그 반의 반 스푼쯤 섞인 존경의 화살을 아무도 모르게 쏘아 보내며 웅크린 

초보 작가에게 요즘 들어 소슬바람은 어서어서 글을 써라 야단이고, 머릿속을 떠다니는 오만가지 잡다한 

생각들, 문장이 되고 싶어 안달인 단어와 단어들은 바깥바람을 쏘여 달라 틈만 나면 졸라댄다. 일단 쓰면 

되는데, 시작도 못하고 염려로 시간만 축내다니. 큰맘 먹고 새로 장만한 노트북이 숨죽여 울고 있는 것만 

같다. 주저는 결단코 허락지 않으리라. 어금니를 깨물어 보건만, 저녁 설거지가 끝나면 몸은 해면처럼 

흐물흐물, 이부자리로 스며들고 마는 것이다. 


‘게으름뱅이, 게으름뱅이! 언젠가 때가 오면 쓰겠지, 반드시 쓰고 말 거야.’

이런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던 나날들. 어디까지 자신을 드러낼 것이며,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이야기의 어디쯤에서 과감히 끊어내야 하는가. 결실 없이 보낸 시간을 해명이라도 하듯 이러한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해명이라기엔 궁색하기 짝이 없지만.



참으로 게으름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어미를 안타까이 지켜보던 젊은이 - 어미의 잃어버린 자아를 

위해 무던히도 신경을 쓰는 첫째는 어미의 일정표를 받아내더니 기어이 일을 만들어버린다. 

“목요일 엄마 쉬지? 성수동 가자. 작가의 여정이라는 브런치 스토리 팝업 전시에 예약해 놓았어. 엄마가 

수행해야 할 휴일의 미션이야!”

쉬고 싶은데 성의를 무시하면 안 될 것도 같고, 이미 예약을 해 놓았다 하니 가는 게  옳은 일일 것도 

같고...... 좌 큰딸 우 작은딸 사이, 눈부신 가을 햇살을 손바닥 차양으로 가리며, 소심한 브런치 작가 1인은 

결박 아닌 결박에 상당한 압박을 느끼며, 발걸음을 떼어야 했다. 



낡음과 새로움이 공존하는 성수동 거리는 평일인데도 오가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고, 팝업 스토어도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대로변 공사현장의 레미콘 차량과 골목골목의 차량, 사람들을 헤치고 인솔자의 팔에 이끌려 WAYS OF WRITERS 가 대문짝 만하게 쓰여 있는 토로토로 스튜디오에 도착하였다. 작가 님이냐 묻는 스탭을 향해 아이가 단박에 나를 가리키고, 순간 밀려오는 쑥스러움, 당황스러움! 작가라 하면 뭔가 이지적이고 

작가다운 분위기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난 그 이름에 걸맞은, 어울리는 사람인가? 게다가 방학 중인데. 


예리한 질문이 자꾸 어깨를 움츠러들게 만드는 가운데, 참여 표지를 팔찌 삼아 나란히 입장하고 보니 즉석에서 사진을 찍어 브런치 작가 신분증을 만들어 준다 한다. 카메라 앞에 서는 순간 또 당황, 온몸의 근육이 

경직되는 것을 가만 달래야 했다. 신분증과 작가의 여정이라 쓰인 소책자를 들춰 보며 다음 방으로 이동을 

했다.




브런치 작가 대상 수상작들을 전시한 공간, 한 달간의 글감을 제시해 놓은 공간, 브런치작가 인턴 체험 공간, 작가가 작가에게 격려의 글을 적어 나누는 공간 등등, 다양한 공간을 관람하고 느끼고 참여함으로써, 글을 

쓰는 데 참신한 자극과 영감을 얻어 가시라. 브런치 스토리의 새로운 콘텐츠 큐레이션 공간 - 틈을 통한 새로운 글쓰기도 도전해 보시라. 그리하여 좋은 글들을 꾸준히 발행하시라. 글이 힘이 되는 경지에 이르도록,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시라. 



그래, 아이는 방학 중인 엄마의 정수리에 심리적인 자극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눈이 침침하다는 핑계로 

인풋도 멀리하고 아웃풋도 게으르던 엄마가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이곳저곳으로 엄마의 손을 이끄는 

아이. 잘 쓰는 팁과 글감의 모티브가 적힌 메모지들을 아이와 함께 한 장 두 장, 소중히 챙겨 모았다. 

레시피까지 제시하며 글쓰기를 독려하는 주최 측의 다정함이라니!

아이의 의중(주최 측의 의중과 다르지 않을 듯)을, 어찌 모를까. 한 명의 브런치 작가를 탄생시키기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던 기획자의 깊은 뜻을, 엄마의 내면에 부어주는 깊은 관심과 사랑을! 처음 일상에 지친 

엄마에게 갤럭시 탭을 사다 안겨주며 글쓰기를 권유하더니, 끝내 브런치 작가를 만들었다! 끝내주는 기획력 추진력! 그야말로 엄지 척이다!


퍼뜩이는 비늘, 반짝임, 미소, 상긋한 대화로 공간은 다소 붐비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분명 축복받은 

일이지만 글을 씀으로 힘을 얻는 경지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의 이랑들을 파헤치고 뿌리고 다독여야 할지. 영민하신 작가 님들은 이미 터득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크나큰 자극을 받아라, 여태껏 갈 바를 모르고 

주저하는 병아리여! 



오늘의 미션은 일단, 성공인 것 같다. 노트북을 열고 부지런히 자판을 두드리는 병아리! 

‘오늘 쓸 글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일단 써라!’ 

‘한 줄이라도 써라!’

어느 작가 님의 뼈 때리는 조언을 심중에 새기고 또 새겨 보는 이 밤.




작가의 이전글 마누라 10년 젊어 보이기 운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