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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라, 가제트 만능 팔!

by 나탈리


2인 1조로 시트를 정리하면 좋을 듯한데, 10년 경력의 선배가 어려워 차마 제안도 못하고, 혼자서 넓고 기다란 시트를 개키던 중이었다. 양팔을 한껏 펴고 시트의 끝을 잡아 귀와 귀를 맞춰야 하니, 목 관절, 어깨관절까지 덩달아 긴장을 하여 자세가 영 편하지가 않다.

“아, 팔이 좀 길었으면 좋겠네!”

혼잣말처럼 중얼거릴 때, 동료 선생님이 내뱉듯 한 마디를 던진다.

“그럴 때 가제트 만능 팔이 있어야 하는데!”

빙고, 정답! 반가움에 바삐 놀리던 손을 일순 멈추고 들뜬 목소리로 맞받아쳤다.

“어머, 선생님도 가제트 만능 팔을 아시네요? 반가워라. 맞아요, 저도 매번 느낀 건데, 컴퓨터 형사

가제트의 만능 팔이 간절히 필요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어렵게만 느껴지던 그녀가 갑작스레 친근하게 느껴지며 이야기가 술술 나온다.

“제가 다른 사람에 비해 팔다리가 좀 짧거든요. 그래서 저에겐 가제트 만능 팔이 절실하게 필요했답니다.

스스로를 실없다 느끼면서도 늘 ‘나와라 가제트 만능 팔’을 외치곤 하였지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서요.”


다운로드 (1).jpg 출처 : imdb. com


눈치껏 수다를 일단락하고, 손을 움직이면서도 마음은 만능 팔에 사로잡혀 둥실둥실 내려올 줄을 모른다.

욕심껏 물건을 집어 들고 싶은데 짧고 뭉툭한 손가락이 따라주지 않아 못마땅할 때, 높은 곳의 무언가를

내려야 하는데 도움 청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좁은 틈새에 귀중품을 빠뜨렸을 때, 나는 얼마나

‘나와라, 가제트의 만능 팔!’을 외쳐 댔던가. 비 올 때 우산이 없어도 가제트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주문만 하면 정수리에서 우산이 짠! 하고 펼쳐지니까. 또한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버튼만 누르면

낙하산이 생겨나고, 물에 빠져도 몸 자체가 구명조끼처럼 공기로 가득 차 떠오른다.


이쯤 되면 사막이건 불구덩이건 그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못할 성싶은데, 그렇다면 만능의 몸을 지닌

컴퓨터형사가 만능의 형사 역할을 과연 잘 해냈던가? 전혀, 아니었다. 유감스럽게도 컴퓨터 형사의

컴퓨터는 오작동할 때가 많아, 그가 당황하여 탄식을 몇 차례 내뱉는 사이, 사건은 정작 귀여운 꼬마 여자애와 강아지 브링이 도맡아 해결해 버린다. 우여곡절 끝에 현장에 도착해 보면 악당의 우두머리는 이미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으며, 어리숙한 부하들만 줄줄이 포박되어 끌려가는 상황이 그를 맞아주곤 했다. 꼬마 주인공과

브링의 눈부신 활약 덕에 얻어진 깔끔한 마무리! 사건 해결에 아무런 보탬도 주지 못했지만 제 역할에 대한

의구심에 사로잡히지도 않고, 마냥 씩씩한 가제트! 그래도 적절한 때 그곳에 있던 공인지, 치하는 가제트가

다 받는다. 뭐, 주인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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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 GPT에게 요청했더니 이런 그림을! 가제트 사촌~


주인공 가제트의 빛나는 활약상을 기대하고 보자면 실망스러울 수도 있지만, 우스꽝스럽고 실수투성이인

컴퓨터형사와 어리고 총명한 주인공의 극명한 대비가 오히려 흥미로웠다. 가제트를 응원도 하고, 손 하나

까딱 않고 받는 상의 느낌이 어떨까, 뻘쭘하지 않을까 상상도 하며, 컴퓨터 형사는 머나먼 미래에나 가능한

일일 거라고, 그때로서는 그저 공상과학이라고만 여겼었다. 하지만 지금의 속도로 AI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다 보면 진짜 가제트는 머잖아 실현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 가제트를 능가하는, 컴퓨터 형사가

나올 수도 있으리라. 인간과 대화하고 인간의 마음을 읽는 AI도 이미 등장한 지금......


다운로드.jpg 출처 : pinterest. com


비음이 많이 섞인 음성으로 ‘나와라 가제트 만능 팔!’을 외치던 그때 그 시절의 성우 배한성 님! 정말이지

그보다 더 잘 어울리는 음성이 또 있을까? 그 음성에 매료되어 아이들 앞에서도 종종 흉내를 내어 보았지만,

피카추 보라돌이를 추억의 저장고에 쟁여두었을 아이들은 웃어 주질 않았었다. 당연히 가제트를 모르니

웃어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삶의 현장에서 드디어 만났다. 나와라, 가제트 만능 팔을 너무도 시의적절하게 소환해 내어,

동질감 내지는 동시대인을 만난 안도감을 느끼게 만든 장본인을! 그녀와 나의 역할이 바뀌었더라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기쁨을 맛보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어찌나 반갑던지 일손을 잠시 멈추고 쾌속으로

수다를 떨어볼 수 있었다.

팔다리가 짧아 서러운 여인, 가제트 만능팔이 상용화될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주저리주저리.....



컴퓨터 형사 가제트, https://youtu.be/EmZF6m66Z4c?si=EHD8QeM2LmFwjCw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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