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가 없으면 살아갈 힘이 나지 않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그 꿈이 무엇이냐 하면,
요즘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진 꿈이기도 한 '내 집'을 갖는 것이었다.
엄마 말에 의하면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크면 멋진 2층 집을 지어서
엄마, 아빠랑 같이 살겠다고 말하곤 했단다.
처음엔 그랬다.
우리 집은 시골, 그것도 정말 슈퍼도 없는 깡시골에 있는 친가에서 살다가
수도권으로 넘어왔을 때 정말 단칸방에 부엌은 신발을 신고 쓰는,
겨울이면 물이 얼어 미끄러지기도 하는 그런 부엌에 화장실은 밖에 있는
공용 화장실이 있는 그런 집에 살았다.
그리고 2년마다 이사를 다니며 집을 바꿨는데,
그중 기억이 많이 나는 집은 딱 응답하라 1988에 나올 것 같은 골목 안쪽의 반지하 집이다.
반지하 집에서 이런저런 기억이 많지만 집에 관련된 기억으로는 여름에 홍수가 오면
집 안에 물이 차기도 해서 퍼 날랐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 다세대 주택의 2층에 위치한 집으로 이사 갔을 땐 제법 기뻤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임대 아파트지만 잠시 아파트에 살다가 임대기간이 끝나고,
집을 살 금액까지 없었던 우리 집은 다시 이사를 다니는데 대부분 반지하였다.
엄마는 종종 어릴 때 내 얘길 소환하며,
그랬던 딸이 크더니 집 지어서 같이 살잔 소리도 안 한다고 투덜대곤 한다.
그것은 내 입장에선 당연한 일이었다.
어릴 적은 어리니까 온 식구가 단란하게 좋은 집에서 사는 것이 소원이었다.
하지만 부모님의 사이는 단란하지 못했고, 결국 파경을 맞았다.
그런 환경에서 어떻게 어릴 적의 천진난만한 꿈을 고집할 수 있겠는가.
다만 집을 갖고 싶다는 꿈만은 더 확고해졌는데,
그건 어서 커서 '우리 집'을 탈출하고 '내 집'을 갖고 싶다는 강렬한 소망이었다.
집을 사려면 돈이 필요했다. 그것도 꽤, 엄청나게 많은 돈이.
그건 굳이 내가 알려고 하지 않아도 매달 집세만으로도 쩔쩔매던 우리 집 경제상황이나
이사 다닐 때마다 좋아 보이는 집은 우리 집이 될 수 없었던 그런 상황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내가 살고 싶은 집을 사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구나.
나는 돈이 벌고 싶었다.
하지만 돈을 벌 수 없는 어린아이였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성인이 되었을 때,
나는 정말 돈이 벌고 싶어서, 그것도 안정적이고 고정적인 수입이 벌고 싶어서 공무원이 되고 싶었다.
내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때가 공무원붐이 한참 일던 때로,
커트라인은 매번 높아지는 느낌에 공부할 양은 정말 더럽게 많은데 문제 수는 적어서
한 문제만 실수해도 시험의 등락이 나눠지는 때였다.
그리고 난 1년은 가볍게, 1년은 정말 온 힘을 다해 공부했지만 시험에 떨어졌다.
떨어져서 낙담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홀가분한 마음이 훨씬 컸다.
공부라면 어느 정도 자신 있던 내가 나의 젊음을 꽤나 투자하고도 떨어질 시험이라면,
더 이상 미련 갖지 않기로 하고 바로 고용센터에 취업패키지를 등록하여
자격증을 취득하고 면접을 보고 다니다 어느 회사에 합격했다.
중소기업 신입 사원의 연봉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당시 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던 나에게
회사의 급여는 아르바이트와는 견줄 수 없을 정도로 큰돈이었다.
게다가 종일 앉아서 일하는데 그런 돈을 벌 수 있다니!
어려서부터 돈 모으기 역시 자신 있던 나는 저축의 정석처럼
월급을 배분하여 큰 적금을 들고, 일정 소비금액과 집에 드릴 생활비를 제외한
모든 금액을 또 차곡차곡 모았다.
그렇게 3년을 모으니 어느 정도의 돈이 모여
나는 마침 본가의 이사 시점에 집을 알아보아 독립을 했다.
그때의 나는 당장 집을 살 때까지 모으려니 부모님과 사는 것이 불편해졌고,
집 가격이라는 게 너무 커서 아무리 대출을 받는다고 해도 집을 사서 독립하는 건
너무 오래 걸릴 것이라는 예상에 우선 혼자 살기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독립의 과정에서 몇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론만 말하자면
나는 6개월 정도 독립하여 살다가 다시 본가로 집을 합쳤다.
막상 나가 살고 보니 난 외로움이 쥐약인 인간이었다.
어릴 적부터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을 쭉 하며 살아오긴 했지만 그래도 독립적이라 생각했는데,
혼자 살게 되니 퇴근하고 어둠에 잠긴 집에 발을 들여놓을 때부터 숨이 막혀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재정적으로도 간신이 반전세를 구할 돈을 모아서 바로 나온 것이라
매달 관리비며 내가 숨만 쉬어도 나가는 비용과,
텅 빈 집에 없는 물건을 채우는 비용이 벅찼다.
정신적으론 공허했고 재정적으로 궁핍했다.
본가로 돌아온 나는 나의 성격상 여유자금 없이는 독립도 녹록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별수 있나, 돈을 더 모으기로 했다.
때마침 나의 결혼 상대도 찾게 되었다.
혼자 있으면 외로움에 파묻혀 버리는 나.
혼자보다는 둘이 나을 것 같아 결혼을 하며 다시 두 번째 독립을 시도했다.
우리는 둘이 살기에 적당하면서도 편리한 인프라가 갖춰진 곳에 신혼집을 전세로 마련했다.
하지만 거기서 아이가 태어나면서 집이 비좁게 느껴지기도 했고,
처음엔 집을 여러 채 소유한 부자라던 집주인이
전세금은 다음 세입자가 들어와야 줄 수 있다던가 하는 그런 행태를 보이기에
난 다음 집은 꼭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당시 남편의 소득이나 나의 소득은 비등비등했고, 둘 다 신입~대리 정도의 직원이어서
소득이 크진 않았지만 다음 집을 사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열심히 저축해야 했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과소비는 하지 않았더니 한 사람의 월급으로도 충분히 생활은 가능해서
다른 한 사람의 월급정도는 무조건 저축하는 것으로 정하고 열심히 모았다.
1년이 지나니 정말 신기할 정도로 많은 돈이 모여있었다.
혼자 독립했을 때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기에,
나의 독립을 위해서 참 결혼하길 잘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는 지독한 집주인에게 다음 세입자까지 구해주고,
우리가 가진 돈으로 최선인 집을 구해 나왔다.
남편과 나, 우리에게 처음 우리들 이름의 집이 생긴 것이다.
여기까지 주절주절 써내려 왔지만, 내가 열심히 돈 모아 집을 샀다는 자랑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의 거의 평생의 목표이던 집을 사자마자,
(물론 대출이 반 넘게 껴있는 집이라 완전한 내 집이라곤 할 수 없는 집이지만)
나는 목표가 없어진 것이다.
그게 무슨 문제인가, 집 있으면 된 거 아닌가, 싶겠지만 막상 닥쳐보니 그렇지 않았다.
대출금을 갚는 게 목표라고 하자니 난 일단 아이가 클 때 안정적인 집에서 키우고 싶었기에
더 우리 집이 간절했던 것뿐이라,
대출을 갚고 자산을 늘리고, 혹은 더 좋은 집으로 이사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아이가 크는 동안은 열심히 이 집에서 살아나가자.
하지만 아이가 성인이 되면 상황 봐서 집을 유지하던, 집을 팔아 현금을 챙기던 유연하게 움직이자,
정도의 생각이기에 더는 이전처럼 열심히, 악착같이 돈을 모을 이유가 사라졌다.
돈을 모을 이유가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자,
돈을 벌 이유도 찾지 못했다.
물론 이 때는 육아휴직 끝에 코로나가 겹치면서 복직하지 못했고,
상황도 상황인지라 실업급여를 받으며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져 더 울적했다.
돈을 버는 게 좋은데. 그런데 벌어서 뭐 하지? 괜히 힘만 드는 거 아닌가.
이런 도돌이표 같은 생각들...
애초에 나의 목표는 멋진 커리어, 하고 싶은 업무 같은 게 아니라 돈을 버는 것이었기에
돈을 벌 이유를 찾지 못한 나는 우울할 땐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까지도 연관 지어 버렸다.
돈.
어려서부터 참 지긋지긋하게 들어왔기에 내겐 애증의 존재인 돈.
돈에 대한 목적을 상실한 것이 인생을 흔들 정도로 나는 돈에만 눈이 멀어있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허망한 생각들로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아이는 계속 크고 있고,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는 바람도 커져가고 있었기에
나는 그냥 닥치는 대로 했다.
강의를 들으며 그림도 그려보고, 만들기도 해 보고, 그러다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뒤적거리기도 하며
내게 활기를 돋아줄 무언가를 찾아다녔다.
그러다 지금까지 하게 된 그 프리랜서 일을 찾은 후엔 계속하다 보니 이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 돈은 내 목표가 아니다.
나의 일은 반복적인 업무라 지루하고 집중이 안 될 때는
유튜브의 온갖 강의나 교육 콘텐츠를 켜놓고 라디오처럼 들으며 작업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날 한 교수님의 강의를 보고 한번 해볼 만하겠다,
라는 생각에 그분의 책을 사서 기록을 해보았다.
바로 김익한 교수님의 책, '파서블'이었다.
처음 유튜브에서 내가 혹 한 내용은 수많은 책을 읽고도 기억이 흐릿한 나 같은 사람에게,
책을 읽으며 메모를 하면 줄거리를 통째로 줄줄 욀 수 있는 그런 기억으로 바꿀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결론적으로 실제 그 방법을 적용하여 책을 딱 한 권 읽어보았는데,
그냥 주욱 읽었던 다른 책 보다 몇 배는 더 세세하게 기억나는 것이 효과는 있는 듯하다.
하지만 학구열이 높지 않은 아줌마는 중간에 책을 멈추고 메모하는 것보다
재미있는 스토리를 끝까지 이어 읽는 걸 선호해서 한 권, 이상은 실천하지 못했다.
'파서블'에선 이런 독서법이 아닌 나의 매일매일을
인생 전체의 방향으로 흘러가게 하는 기록법에 대한 지침이 상세하게 나와있다.
정말 실천하면 하루하루 뿌듯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내용이어서 감명받고 실천했는데,
극강의 계획형이면서 그 기록으로 인해 나의 계획에 더 사로잡힌 나는
너무 치밀한 기록과 계획이 스트레스를 심화시킨다는 것을 알곤 조금 느슨하게,
나의 일상 일기를 꾸준히 해오는 것으로 바꾸긴 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누구나 한 번은 책의 내용을 실행해 보면
인생의 방향을 잡기에 좋은 실천서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책에서 제일 강조하는 것은 내 인생에 걸쳐 내가 정말 이루고 싶은 목표, 꿈을 정한 다음
나의 일상을 한걸음, 정말 한 톨 정도라도 그 꿈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집을 사기 전까진 내내 '내 집 마련'이 꿈이던 나는
나의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 꿈이 생각나지 않아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그러다 몇 가지 상상해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일들을 꿈의 후보에 넣고,
일상을 조금씩 꿈의 방향으로 움직여나가다 나의 꿈을 어느 정도 확정 짓게 되었다.
나처럼 경제력 말고는 인생의 목표가 없어 방황하는 이에게,
막연하게나마 꿈을 정해놓고 그 방향으로 가다 보면 이게 진짜 내가 바라는 것인지
그냥 좋아 보여서 꿈이라고 정했는데 역시나 나에겐 안 맞는 꿈인지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위의 과정을 거쳐서 찾아낸 나의 꿈 중 하나는 작가가 되는 것이다.
어릴 적 책 읽기도 좋아하고 글 쓰기도 곧잘 하긴 했지만,
내가 작가가 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는데 내가 진정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생각하고 보니 난 나의 글을 쓰고 싶다는 하나의 결론에 다다랐다.
지금 쓰고 있는 이 브런치의 글도, 이런 나의 한 발짝 실행의 결과이다.
브런치에서는 이미 글쓴이를 '작가'라는 호칭으로 불러주니,
어느 정도의 작은 꿈을 실행한 것이기도 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작가가 되는 것을 설명하자면,
살아가면서 내 이름이 찍힌 책을 한 권은 내고 싶다.
장르는- 글쎄다.
이런 에세이가 될지, 또 감수성에 젖고 문학에 빠져 시가 될지,
아니면 최근 가장 많이 읽은 책 종류에 해당하는 그림책이나 동화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난 소설가가 되고 싶긴 하다.
끝을 낸 소설을 쓴 적은 없지만
수많은 소설들을 읽으며 감명받고 그들의 삶에서 배우고,
또 매료되기를 반복한 나에겐 내가 쓴 소설이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가가 될 수 있을까?
이런 막연한 불안과 질문 대신,
나는 틈틈이 책을 읽고 책을 공부하고,
또 순간마다 생각나는 아이디어를 적어두고 짤막한 스토리도 지어본다.
작가, 그리고 소설가라는 목표를 정했으니 매일 한 톨만큼 그 방향으로 가보는 것이다.
언젠가. 될 수도 있겠지.
그런 마침표를 지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