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도망치며 사는데에 최적화된 나
'초식 인간'
나는 언젠가부터 스스로를 '초식 인간'이라 정의했다.
어른이 되어 어느 순간부터 이 세상이 문명 사회이지만
여전히 밀림 속 정글과 같이 강자와 약자로 나뉜 세계라 생각되고,
그 속에서 나는 절대로 강자, 육식 동물이 아닌
그 반대편의 약자, 혹은 초식 동물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매일 매 순간 경쟁과 비교, 우열을 가리는 이 사회에서
초식 인간인 나는 어떻게 살아가는가- 누군가 묻는다면,
내가 먹을 수 있는 풀을 뜯어먹으며 싸워봤자 질 수 밖에 없는 육식 인간과의 싸움을 피하며,
또 언제든 도망칠 준비를 하는 것과 동시에
육식 인간의 이빨과 비교는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내가 가진 뿔을 갈고 닦아 더 뾰족하게 만들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언제부터 였을까.
내가 스스로를 초식동물과 빗대어 생각하게 된 건.
그건 나의 인간관계에서부터였다.
친구 관계에서도, 연인 관계에서도.
나는 언제나 한 발을 뒤로 빼고 상처받기 전에 뒤돌아 달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바탕에 무엇이 깔려있는지 정확히는 알지 못하지만,
아무래도 어려서부터 노출된 부모님의 다툼과 그로인해 불안정하던 가정환경의 탓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 언제부턴가, 나는 사람을 대할 때 보이지 않는 벽을 하나 두곤했다.
그 벽은 처음엔 1M의 거리 이상의 두터운 벽으로 속을 쉽게 내어주지 않았지만,
시간이 갈 수록 점점 두께는 줄어들었으나 끝끝내 벽을 거두지는 않았다.
그리고 상대가 벽을 넘거나 부수려는 기미가 보이면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저 멀리 달아나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저 벽이 없으면 나는 처참하게 무너질거라고.
회복하지 못하고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거라고.
그래서 굳건해진 나의 벽은 세월이 지나고
나이를 먹을 수록 더 견고해지고 교묘하게 나의 앞을 막고 있다.
나는 학창시절 친구관계에서 영영 잊지 못할 상처를 입었다.
어마어마한 학폭도, 사악한 아이의 따돌림도 아니었지만 그냥 혼자였다.
수많은 사람, 또래의 아이들, 그 사이에서의 완전한 고독.
학교에 가는 매일매일이 고통스러웠고,
버티면 된다는 생각으로 나가서 버티기만 했지만 매순간 마음이 허물어졌다.
그러잖아도 불안정했던 나의 마음이 무너진 것은 그 때 인것 같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상처받지 않으려면, 내가 더 무너지지 않으려면
안전한 벽을 만들어야겠다는 나의 생각이 견고해진 것은.
벽을 치고 사람들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조금은 외롭다.
하지만 그것은 군중 속에서 숨이 막힐 것 같던 고독과는 다르며,
내가 그 어느 누구와도 관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단지 거리를 두기 때문인,
내가 선택한 외로움이기 때문에 나에겐 견딜 수 있는 정도의 외로움이다.
장점으로는 크게 상처받지 않게 되었다.
물론 난 여전히 인간관계가 내 삶의 가장 어려운 난제이다.
전-혀 상처를 받지 않는다던가 수월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괴로울 정도로 상처받을 일은 없다.
타인에게 그 정도의 거리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선을 넘거나 날 괴롭게 만드는 조짐이 보이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친다는 나의 신념은
훗날 선한 이를 기억하며 가끔은 '조금만 더 참아볼걸' 후회되기도 하였으나,
대부분은 미련없이 끝났다.
그래서 지독할 정도로 인간관계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있고,
사람을 믿지 않는 내가 크게 상처받지 않고 그래도 나를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되었다.
피로 이어져있고, 너무 가까워서 '거리두기'라는 것이 쉽지 않는 것이 가족이다.
나 역시 가족과는 거리두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살아가면서 나에게 상처가 되는 가족과는 역시 가족일지라도 거리를 두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애증의 관계인 엄마와의 관계가 가장 어렵다.
어려서는 나에게 절대적인 존재였자,
엄마의 말 한마디가 나의 행동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엄마는 내게 큰 존재였다.
하지만 성인이 되서부터 그 엄마의 말이 절대적으로 다 옳은 것은 아니라는 판단을 하게 되었고,
엄마의 습관적인 한풀이와 옛날 이야기(주로 친아빠와 관련된 험담)가
내 마음을 좀먹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속상하지만 엄마와의 거리두기는 진행중이다.
이제는 나이가 든, 할머니가 되어가는 나의 엄마는 예전의 독한 모습이 많이 줄었고
나의 아이에겐 매우 다정하고 유쾌한 할머니이며
나에게 무슨 말 한마디를 해도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이지만,
여전히 엄마의 툭 하는 말 한마디에 내 마음이 쿵 내려앉을 때가 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간간히 연락하는 것으로 엄마와의 거리두기는 진행중이다.
그리고 새로 생긴 나의 가족으로 남편과 아이.
남편은 같이 산지 10여년정도 되었지만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이다.
어떻게 이런 사람을 골랐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을 대할 때 거리를 두고 관찰하기에 도가 튼 나도 매번 이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그래서 남편과 나 사이의 벽은 5cm정도다.
같이 의지하고 살아가되,
내 온전한 마음을 맡겼다간 한번씩 무심함에 상처 받았던 경험에 약간의 거리를 유지한다.
남편과 거리를 둬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어 이 간극을 좁히려 매번 애썼지만
사실 독립적인 성향의 남편도 내가 너무 가깝게 들이대고 의지하려는 것보단
어느정도의 적당히 거리를 두고 있을 때 더 편해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아이의 경우는 다르다.
성인이 될 때까지, 아니 1차적으로는 사춘기가 올 때까지
모든 것을 내게 의지하고 같이 살아가고 있는 아이는 내가 책임지고 지켜야할 상대이자
벽은 무슨 그냥 경계없이 사랑해 줄 존재이다.
귀여운 강아지, 고양이와 같은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느꼈던 감정 그대로
아이 역시 의심하지 않고 나를 사랑하고 사랑받을 때 가장 행복해하는 순수함의 결정 그 자체라
아이는 내게 유일한, 경계없이 유지하는 내 사랑, 내 인간관계이다.
(남편...미안..)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또 하나의 존재인 내 동생.
어릴 땐 그토록 저주하고 미워했던 존재인데 그건 돌이켜보면 동생 자체의 존재에 대한 저주보다는
부모님의 차별에서 비롯된 것으로, 커갈수록 동생의 존재는 든든하고 의지할 수 있으며
타인이 아니라는 이유때문인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서로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과는 별개로 깊은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참 성향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어 동생과 나의 거리는 선 하나이다.
마음은 터놓고 서로 믿되, 사생활의 경계정도는 침범하지 않도록 조절하고 있다.
그런 질문을 스스로 한 적이 있다.
항상 도망칠 준비를 하고 스스로 약자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은 너무 슬픈일 아닐까.
그냥 약자인 환경에서 태어나서 스스로 마음도 심약하니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이라 다른 방도를 찾지도 못하는 수동적인 나...
그래도 스스로 상처를 덜 받는 방법을 '선택'한 것 뿐이고
이 고독이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진 않으며
내가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길이라 나쁘지는 않다고 그냥 받아들이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최근 내가 이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가 있는데
바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이다.
이 드라마는 어느 순간 매년 찬바람이 부는 어느 시기에 생각나면 반복적으로 보고 있는 드라마이다.
난 원래 결말을 아는 스토리는 진부하다 생각해서 한번 본 작품을 여러번 보지 않는 타입이다.
첫 장면을 보자마자 결말이 떠올라 왠지 흥이 나지 않는달까.
그런데 이 '동백꽃 필 무렵'은 올해로 한 다섯 번 정도 본 것 같은데,
앞으로도 반복해서 볼 의향이 있을정도로 다시 볼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이 다르고 또 행복해진다.
초반에 반복해서 볼 때는 어디 황용식 같은 사람 없나, 하며 그 달달함에 빠져 보다가
'아, 나 결혼했고 남편이 이미 있지'하는 생각에 현실로 돌아오다가 그러면서 혼자 히히덕 보곤 했다.
그런데 올 해 볼 때는 어느 회차의 소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본투비 하마'
하마 역시 초식동물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하마의 이미지란 보통 느긋하게 하품하며 무거운 몸을 거니는 모습정도 아닐까?
그렇게 평화롭고 순한 이미지의 초식동물인 하마는,
드라마의 설명에 의하면 '어흥'도 하지 않고 냅다 들이받아버린다고 한다.
흔히들 말하는 '지렁이도 밟히면 꿈틀한다'와 비슷하지만,
지렁이는 너무 작고..좀 그런데 하마라고 표현하니까 왠지 와닿았다.
이 날 확 들어 온 이 소제목은 내가 '하마가 되고싶다'라고 꿈꾸게 했다.
나는 그냥 약자라서 도망만 다니고 별볼일 없이 무시하고 다닐 수 있는 그런 초식 인간이 아니다.
그냥 초원에서 풀뜯고 한가로이 사는 것 같아보여도,
항상 뿔 하나는 갈고 닦고 있기에 누군가 날 밟으려 한다며 온 힘을 다해서 받아버릴 각오가 되어있다.
나는 그런 초식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