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처음 만났던 때
얼마 전 해가 바뀌고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며 기뻐하던 아이는,
작년에 학교에 들어가고 적응했던 한 달 여가 지난 무렵 큰 변화로 나를 놀라게 했던 것처럼
나이를 먹고 한 달 여가 지난 지금 또 다른 변화로 날 놀라게 하고 있다.
확실히 느껴지는 변화는
아이의 자기주장이 강해지고 있다.
원래도 고집이 있는 편이긴 했는데,
엄마의 말발과 은근슬쩍 밀어 넣기 기술로 설득되던 것들이
이제는 잘 먹히지 않는다.
사춘기의 그것이라기엔 아직 연령도 어리고 제멋대로의 뭔가가 아닌
크면서 자기 주관이 뚜렷해지고 있다.
그것은 점점 나나, 남편과 같은 보호자의 모습을 탈피하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것 같다.
물론 그런 첫 변화를 맞닥뜨렸을 때는 '왜 이러지'하는 생각과 함께
다시 아이를 설득하기 위한 다른 방법을 찾게 되는 등 고민이 많아졌다.
하지만 모두 아이의 '성장과 독립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여전히 내 마음에 들지 않고 불편한 부분이 있지만,
서로 조율해 나가며 존중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크는 아이를 바라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서일까.
나는 잊고 살았던 아이와의 첫 만남 때가 생각났다.
그 기억은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
잉태한 것을 처음 알았던 순간이었다.
나의 아이는 계획되지 않은 존재였다.
갑작스러운 임신에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확인을 위해 산부인과를 찾았다.
복잡한 여러 가지 생각으로 휴가를 내고,
집 근처의 가까운 병원에서 대기하는 동안 정말 초조했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처음으로 아이의 모습을 확인한 때,
아주 이른 때여서 아직 심장소리도 확인하지 못했던 때였다.
정말 작고 콩알만 하던 아기의 모습을 확인하고
'정말 내 몸속에 아기가 있는 건가'라는 실감이 들기도 전에
의사 선생님의 말이 나를 콕 찔렀다.
"수술하실 거예요?"
나는 임신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기에,
의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무슨 수술을 해야 하는 건지 되물었고
의사는 심장소리 들으려면 1-2주 더 걸린다는 말과 함께 진료를 마쳤다.
계산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의사의 말 뜻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달았다.
나는 그저 임신이 맞는지 확인하려고 병원을 찾은 것이었는데,
의사는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지레짐작으로 그냥 아이를 없앨 건지 물어본 것 같았다.
아직 그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은 상태였는데,
타인의 입에서 그런 말을 듣고 오는 길의 내내 속이 상했다.
내가 문득 아이와의 첫 조우가 떠오른 것은
목욕하는 중에 갑자기 동백이가 처음 산부인과에 혼자 갔던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간략히 설명하자면
혼자 산부인과를 찾은 동백이 사실은 아이를 낙태할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는데,
너무나도 사무적인 태도로 수술이야기를 진행하려는 병원 관계자의 말에
화를 내며 병원을 빠져나오는 장면이다.
그 장면이 갑자기 떠오르면서
내 아이를 확인했던 병원의 일화가 같이 떠오른 것이다.
또 동백이를 보는 중간중간 나의 상황과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동질감이 들면서 가슴이 먹먹했던 장면이 있다.
동백이가 아들 필구를 이런저런 상황과 안전문제로 친아빠에게 보낸 후,
아이의 안부를 확인하면서 슬퍼하는 장면이 있다.
아이가 친아빠와 새엄마 사이에서 눈치를 보고 작아지는 것을 짐작하며
본인의 불행하고 어려웠던 과거를 생각하며 아이가 본인을 닮아간다고 속상해했다.
그럴 때, 드라마의 구세주와 같은 용식이가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필구는 엄마 사랑 듬뿍 받고 자란 아이라, 동백 씨 불행한 과거랑은 달라요"
나 역시 과거를 돌이켜 봤을 때,
속상하고 혼자 울던 날이 많았던 터라 아이를 키울 때 여러 가지 면에서 걱정이 되었다.
그럴 때 한 번씩 이 드라마를 보며 용식이가 동백이에게 해주는 위로를 들으며,
나도 같이 위안을 얻는다.
나의 아이도 나를 닮고 내가 키웠지만, 나와는 다른 존재이다.
내가 겪었던 불안한 상황은 내 아이에게는 적용되지 않으며
완벽하진 않겠지만 아이를 키우기 위한 끊임없는 육아 공부와 자기 검열을 통해
내가 받았던 기분변화에 휘둘리는 육아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사랑을 전해주기 위해 노력한다.
동백이와 필구의 과거는 완전히 달랐던 것처럼,
나와 우리 아이의 어린 시절도 완전히 다른 것이다.
드라마에선 필구를 임신한 동백이가
온전히 본인의 의지만으로 굳게 결심하고 꿋꿋하게 살아나간다.
나는 첫 산부인과에서는 냉대를 받았지만,
이후엔 주위의 조력자들이 있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당황했던 나와 달리 남편은
정말 담담히, 그리고 흔쾌히 아이를 키울 것을 선택했다.
또 다음 찾아갔던 병원은 내가 원래 다니던 회사 근처의 산부인과로
그곳 의사 선생님은 아이의 심장소리를 확인시켜 주며
정말 밝게 축하 인사를 건네주었다.
병원이 바뀌었을 뿐인데, 의사 선생님에 이어 간호사 선생님도
임산부 수첩을 전달해 주며 내게 축하를 전해주셨던 모습이
내 기억 속 수줍고 기뻤던 마음으로 남아있다.
준비되지 않게 생겨났던 우리 아이도,
엄마의 흔들리는 마음으로 바로 기쁨 받지 못했던 아이도
여러 사람들의 축하 속에서 태어날 수 있었다.
아이가 자라남을 매일매일 느끼는 요즘,
갑자기 생각난 기억으로 나는 초심을 되찾았다.
육아는 언제나 처음의 마음으로 하면 탈이 없을 거라 생각하는데,
처음 육아를 시작할 때
아이가 건강하고 잘 자라고, 밝은 아이로 자라길 바랐다.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모든 부모들이 그렇듯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나의 욕심이 점점 커진다.
이것 조금만 잘했으면 좋겠고,
이것 시작하면 아이한테 도움이 될 것 같고,
또 저기 있는 아이는 저걸 하는데 내 아이는 어떤지도 보게 되고.
이런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물론 도움이 필요한 아이에게는 적절하게 도와줘야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는데 밑거름이 될 것이다.
내 생각에 그 기준을 '내가 볼 때, 내 생각에'보다는
'아이가 도움을 요청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기다려줘야지.
찾아온 것만으로도 날 벅차게 했고,
축하받아 마땅했던 너인데.
그런 소중한 너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