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가 없으니 다퉈야 할 걱정이 없은지도 꽤 오래다.
우리가 부부였을 때는 이런 평온함이 제일 두려웠다. 우리가 사이좋게 지낸 만큼 주기적으로 싸웠기 때문이다. 그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결혼하기 전에는 얼마나 온순하고 평범한 사람이었는지 그토록 알아주길 바랐었다.
헤어짐이 참 찌질하고 미련하다.
상대가 있을 때는 참아야 하는 이유, 설득해야 하는 것들, 싸우거나 화해를 할 실체가 있지만 헤어지고 나니 나 혼자 그 흔적을 지워야 한다.
잘 헤어졌고 후련하지만 중독의 그림자는 아직 남아있다.
평범한 주말의 외출을 즐기다가도 문득 집에 어서 들어가서 남편에게 내 존재를 확인시켜야 한다는 조급함이 들고, 그가 싫어하는 생각이나 말을 버릇처럼 삼가다가 싱글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표출 하기도 한다. 그가 좋아했던 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그 안에 그가 남긴 존경이 남아있다.
사회와 문화와 현실의 집합체인 결혼과 잘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 한 것이 결혼이었다. 온전히 혼자 시간을 잘 보낼 줄 알아야 내 삶이 단단해진다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질릴 때까지 울고, 소리 지르고, 비용을 들이고, 밤을 지새우는 체험 학습을 통해야만 일부 취득할 수 있는 삶의 지혜였다.
그가 의도했던 아름다운 이혼은 개나 줘버린 지 오래다. 모든 경멸, 증오, 협박을 다 쏟아붓고 나서야 겨우 그가 생각했던 매너 있는 말들이 나왔다. 그는 그의 변호사를 고용했고 나는 나의 변호사를 고용했다. 각자의 변호사들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가장 복잡한 이혼의 길을 안내해 주었다. 결국 우리는 영국 가정법 변호사들의 말도 안 되는 인보이스에 (애도 없는데) 적당히 우리끼리 잘 해결하기로 했다.
아무리 그와 내가 싸우더라도 우리의 공공의 적은 변호사와 아파트 관리소다. 그들의 허술한 서류 작업에 지칠 때면 그래도 오랜 시간 쌓아온 약간의 의리는 있다고 서로에게 힘을 보태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늘 주고받았던 농담들도 오간다. 그렇다. 우리에게 중간은 없다. 서로에게 감정 기복만 가져다주는 그런 사이. 그래서 중독 됐던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