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모든 문제는 기쁘거나 슬프거나 그 상태, 지금의 상태가 영원할 것 같다는 것이다.
나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그와 보냈기에 그가 내 인생의 동반자가 되면 영원히 그렇게 살 것만 같았다. 나의 가장 힘든 시간 역시 우리 관계에서 왔고 그 시간이 견디기 힘들었던 이유도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혼을 수도 없이 많이 생각했지만 감히 발을 들여놓기 어려웠던 이유는 애인과 헤어지는 것과 다르게 물리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딸린 애가 없어도 그저 내 내공이 부족해서 이 사태에 다다른 것만 같아 다시 돌아가고 다시 돌아갔다. 게다가 결혼에 들어설 때 영원히 행복할 것 같았던 것처럼 이혼의 길에 들어서면 그 암흑 상태가 영원할 것만 같았다. 그 터널을 끝까지 완주할 용기가 나지 않은 나머지 그냥 다시 결혼으로 몇 번을 돌아갔었다.
몇 해 전에 남편과 일이 있었을 때 법적 조언을 구하려고 영국에 사는 몇몇 한인들에게 연락을 했었다. 조언을 받고 마지막으로 딱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었다.
"이혼하시니까 어때요?"
"천국이에요"
남편이 전부였던 내게 그 말은 꽤 충격이었다. 부러움도 한 스푼 있었다. 이혼하니 천국이다라는 상태에 도달하고 싶지만 그 상태가 가능한 상태인지 의심만 하는 가장 깊은 어두운 시절.
근데 지금 누군가가 내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나도 같은 대답을 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알을 깨고 나온 지금 나는 너무 편안하고 빛이 난다.
업보의 굴레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지기 위해 너무 들뜨지 않게 나를 조금 누르는 노력만 필요한 상태다.
나는 인복이 많은 사람인 것 같다. 그냥 그렇게 느껴진다. 결혼을 하고는 여러 가지 이유로 사회생활을 못하거나 안 했다. 모든 통로가 막혀 있었다. 영국에 4년 넘게 살면서도 못 가 본 곳이 많고 친구 한 명 사귀지 못했고 그저 그와 나, 그리고 그 집 식구들, 우리 집 식구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항상 싸웠다. 그가 떠나고 남편이라는 문이 닫히자 곧바로 새로운 문이 열렸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여러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일 년에 한두 번 가는 한국에서도 남편 눈치에 최대한 조용히 지내다 오곤 했었다. 기세가 바뀌었다는 게 이렇게 증명이 되는 것인가. 십오 년 넘게 연락이 닿지 않았던 매우 오랜 친구들이 이곳저곳에서 나름의 성공을 이루고 연락이 왔다. 그녀들은 같은 말을 했다. 그냥 생각이 나서 연락해 봤다고. 한 명은 사업확장 겸 우리가 십 대 때 같이 놀았던 고향에 다시 돌아왔고 한 명은 동남아에서 사업을 열고 한국에 잠시 들른 중이어서 또다시 운 좋게 얼굴을 맞대고 밤새 근황을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또 8년간 연락 못했던 프랑스에 사는 친구들, 대학친구들, 취업친구들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자기를 안 만나고 다시 영국으로 갈 것이냐고 타박아닌 타박을 했다. 술 마시지 말라, 집에 언제 가냐 지구 반대편에서 간섭하는 남편이 없다는 게 너무 달콤하게 느껴졌다. 그저 오래된 친구들의 이야기를 밤 새 들을 수 있고 지금 내 앞에 나와 마주한 사람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는 게 너무 벅차올랐다. 다시 영국에 돌아와서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됐고 길을 걷다가도, 계산을 하다가도 사람들이 나에게 마음을 열고 편하게 이야기한다고 느껴졌다. 사는 맛이 이 거구 나를 한 껏 느낀다.
"너는 정말 좋은 남편을 바보 같은 이유로 잃는 거야. 남편이 아내를 떠나는 경우는 많이 없어. 너를 좀 돌아봐."라는 마지막 가스라이팅을 남기고 떠나 준 그는 내 인생에 가장 고마운 사람이 되었다. (그가 뜻하는 바보 같은 이유라 함은 내가 회식에 늦게 까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간 것도 아니고 가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2020년 우리가 결혼할 때 그의 아버지는 그의 어머니를 떠났었다. 본인에게는 완벽한 여성상인 자신의 어머니를 떠난 아버지를 많이 원망하고 질책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그는 딱 그의 아버지와 가장 가까운 모습으로 나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