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녀였을 때는 결혼을 잘 유지하는 게 인생의 목표였어서 자기 객관화가 잘 안 됐던 것을 이제 깨달았다. 이제 파이널 오더만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그 시절을 돌아보면 그건 정상적인 생활이 아니었다. 정말 하늘이 도와서 운 좋게 결혼이 끝났다는 생각 밖에 안 든다.
이별의 단계라고 흔히 말하는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을 잘 지나왔다. 다행히 협상 단계는 없었다. 생각보다 이혼에서 행정처리가 차지하는 부분이 감정만큼 커서 많이 피곤했다.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은 많지 새 우편물, 이메일을 받을 때마다 감정은 휘 몰아치지. 그래서 웬만하면 안 해도 되는 것은 안 하고 매일 새로 생기는 일들을 정리하고 처리하며 잘 버텨왔다.
결혼은 좋았던 만큼 나쁜 것도 있었다고 말하겠고 이혼은 좋은 만큼 공허했다고 하겠다. 남들은 최고의 복수는 네가 잘 사는 것이야 라고 응원을 하지만 최고의 복수는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것 생각조차 나지 않는 것이다. 삼일 전에 집을 나와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왔다. 이사를 오고 나니 내가 생각했던 최고의 복수가 완성돼 가는 것 같다. 그래서 오랜만에 글을 쓸 여유도 생겼다.
별거를 막 시작했을 때는 그냥 오로지 내가 유부녀여서 아니 그 사람의 아내라서 자유롭게 할 수 없었던 것들을 했다. 다행히 그중에 하나가 운동이었다. 웨이트를 하고 싶었지만 그의 알 수 없는 의심, 의처증에 스스로 감히 헬스장에 쫀쫀한 레깅스를 입고 가는 것조차 상상도 못 했다. 여회원이 많은 요가정도는 괜찮았지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운동은 웨이트였다. 밤늦게까지 술도 마셔보고 클럽도 가봤다. 정말 다행히 다른 것 말고 운동에 재미를 붙여서 체력전인 이 이혼을 건강하게 잘 마무리하고 있다.
나는 이제 보호자가 없다. 내 결정으로 살고 있는 이 영국땅에 내 가족은 없다. 그래서 나는 나 스스로 이제 잘 보살펴야 한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또 어렵더라. 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독립해야 된다는 과업의 실체를 깨닫지 못하고 쓸데없이 전 남편과 말싸움에 휘말려서 시간을 낭비하기도 했다.
우리의 공동재산이었던 집도 그에게 헐값에 넘기고 나왔다. 초반엔 더 받고 싶어서 몇 가지 시도를 해 봤지만 나를 보호해야 하는 게 우선순위였기 때문에 그냥 그의 비위가 상하지 않는 선에서 서둘러 나왔다. 내 의도는 없었지만 새로 찾은 집이나, 일이나, 내 기분이나 모든 게 그 이후로 잘 풀린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먹는 대로 상황은 흘러간다고 믿는 편인데 정말 그런 것 같다. 또 내 심리가 평안해져서 내 얼굴이 좋아졌다고 매일 나를 응원해 주는 문자, 소리를 듣는다. 어떻게 멘털이 이렇게 투명하게 얼굴에 비칠 수 있는지 신기하다가도 다행이다.
그러나 완전히 그를 지우는데 까지는 대략 1년 더 예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