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빈민가 무슬림 가족의 며느리로 살았던 법.

by 잉킴


지긋지긋한 자기반성 버릇 때문에 그대로 나를 방치했던 것 같아 잠시 자기반성, 객관화는 집어치워야겠다.


그의 어머니는 그의 머리에 절대 권력이다. 나약했던 본인을 때리면서까지 지켜줬고 늘 약자의 입장에서 약자를 지켜주는 세상 최고의 정의 그 자체이다. 그의 아버지도 그를 지켜줬지만 자기 어머니를 버린 매정한 남자이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그 속은 좀 복잡해 보인다.

아무튼 그것은 이상한 무슬림, 아프리카 문화와 결합되면서 세상 보수적인 이상한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었다. 그래서 그 누구도 외국인인 나에게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으며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내가 그들에게 융합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거여서 내 환경, 내 직업, 내 가족, 내 문화, 내 언어, 내 습관, 내 취향을 묻는 그 자체가 그들에겐 큰 불안이었다. 정말 놀랄 만큼 아무도 4년간 아무도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으며 그저 "Ca va?"만 지독히 들었다. 그래 처음엔 그 따뜻함과 다정함이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들 또한 어색해하는 며느리의 안부를 물어주는 착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고 스스로 판단한다.


아직 자식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게 있어서 조카만 6명이었다. 열등감을 가리기 위해 매일 자라는 아이들에게 나이키, 아디다스를 입혀야 했다. 문서작업만 하는 경리, 회계사들이 꼭 맥북 프로를 써야 했다. 램이 뭔지도 모르면서.

그러나 지난 40년 동안 본인의 솜이불 한번 살 줄 몰라 내가 시댁에서 덮어야 했던 이불은 세월이 잔뜩 묻어 노랗고 무거운 솜이불이었다. 시트도 그 시간을 감히 가늠할 수도 없을 만큼 해져있었고 솜이불과 크기가 맞지 않아 시트 안에서 그 무거운 솜이 계속 굴러다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내 살을 맞닿게 하기 싫은 생전 본 적 없는 모양의 얇디얇은 베개와 집안 구석구석 먼지가 날아다녀 꼭 병이 나기 마련이었다. 그 집엔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산 최신형 다이슨 청소기가 흠집만 잔뜩 난 체 한쪽에 충전도 안된 채로 방치 돼 있었다.


나름 아침형 인간인 데다 잠자리가 불편해서 일곱 시면 일어난다. 프랑스 창문은 잠자는 동안 햇빛이 완전히 차단되게 설계가 돼있는데 아홉 시까지 그냥 누워있다가 도저히 답답해서 살금살금 거실로 나온다.

그럼 열한 시가 돼도 어머님은 코 골며 자신다. 며느리가 와서 불편하실까 봐 미리 청소도 해놓고 씻고 하루의 시작 준비를 마치면 아직도 그 소리가 들린다. 그럼 혼자 괜한 걱정을 했나 싶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돼서야 겨우 무거운 몸을 들고 나오시면 내 남편이 빵셔틀을 하러 간다. 그럼 어머니와 나 둘이 어색하게 거실에 앉아 있는다. 남편이 빵을 사 오면 아침식사가 시작된다. 냉장고인지 창고인지 알 수 없는 곳에서 대충 주스와 탄산음료, 버터, 나 먹으라고 잼까지 꺼내 주신다. 테이블 매너란 없다. 그냥 소파와 커피테이블에 불편하게 허리를 숙여 닿는 대로 먹는다. 크로와상 부스러기가 많이 날려서 나름 조심히 먹고 있다가는 온 집안에 바케트 부스러기 천지가 되고야 내가 괜히 조심했구나 싶다. 그리고 나름 손님이라고 남편이 나 쉬게 하고 청소를 한다. 그냥 슥슥 소파밑으로 집어넣으면 청소 끝이다. 정의로운 어머님은 꼭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으신다.


그 다음 날은 아침에 너무 지겹고 또 그 루틴을 반복하기 싫어서 남편에게만 말하고 파리 시내로 나왔다. 아 내 세상. 이게 파리지 하고 내가 보고 싶었던 것들 보고 걷고 싶었던 거리를 걸으며 즐거운 오후를 보내고 세시쯤 집에 돌아왔다.

그의 친구와 어머니, 그가 집에 있었다.

"와이프 혼자 파리 구경하고 오는 거야"

"뭐?"

친구는 내가 납치라도 당한 듯이 계속 묻고 또 묻고 온갖 호들갑을 다 떤다.

어머니는 미소 지으시지만 그 미소는 내가 하는 행동들이 낯설고 최선은 아니라는 메시지가 있다.

그의 친구에게서 저런 반응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는 미소이다.

나는 눈치가 빠른지라 그냥 그 친구가 웃기다는 듯이 비슷하지만 다른 미소를 건넸다.


나는 그냥 가만히 집에 그 먼지들과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롤이었다. 오며 가며 오는 손님들도 많은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면 차 대접하고, 그쪽 음식도 배워서 나눠주면 백 점짜리 며느리였을 것이다. 어머님의 무언의 미소, 그의 절대 권력자. 그때는 그냥 다정하고 따뜻하신 분이라고 생각했지만 남편의 나르시시스트 성격 뒤엔 그 미소가 있었다.


그런데 왜 그런 그랑 결혼을 했냐고?

나는 그를 아주 먼 제3의 나라에서 개인적으로 만났다. 개인적이라는 뜻은 그 당시 그는 그의 가족의 테두리에서 대륙 넘어 벗어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매우 매력적이고, 사교적이고 남녀노소 모두에게 인기가 많은 사람이었다.

그의 가족의 테두리 근처에 가는 순간, 우리의 결혼이 성사된 순간, 체면과 명예가 가장 중요한 그의 본래의 자아로 돌아갔다. 말이 좋아 체면과 명예지 그냥 쫄보와 열등감 그 자체이다. 그는 그의 절대권력 어머니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게 그의 인생 목표였고, 그의 어머니가 자신을 키운 방식이 마치 바이블인 것처럼 여겼다. 실제로 2세 이야기를 할 때면 그는 꼭 아이들은 체벌하며 키워야 한다고 이상한 고집을 부렸다.


어느 날은 내가 혼자 오르세 미술관을 구경하느라고 늦게 두 시간 정도 연락이 닿지 않은 적이 있었다. 아니 그날 내가 꼴이 나서 일부러 연락을 안 받았다.

밤이라 봐야 7시 언저리 었지만 그는 내가 실종이라도 된 듯이 난리를 쳤고, 너무 불안한 나머지 자기 엄마한테 짜증을 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며칠을 아니 몇 년을 그 이야기를 계속했다. 나 때문에 자기가 자기 엄마에게 짜증을 냈다고. 나 때문이라고.


그가 말했듯이 그들은 프랑스인도 아니고 말리인도 아니다. 그들의 불만을 이해하려 애썼지만, 결국 나도 그 안에서 내 목소리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들의 피해의식은 내 깜냥으로 감당하기 벅찼다. 그들 사이에 일어나는 분쟁엔 정의롭고 평화적으로 해결한다. 근데 그 상대가 바깥에서 온 사람이라면, 다시 말하면 그게 나 같은 외국인 며느리면 그들은 줄곧 피해자의 탈을 쓴다.

결혼 후 그의 모든 실수는 다 나 때문이었다. 무슬림인 그가 리들에 가서 보드카를 사서 한 병을 원샷을 하고도 3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그는 그날의 자신의 선택이 나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내가 반박하려 치면 파이터 특유의 소리를 지르며 침을 튀기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시전 한다.


이런 기가차는 에피소드는 차고 넘쳤다. 하나씩 풀어낼 거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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