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의 가정환경을 꼭 보라는 말을 겪어보기 전에 이해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내 경험은 이렇다.
그는 인종차별을 겪으며 프랑스 북쪽의 악명 높은 후드에서 자라왔다. 부모님은 그를 엄격하게 다뤘다. 때리고, 혼내고, 무조건 "Non".
교육차원이 아니라 그러지 않으면 마약과 범죄의 굴레로 빠져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개천의 용이 되었다. 열심히 일했고, 도전했고, 실패도 하며.
열심히 일해 자수성가하고, 가정에 충실한 모습이 내겐 최고의 신랑감으로 보였었다.
물론 그의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도.
그가 잘 나가면 나갈수록 그는 그 깊은 열등감을 감추는데 더 급급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콤플렉스는 순하고, 늘 같이 있고, 만만한 아내에게 향했다.
나는 그가 이해되지 않을수록 배우자는 내 모습의 반영이라고 생각하고 밑도 끝도 없이 한없이 낮추고 이해하고 맞춰주려 했다.
그는 1등, 혹은 본인이 결정하는 입장이 아니면 그는 그의 학창 시절 등굣길에 이유 없이 자신을 벽으로 몰아세우고 불시 검문을 했던 경찰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그는 나이가 먹을수록, 특히 결혼을 하고 익숙하지 못한 상황에 더 불안해했고 괜히 나를 더 혼내야만 마음이 풀리는 것 같았다. 마치 자기 부모님이 자기를 혼냈던 것처럼.
그냥 이제야, 지나고 보니까 그 불안의 실체가 보인다. 그가 내 남편이었을 때는 내가 장님이었어서 보이지 않았다.
본인이 쫄보라는 것을, 큰 열등감, 불안이 있다는 것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은 아니었다.
책임감, 부모님 부양, 큰아들, 삼촌, 형, 동생, 좋은 무슬림이 되려고 매일 기도하는 무슬림, 유머러스한 사람, 정치적으로 올바른 견해를 가진 사람, 매너가 좋은 사람, 인심이 좋은 사람 등의 아름답고 큰 역할들로 자신의 어두운 면을 가리는 데에 인생을 보내는, 스스로를 기만하는 사람이었다.
그 기만의 두께는 꽤 두터워서 그는 어딜 가나 인기가 많고 사람들이 따랐으며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에게 '체면'이란 목숨과도 같은 것이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체면이 중요하지 않다는 내 생각은 그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사랑을 듬뿍 받았고, 막내딸에, 안전한 한국에서 찐 한국인으로(그는 자신이 못 사는 나라 출신의 이민자라는 콤플렉스도 있었다) 부족한 것 없이 자란 내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다른 결의 사람이었다. 다시 말하면 나는 내가 단단해서 체면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이다.
간략히 말하자면, 24년에 그를 가정폭력으로 신고를 했었고 그는 체포됐었었다. 어떻게 시간이 지났는지 가물하지만 한 달 정도 혼자 영국에 지내다가 한국에 가서 이혼 결심을 하고 직장도 구해놨었다. 그리고 짐을 챙기러 영국에 왔을 때 그가 나를 너무 간절하게 몇 날이고 밤이고 붙잡았었다.
나는 결국 가엽고, 갸륵한 마음에 떠나지 못했었고 1년 뒤에 그가 나를 떠나는 시나리오가 됐다.
이 이야기를 들은 지인은 전형적인 나르시시트라고 했다.
체포에, 이혼까지 당하는 입장은 자기 체면상 절대 용납 안 되고, 어떻게든 붙잡아 일 년 정도 노력을 한다. 그럼 적어도 자기는 최선의 노력을했다는 프레임을 자기한테 씌울 순 있으니까. 그리고 미련 없이 본인이 아내를 차버리는 맺음을 해야 성이차는 사람이란 것이다. 때마침 내 이직으로 수입도 그와 비슷해져서 배가 아프기도 했을 거고, 주 3일 출근도 하고 회식도 가고 싶어 하는 나를 전처럼 속박하지도 못할뿐더러 이는 자기 식구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노력했고, 오죽하면 이혼을 해야만 했는지 설명할 그럴싸한 이유이지 않은가.
그 식구들이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던 이유는 그냥 나 같은 며느리는 집안에서 서열이 이웃집 고양이 뒤어서 그랬던 것이었다. 그런 이상한 동물적인 전통세계관이 아직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못했어서 내가 어떤 취급을 받았었는지 모든 퍼즐이 이혼을 통해 그의 그림자가 벗어나며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보기와는 다르게 정이 많아 나 스스로 인연을 못 끊는 성격인데, 그는 나를 떠나 준 내 생에 가장 고마운 사람이 되었다.
우리가 서로를 좋아했던 마음만, 서로만 바라보는 마음만 가지고만 관계를 맺었다면 그래도 괜찮은 관계였겠지만 그에게 드리운 그의 가족, 열등감의 그림자는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어두웠다.
'그러게 그런 사람이랑 왜 결혼해서 지옥길로 제 발로 걸어가니' 같은 1차원적인 훈수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눈으로, 공기로 어떻게든 그 훈수를 하고야 만다. 쉽지 않을 걸 알면서 한 내 결정이다. 결혼해서 살 부딪히며 질리도록 살기 전엔 그 실체가 절대 보이지 않았고 이혼을 하면서야 겨우 실체가 보인다. 그 모든 아픔도 결국 내 성장의 일부였고, 그 과정을 통해 나는 더 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