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의 위력
이 글은, 당시 숨고 인터뷰를 계기로 시작됐다.
아래는 그때 실렸던 인터뷰 내용이다.
인터뷰가 공개되고 얼마 뒤부터였다.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공기가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전까지의 컨설팅 상담은 늘 '설득'의 과정이었다. 비용 이야기가 나오면 가사 서비스와 무엇이 다른지, 왜 가격 차이가 나는지부터 구구절절 설명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내가 입을 떼기도 전에 상대는 이미 단단한 신뢰를 건네오고 있었다. 심지어 가격조차 묻지 않는 분들도 많았다.
“비용은 상관없습니다. 선생님이 알아서 해주세요.”
강의 의뢰도 물밀듯 밀려왔다.
문화센터 특강이 전부였던 내게, 당시 막 생겨나던 청년센터에서 ‘자취방 정리’ 특강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활동 무대가 넓어지자 강의료도 자연히 따라 올랐다.
“선생님 페이 기준을 잘 몰라서요. 혹시 이 정도면 괜찮을까요?”
조심스럽게 제시된 금액은 문화센터에서 받던 강의료의 8배가 넘었다.
사실 그전까지 내 강의료는 시간당 3만 원이었다.
왕복 4시간 거리를 달려가 협회 수수료 20%를 떼고 준비물 비용까지 지불하고 나면, 사실상 재능기부나 다름없었다.
'지금은 투자하는 시기'라는 믿음과 남편의 든든한 지원이 없었다면 결코 버티지 못했을 시간들이었다.
도대체 어디서 저를 보고 연락하셨냐고 물으면, 대답은 한결같았다.
“브런치에서 선생님 인터뷰 글을 봤어요.”
인터뷰 글 한 편이 브랜드의 가치를 이토록 극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웠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브런치를 많이 읽고 있다는 걸, 그리고 그 파워가 엄청나다는 걸 그때 처음 실감했다.
나를 찾는 사람들, 각선생의 '마니아'가 생기다
이 무렵부터다.
'각선생'을 찾는 마니아층이 형성된 것은.
나를 찾는 고객들은 분명한 색깔을 가진 분들이었다.
그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우울증 약을 복용하며 고립된 생활을 택했거나,
혹은 고도의 집중력과 책임감이 일상인 전문직 종사자들이다.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은 극과 극이지만, 공통점은 명확했다.
사람에 대한 낯을 많이 가리고, 자신의 사적인 공간에 타인이 드나드는 것을 극도로 불편해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 번 인연을 맺으면 이사를 갈 때마다 다시 연락을 주셨고, 그 관계는 몇 년의 세월을 타고 이어졌다.
이들에게 각선생은 단순히 물건을 치워주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가장 은밀하고 소중한 공간을 마음 편히 의논할 수 있는 유일한 정리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