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콘텐츠를 대신한 것들
강남 1인 가구 커뮤니티 센터 유튜브 촬영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새로운 촬영이 잡혔다.
그 무렵 숨고에서 새롭게 기획하는 온라인 클래스 제안이 들어왔다.
나는 여러 쟁쟁한 업체들과 함께 후보에 올랐고,
본사 미팅 후 내가 최종적으로 선택됐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또 한 번 새로운 기회가 왔다는 생각에 감개무량했다.
그렇다고 마냥 기쁜 것만은 아니었다.
당시 청년 자취방 정리 유튜브 촬영도 한창 진행 중이었고, 대본 없이 즉흥적으로 말하면서 정리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생각보다 꽤 심적으로 큰 부담이었다.
이 일만 끝내면 다시는 일하면서 영상을 찍지 않겠다고 다짐했을 정도였다.
그래도 뜻밖에 찾아온 기회를 외면하고 싶진 않았다.
일단 미팅 날짜를 잡고, 깔끔한 차림으로 숨고 본사를 찾았다.
큰 회의실 한가운데 앉아 여러 관계자들 사이에서 질문을 받았고, 간단한 카메라 테스트도 함께 진행됐다.
굳이 잘 보이려 들지도, 나를 뽑아달라고 어필하지도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런 여유가 오히려 전문가로서 더 당당해 보였는지, 정리 분야 클래스 최종 합격자로 내가 선정됐다.
덜컥 붙고 나니, 또다시 카메라 앞에서 버벅댈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는 일단 저지르고 나중에 고민하는 성격이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숨고 와 촬영을 하면서 처음으로
‘스크립트’와 ‘프롬프트’라는 개념을 알게 됐다.
제작비가 아낌없이 투입되는 신규 프로젝트라서 인지
촬영 과정 하나하나가 내겐 전부 신세계였다.
완성도 높은 결과물은 현장에서 바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이미 A부터 Z까지 설계된 시나리오에서 시작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방송국 앵커들이 매일 긴 대사를 외우는 게 아니라
프롬프트를 보며 읽는다는 사실도 새로웠다.
멘트를 외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걱정 하나는 덜었다.
그렇다고 날로 먹는 건 아니었다.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밤늦게까지
스크립트를 고치고 또 고치는 날들이 이어졌다.
이건 누가 대신 해 줄 수가 없다.
새벽에도 영감이 떠오르면 전화하라던 피디님과,
영상통화로 꼼꼼히 피드백을 주던 담당자님 덕분에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촬영은 어느 30평대 아파트에서 이틀간 진행됐다.
내 손을 대신할 정리 팀은 같은 협회 후배 강사님들로 꾸렸고, 숨고는 이틀 동안 집으로 메이크업 선생님을 보내줬다.
아침 6시, 꼭두새벽에 일어나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을 때면 고단하면서도 잠깐은 내가 색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결혼할 때 받은 신부 화장 말고는 전문가에게 화장을 받아본 것도 처음이었다.
첫날은 긴장으로 버텼지만, 둘째 날에는 메이크업을 받으면서도 눈이 자꾸 감겼다.
비공개 프로젝트라 현장 사진 한 장 마음대로 찍을 수 없는 게 못내 아쉬웠는데, 얼마 뒤 세심한 피디님 덕분에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마침 3주년 프로필을 준비하던 시점이었고,
개인적으로는 섭외하기 힘든 작가님들이 찍어준
고퀄리티 사진들이 내 손에 남았다.
고생 끝에 얻은 귀한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공들여 쌓은 탑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도 그때 배웠다.
2023년 1월, 숨고 클래스가 클래스 101로 이관되면서 나는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때 그 영상들은 인트로 장면만 겨우 넘겨받고 모두 폐기됐다.
아무래도 영상 소유권이 모두 플랫폼에 있다 보니,
몇 달간 피땀 흘려 만든 영상들이
한순간에 내 손을 떠났을 때의 아쉬움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그날 함께 고생했던 관계자분들의 노고를 알기에,
아쉬움은 더 컸다.
하지만 그 경험은 내게, 분명한 기준을 남겼다.
이제는 남의 서비스 안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내가 주인이 되는 콘텐츠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1년 뒤, 나는 평생 소장할 수 있는
나만의 클래스를 직접 제작했다.
사라진 영상들에 미련을 두기보다,
그때 배운 스크립트 짜는 법과 카메라 세팅하는 법을 가져와 온전히 내 것을 다시 만들기로 했다.
이제는 애써 만든 콘텐츠가 사라질까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만든 내 영상들은 지금, 클래스유와 스마트동스쿨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