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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3인가구보다 옷이 많은 1인가구 옷방
정리 변태
by
각선생
Oct 18. 2023
이틀 전, 모르는 번호의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차분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집 정리를 하고 싶다는
컨설팅 의뢰였다.
나는 서둘러 팬과 수첩을 챙겨 상담에 필요한 정보들을
하나씩 메모하기 시작했다
1인 가구며 평수도 내 전문인 10평
미만이었다.
최근에 이사했는데 아직 정리가
제
대로 안 된
상
태로 생활 중이
라
하셨다
그중에서도 옷이 좀 많은 편이라고 했다.
어느 집이나 가보면 다들 옷 정리가 제일 큰 메인이니 이 부분은 크게 대수
롭
지 않았다
정리 컨설팅은 물건 양에 따라 견적이 달라지기 때문에
보다 정확한 상담을 하기 위해 좀 더 대화를 나눴다
혹시 사진을 보내주실 수 있냐 여쭈니 고객님께서 살짝 당황하신 눈치다
이건 몇 차례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인데
내가 사진을 요청했을 때 꺼려하시는
경
우는 대체로
다른 집에 비해 난이도가 있을 때다.
그럴 때 나는 더 이상 민망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내가 직접 가서 보면 되는데 굳이 고객이 불편할 수 있는 대화를 이어갈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대신 방문 일정을 최대한 앞 당긴다
다음날 오전에 뵙는 걸로 하고 통화를 마쳤다.
내 능력이 빛을 발할
수 있는
난이도 일지 살짝 기대된다
설레는 마음으로 고객을 만났다
가보고 못할 수도 있다고 전날 미리 말씀드렸기도 하고 전화 느낌도 나쁘지 않았기에 일단 마음이 가볍다.
집을 들어서자마자 구조가 트여 있어 답답함이 전혀 안 느껴졌다
옷 방이 가장 궁금했다
예전에 다른 데서 몇 번 정리 서비스받은 적은 있으나
2~3명 전문가가 와도 빠듯할 만큼 옷 양이 많았다
꼼꼼히 분류해서 입을 옷과 안 입을 옷을 구분하는 게
시급한 상황이었다
베란다에도 바닥이 드러나지 않게 쌓인 옷봉지가 보였다
바닥이 좁아 전체 사진을 담을 각도가 나오질 않았다
한컷에 담기지가 않아 부분적으로 쪼개 찍었다
이런 작업일수록 많은 인원이 정리하는 건 되려 독이 될 수 있다
물론 시간도 없고 주기적인 정리 서비스를 계속 받을 생각이라면 상관없다
하지만 앞으로 스스로 정리하고 이를 오랫동안 유지 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면 꼼꼼히 할 때 제대로 해야 한다
나는 이번 컨설팅이 너무너무 자신 있다
기대된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이 방을 100프로, 아니 200프로 변화시킬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이 집엔 옷 방만 따로 있다
다른 공간과 나누지 않아도 되는 드레스룸을 갖추고 있다는 건 자취방 기준에선 매우 좋은 조건에 속한다
거기에 옷걸이도 다 통일돼 있었다
게다가 고객님은 시스템 옷장도 세팅하기 좋게
잘 짜 놓았다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이 또 있으랴
게다가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 부분도 간간이 보였다
바로 모자를 자주, 그것도 골고루 사용한다고 한다
가방도 많냐고 여쭈니 가방은 진짜 몇 개 없다고 하시며 10개 정도 된다고 하셨다.
"
고객님 전 가방 3개예요~"
가볍게 농담을 건네니 고객님께서 해맑게 웃으셨다.
고객님께 이 집은 우선 옷정리가 가장 시급하니 옷방 하나만 먼저 해보자고 제안했다
주방이나 다른 곳에 에너지를 분배하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다른 공간은 일단 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물론 고객님이 전체를 원하시면 그것도 가능하지만
대신 11월이 넘어가야 한다
이번주랑 다음 주 중요한 특강이 예정 돼 있어 사실
웬만큼 가슴이 뛰지 않았다면 내 성격에 바로 다음 주로 타이트하게 잡지도 않았다
게다가 컨설팅 이틀연속으로 하고 바로 다음날 강의다
내 멘털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정이다
강의 전 거의 올스톱하고 준비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완벽주의가 낳은 굉장히 비 효율적인 자기 관리지만
지금은 이게 편해서 어쩔 수 없다.
나의 평소 루틴을 다 어길 만큼 나는 이 집 옷방에 미쳐있다
나랑 친한 고객 중 한 분이 내게 정리변태라고 말했을 정도다
정리하기 힘든 공간을 유독 좋아해서 붙여준 별명이다
나는 비포에프터가 확실한 집을 좋아한다
유독 끌리는 집이 있다.
물론 사람이 끌리는 집도 있다
근데 이번 컨설팅의 경우는 둘 다다
원래 작년에 1인가구 전문인 나에게 의뢰 하려고 계획하시다가 사정이 생겨서 미루게 된 거라고 하셨다.
이유를 듣고 나니 왜 웃는데 슬퍼보이는지 알겠다.
대화 내내 선하고 상냥한 미소에 가려져 있어
전혀 몰랐던 사실을
알고 나니 놀라서 흘러나온 탄식과 함께
순간 머릿속이 복잡했다
내가 지금 이 순간에 건네는 짧은 위로가 되려 고객님 슬픔에 기름을 붓진 않을까?
꾹꾹 누르며 참다가 문득문득 올라오는 그 뜨거운 슬픔의 깊이를 내가 얼마나 이해한다고ᆢ
사람이 진짜 힘들 때 힘내라는 말은 조심스럽다
나 역시 그 말이 썩 감흥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즉시 판단했다.
도움 안 되는 위로대신 고객님께 정리로 감동을
드리는 쪽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 감동으로 고객님을 따뜻하게 안아줄 거다
*컨설팅 관련 된 사진들은 계약서 작성시 미리 고객님께 동의을 받은 경우에 한해서만 사용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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