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백수유감

홋카이도의 아침

by HONEY

‘또르르, 또르르’

토출구에서 물이 연신 흘러나온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새는 높은 소프라노로 가냘프게 끊임없이 울어댄다.

저렇게 하루 종일 울다가는 목이 쉬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이다.

가끔 지나가는 가벼운 바람에도 나뭇잎들은 ‘사르륵사르륵’ 몸을 흔들어 바람이 지나간 길을 가리킨다.

자작나무를 스쳐 지나온 아침 햇살은 단풍나무의 아기 손 같은 이파리 위에 머문다.

벽에 매달린 스피커에서는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이 들릴락 말락 흘러나와 나그네의 감성을 깨운다.


홋카이도 어느 골짜기의 노천탕.

물에서 올라오는 라벤더 향과 싸한 아침 공기가 내 코끝에서 끊임없이 부딪힌다.

나는 자연의 모습으로 항아리처럼 생긴 욕조에 몸을 누인다.

온기가 몸속을 파고든다.

봄날, 이른 아침. 기온은 영상 7도.

발가벗고 돌아다니기에는 으스스한 날씨지만 뜨끈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나를 공격하는 찬 기운에 맞선다.

평소에는 찍소리 못하던 옆집 세 살 많은 형에게 일찍 퇴근한 아빠의 손을 잡고 눈을 부라리는 꼬마의 기분이다.


땅속 깊은 곳에서 솟아난 온천수는 대지를 뒤덮은 하늘의 기운을 만나 하얀 김으로 흩어져 간다.

나는 탕에서 나와 아침 햇빛을 맞고 서서 하늘을 쳐다본다.

발바닥에 돌의 차가운 기운이 느껴진다.

번개가 피뢰침을 통해 땅으로 스며드는 것처럼, 하늘과 땅은 나를 통해 연결된다.

빛과 공기는 보이지 않는다.

활엽수에 비치는 햇살과 온천수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수증기를 통해 그 존재를 짐작할 뿐이다.

나뭇잎과 따뜻한 물이 보이지 않는 것을 알게 해 주듯, 세상에 가득한 하늘의 은혜를 이 땅에 보여 주는 것.

그것이 땅을 밟고 서 있는 사람의 역할일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젊은 시절 한때나마 품었던 청운의 꿈 따위는 이제 없다.

그냥 이 땅에서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것이 내가 이 땅에 던져진 이유라는 생각이 퍼뜩 든다.

운이 좋다면 바람의 존재를 알려 주는 나뭇잎처럼 하늘의 은혜가 나로 인해 다른 이들에게 보이면 좋으리라는 아스라한 기대 정도는 있다.


잠시 탕밖에 서 있는 사이 온몸을 다시 점령한 한기를 피해 나는 잽싸게 뜨거운 물속으로 뛰어든다.

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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