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길을 걸을 때 땅을 보며 걷곤 했다. 내 뒤에서 걸어오던 선생님들은 “동전 떨어졌냐? 왜 그렇게 바닥을 보고 걸어”라고 말했다. 빠른 연생으로 7살에 학교에 들어간 나는 키도, 체구도 작았다. 1학년 입학식 날, 먼지가 폴폴 일어나는 운동장에서 동네 친구들과 사진을 찍었다. 언니처럼 보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찍힌 표정은 웃는 것도, 찡그린 것도 아닌 애매한 표정이었다. 학교라는 넓은 공간에서 뚝 서 있는 나는 그곳이 너무 낯설고 무서웠다. 본격적인 학교생활이 시작되고 처음 메고 다닌 가방은 분홍색 헬로키티 책가방이었다. 캐릭터만 귀여울 뿐 철제로 된 가방은 가뜩이나 먼 학교를 더 가기 싫게 만든 것 중 하나였다. 천근만근 무게가 내 몸을 바닥까지 눌어붙게 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중학생이 되고 중학교 1학년 때 번호를 정하는 시간이었다. 하필 키가 작은 여자애들부터 앞으로 오란다. 어떻게든 뒤로 가려던 나는 밀리고 밀려서 맨 앞에 서게 되었다. 번호 1번. 제일 작은 아이이자 첫 번째로 주목받는 사람. 그러다 겨울 방학이 끝날 무렵, 내 몸의 변화가 생긴 것인지 시선도, 느낌도 전과 같지 않았다. 실제로 키를 재보니 9cm가 자랐다. 학교에서 다시 만난 친구들은 내가 오히려 조금 더 커지자 “야, 키 다시 재보자”라고 하면서 몇 번이고 등을 맞대고 서게 했다.
지금은 여성 평균 키까지 자란 나는 다시 바닥을 보면서 걷는다. 내 허벅지만큼 오는 아이와 걷다 보니 자연스레 바닥을 보게 되었다. 낮에는 횡단보도를 건너고, 길가에 핀 꽃을 찾아서 향기를 맡는다. 데구루루 굴러다니는 새빨간 열매는 아이가 주섬주섬 주워서 챙겨간다. 그리고 놀이터를 향해 마구 뛰어간다.
어느 날, 어둑한 밤 똑같은 길을 걸었다. 조금 연식이 있는 아파트라 길이 두툴두툴하다. 그걸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홈이 이렇게 많이 파였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잘 걷다가 일부러 홈에 발을 쏙 넣더니 몸을 휘청거렸다.
“엄마, 나 좀 구해줘!!”
장난 섞인 말투로 아이가 크게 외쳤다.
“자, 손잡아. 영차”
“발이 안 빠져”
생생한 연기를 펼치는 모녀는 어두운 길에서 깔깔대며 그러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곳곳에 난 홈이 어둠 속에서 더욱 거대해 보였다. 돌부리에 발이 걸려 삐끗할까 봐 신경 쓰였다. 작은 아이 눈에는 놀이가 되었지만 나는 아이가 다칠세라 염두하고 바닥만 보았다. 사실 웬만한 길에는 그런 홈이 많다. 어렸을 때 나는 그것을 조심하느라 그런 것도 아니고 동전을 샅샅이 뒤진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먹을 걸 주워 먹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고.
“한숨만 땅이 꺼지라 쉬죠“라는 노래 가사처럼 어린아이는 자꾸 한숨을 만들어 냈다. 풀 죽어 있는 모습은 어른들 눈에 안쓰럽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왜 그렇게 땅만 보고 걸어“라며 어깨를 툭 치고 가는 사람들을 난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그래서 적어도 우리 아이만큼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재미있는 것 천지인 땅바닥을 유심히 들여다보면서 뭐든 그대로 느낄 수 있다면, 깊은 홈에 걸려 넘어지더라도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