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햇살이 내리쬐는 날, 아이와 함께 밖을 나섰다. 아파트 단지 내에는 빨간 공중전화부스가 있다. 이런 곳이 있는지 몰랐는데 아이 덕분에 알게 되었다. 아이는 물건도 전화기처럼 무조건 귀에 대고 “녜, 녜” 하곤 했는데 실제로 커다란 전화기가 눈에 들어오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부스에 들어가 묵직해진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렸다. 수화기를 귀에 가져다 대자 두~~ 소리와 함께 영어 안내 음성이 흘러나왔다. 낯선 목소리에 아이가 살짝 놀랬다가 “안녕하세요?”라며 대화를 시작했다. 오래전에 설치된 전화라서 당연히 작동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아이는 전화를 걸어달라고 보채고 마지못해 가방을 뒤져 100원을 찾았다. 동전을 쏙 집어넣자 신호음이 들렸다. 내 핸드폰 번호를 누르고 기다리자 액정에 번호가 떴다.
아이는 공중전화를, 나는 핸드폰을 붙잡고 통화했다. 그렇다면 가족들에게 전화해보자. 번호를 꾹꾹 눌렀건만 숫자 7이 고장이었다. 공교롭게도 가족들 번호에는 7이라는 숫자가 꼭 들어가 있었다. 어쩔 수 없다며 설렁설렁 길을 걷다가 아이가 벤치를 가리켰다. “엄마. 우리 여기서 좀 쉬다 가자” 친구 같은 딸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 앉아서 커다란 트럭이 주차하는 모습도 보고, 층층이 높이 쌓인 박스도 보았다.
그러다 할아버지 한 분이 구부정한 자세로 걸어오셔서 벤치 옆자리에 앉으셨다. 아이도, 나도 꾸벅 인사를 건넸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일단 아이의 마스크부터 씌웠다. 이제는 타인이 다가오면 마스크로 무장하고 바짝 긴장해야 하는 것이 씁쓸했다. 할아버지는 아이가 귀엽다고 말씀하시면서도 어떤 말이 하고 싶으신지 몸을 옴짝달싹하셨다. 그러다 손을 쓱 내밀며 운을 떼셨다.
“아기 엄마, 이거 전화는 어떻게 보는거유?”
부재중 전화를 다시 보고 싶으신 모양이었다. 전화 모양 아이콘이 보이지 않아 화면을 몇 번 뒤적였다. 그리고 차근차근 알려드렸다. 드디어 해답을 찾으신 할아버지는 안도하며 웃으셨다. 마스크 뒤에 숨겨져도 표정이 보였다. 점심을 드시러 가시는 할아버지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나는 오히려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핸드폰 관련해서 우리 부모님은 크게 질문을 하신 적이 없다. 스마트폰이 출시되었을 때도 나이가 많은 편이 아니셨으니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나에게 커플로 아이폰을 쓰자고 제안한 것도 엄마였다. 광고에서는 “이런 아이폰이 없다는 건~”이라고 떠들어 대고 있었고, 엄마가 원해도 사지 않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스며드는 마케팅 효과인지 저런 아이폰이 궁금해졌고 결국 검은색 아이폰 두 개를 사고 돌아왔다. 몇 년이 흐르고 나는 스마트폰에 완벽 적응하고 있을 때 엄마는 노안으로 글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핸드폰이 뭐기에 엄마를 그렇게 서운하게 했는지. 디자인이 마음에 쏙 들어도 세월 앞에 어쩔 수 없었다.
스마트폰이 익숙한 시대의 아이들. 공중전화의 전화 모양이 낯선 아이들. 눈을 뜨면 달라져 있는 세상에서 나이 들수록 얼마나 그 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점점 무인 시스템이 활발해지면서 키오스크 앞에서 진땀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다. 기계의 버튼을 누르기까지, 그 글자를 읽기까지 얼마나 많은 망설임과 수치심을 견디고 있었을까. 이 정도 발전이라면 주름이 지긋이 새겨지기도 전에 나조차 따라가지 못해 헐떡일지도 모른다. 나중에 딸을 따라다니며 들들 볶고 있을지도. 하지만 이것이 아직 먼일이라면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해야겠다. 느린 누군가를 위해 알려주고 기다려주는 일. 그것은 나에게도 머지않아 돌아올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