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 키우는 시간 동안 나는 사회적 위치에 속하지 않아서 많이 외로웠다. 사람 만나는 일은 끽해야 계절 문화센터에 등록해 또래 아이들을 만나거나, 놀이터에서 만난 엄마들과 잠깐 인사 나눈 것이 전부였다. 친구들보다 일찍 아이를 낳은 편에 속해서 아이와 동갑인 친구를 만나기 어려웠다.
나이와 월생 차이가 날수록 수면 패턴이 달라져 당일 만나기로 했어도 파투가 나기 쉬웠다. “애가 자...”라며 우는 표정을 보내는 친구에게 “애 잘 때 쉬어야지. 다음에 만나자”라는 말로 톡을 마무리 지었다. 아이들끼리 만나게 해주고 싶은 것도 있지만 내 친구와 육아 스트레스를 수다로 시원하게 풀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이마저도 여의찮았다.
하늘을 찌르던 코로나의 기세가 점점 잠잠해질 때쯤 아이가 드디어 등원할 수 있게 되어 기뻤다. 숨통이 확 트이는 기분에 카페로 향하겠다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파트 단지 안에 새로 생긴 그곳은 2층 창가에 도로가 한눈에 내려다 보여 마음에 들었다. 잔잔하게 음악이 흘러나오고 손님도 별로 없었다. 커피를 파는 곳이지만 정작 커피를 잘 마시지 않기에 그 외의 메뉴를 신중하게 고르는 편이었다. 그렇게 메뉴판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과일 티 하나 주세요. 아, 아이스로요”
“어떤 과일 티 주문하시겠습니까?”
엇, 이 목소리 분명 어디서 들었다. 특유의 비음이 섞인 목소리와 익숙한 눈매.
0.5초 정적 속 눈 맞춤을 하다가 서로 빛의 속도로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어...과일 티 아이스요”
“과일 티 어떤 걸로 하실 건가요?”
“네? 그냥 과일 티로 주세요..”
“종류가 있습니다. 라임..”
“아아...자몽이요”
“네. 결제해 드리겠습니다”
졸지에 메뉴를 이해하지 못한 고객이 된 나는 꿋꿋하게 과일 티만 외쳤다. 나처럼 그녀도 나를 알아보았는지 음료 호출을 하고 서둘러 등을 보인 채 들어갔다. 그녀와 난 친구도 아니고 싸웠던 사이도 아니다. 직장 동료로, 내 옆에서 잠시 함께 사람이었다. 나보다 연장자이기에 그녀가 또래처럼 편한 것은 아니더라도 이런저런 이야기는 많이 나누었다고 기억한다. 그 기억이 벌써 6년 전이다.
반가워야 할 순간에, 느낌표를 던지며 말문을 터야 할 순간에 그렇게 타이밍을 놓쳤다. 아마 마스크를 쓰지 않았더라면 무조건 인사를 나눴을 텐데 가려진 얼굴은 당신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어설픈 핑계를 주었다. 시간은 흐르고 우리의 헤어짐은 자연스럽지 못했다. 근무하던 원사정으로 인해 한 명씩 나가야 했고 오랜 기간 일 해온 사람들에게 큰 허탈감을 주었다. 그렇게 우리의 만남은 예상했던 장소가 아닌 의외의 장소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나는 잘 보이지 않는 자리에 앉아 음료를 마셨다. 뒤적이며 수첩 하나를 꺼냈다. 평소에 들고 다니는 수첩은 그 해 다이어리인데 오늘은 공백이 많은 수첩이 들고 오고 싶었다. 달력 칸에 붙여 놓은 조그만 스티커 사진을 바라보다가 한 장씩 넘긴 그 시간의 기록은 6년 전 그때였다. 그녀도 알만한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맨 앞 투명 비닐에 끼워진 종이 하나를 꺼내어 당장이라도 그녀에게 “이거 보세요. 기억나요?”라고 하면 “어어, 알지”라고 할 것 같았다. 왜 하필 이걸 들고 나왔는지, 혹시라도 떨어트리게 된다면 그녀는 어떤 기분으로 이걸 마주하게 될지 궁금했다. 결국 예상 시간보다 음료를 빨리 마시고 문밖을 나섰다. 어색하고 애매하다는 이유로 나는 새롭게 시작될 이야기를 단절시키고 말았다. 이제 이곳을 일부러 찾아오는 건 오늘로 마지막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