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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그린 Aug 04. 2022

벌어진 건 점토가 아니라 마음이었다


어린이집 방학의 마지막 날, 비는 오지 않았지만 나가지 않고 집에 있기로 했다. 딸아이는 소꿉놀이하다가 점토를 꺼내 달라고 했다. 주황색 점토를 동그랗게 펴서 꾹꾹 눌렀다.


얼마 하지 않고 금세 일어나더니  “엄마 이렇게 두드려. 아니, 아니 그렇게 말고 손으로 살살” 신신당부하고 인형을 끌고 나온 아이는 내가 해놓은 것이 마음에 드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국수 가락처럼 만들기 위해 양손으로 점토를 밀었다. 그러다 중간에 끊어진 점토에 “아, 끊어졌어”라고 했다. 수습을 위해 어루고 달래듯 살살 문질러 주었다.


분명 길어졌지만 매끄럽지 않은 점토의 결을 아이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여기 이게 이상하잖아. 울퉁불퉁해” 나는 벌어진 부분을 여미듯이 모아주었다. 유심히 살펴보더니 “어? 여기도, 여기도”라며 주문 사항이 많아졌다.


“왜 자꾸 이렇게 되는 거지?”

골똘히 생각하는 아이에게 나는 말 했다.


 “한번 끊어져서 그래. 벌어져서 다시 뭉쳐도 처음 처럼 잘 안돼.”

난 이 말을 뱉고 생각했다. 나에게 놓인 벌어지고 위태로운 관계에 대해서.    

  

대화하는 방법을 모르고 대화할 줄 모르는 우리 가족에게 내 마음을 시원하게 말한 적이 없다. 상처가 될까 봐 말을 줄였고 참는 것이 능사라고 여겼다. 다 함께 동의하는 일에 나 혼자 “아니요”를 외치는 일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요즘 나는 마음의 절벽 끝에 서 있었고 납득하기 어려운 순간을 계속 마주했다.


결국 툭 하고 풀려버린 이성의 끈은 뿔난 소가 되어 이리저리 들이받고 있었다. 더 이상 순응적으로 “네”라고 할 수는 없었다. 할 말은 해야 했다. 허심탄회한 이야기들이 오가면서 상처받기도 했는데 남보다 가족에게 들은 말의 생채기가 더 심하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감정을 추스르기가 힘들면 혼잣말이 쏟아지는 데 그런 내 모습이 징그럽게도 싫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아이와 함께하는 내내 괜찮은 척했지만, 마냥 좋아 보이지는 않았을 터다. 아이는 미묘한 차이를 느꼈는지 내 얼굴을 몇 번씩 확인하고 고개를 떨구기도 했다. 재미없다며 짜증 내고 답답해했다.


 그런 나도 답답했다. 엄마란 존재는 365일 웃고 있어야 할까. 이런 날, 저런 날이 있는 건데 아이는 완벽한 모습만 적응되어 있던 건 아닐까. 오만가지 생각이 스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목소리를 가다듬어 밝게 말을 건넸다.


그날 저녁, 아이는 자기 전에 내 무릎 위에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 엄마가 마음이 불편해서”

“응? 누가??”

“엄마가...”

나 대신 마음이 불편하다고 말해주는 아이. 아이 앞에서 나는 다 들키고 만다.

     



어제를 떠올리며 주황색 점토를 밀고 있는 지금의 아이를 본다. 고맙게도 오늘 혼자 노는 시간이 많다. 나가자고 떼쓰지도 않는다. 편의점에서 사고 싶은 사탕 자판기 장난감 대신 아폴로 하나만 들어 계산대 위에 올려놓는다. 이 녀석은 어디까지 나를 감지하고 있는 건지 궁금할 따름이다.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말을 힘들  듣기 싫었는데 이제는 간절히 원하고 있다. 모든   지나가리라. 시행착오 끝에 서로가 성숙해 가는 과정이 있기를 나는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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