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ool Life1 1화 入學

부제: 슬기로운 학교 생활, 본격 초딩 교사 성장 로망 소설

by Red eye

제1화 「入學」


-Ver. 1.00 정식 완전판-


<3월 3일 오전 7시 30분 현재 시간>


강아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학교 정문을 통과했다. 아직 해는 본격적으로 떠오르지 않았지만, 하늘은 희끗희끗 봄빛을 머금은 채 서서히 밝아지고 있었다. 그녀는 어젯밤 챙겨둔 노트북 가방을 한 손에, 다른 한 손엔 케이블이 꽂힌 비디오 캡처 카드를 들고 있었다. 손가락 끝은 얼얼했고, 팔은 저릿했지만, 더 아픈 건 따로 있었다. 밤새 두 시간도 채 못 잔 눈꺼풀이었다.


“실시간 중계라니, 실시간… 왜, 왜 하필 나야…”

그녀는 중얼거리며 본관 쪽 계단을 올라갔다. 전날 저녁 무렵 도착한 그 한 통의 문자.

정보부장 임진한입니다....
선생님, 쉬시는데 죄송해요.
저희 학교 입학식은 다른 학교와 조금은 다르게 실시간 라이브 중계를 합니다.

입학식에 참여를 하지 못한 부모님들을 위하여 특별히 그렇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내일 그것도 꼭 준비 부탁드려요. 교장선생님께서 가장 신경을 많이 쓰시는 부분이십니다. 내일 뵐게요.

단순한 문장이었지만 파장이 컸다. 아무리 정중하게 말해도, 처음 맡은 업무에 '실시간 라이브'라니. 그 순간 강아름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노트북을 켜고 검색을 시작했었다. “초등학교 입학식 라이브 송출 방법”, “OBS 연결 오류 해결법”, “노트북 HDMI 강당 빔프로젝터 연결법”... 밤새 이어진 키워드 전쟁 끝에 남은 건 머리카락 몇 가닥과 눈 밑 다크서클뿐이었다.

“첫 입학식인데… 방송 담당이라니, 이건 뭐, 교생도 아니고…”

그녀는 중얼거리며 3층 방송실 문을 열었다. 어둑한 조명 아래, 작고 오래된 장비들이 침묵하고 있었다. 카메라와 삼각대, 마이크, HDMI 분배기, 방송용 미디오 믹서까지—그녀는 가방을 쿵 내려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됐다, 다 모았다. 이제... 강당.”

장비들을 하나하나 확인한 뒤, 그녀는 팔꿈치에 케이블을 걸고, 무거운 장비를 다시 들었다. 어깨에 맨 노트북 가방은 이미 어제 밤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다. 계단을 뛰어 내려가 강당으로 향하는 그녀의 표정은 결연했지만, 손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이마와 옷은 땀으로 젖은 흔적이 보였다.


<열흘 전, 2월 24일 오전 9시>


열흘 전, 인천시동부교육지원청에서 발령장을 받던 날. 교육장과 3월 발령을 받은 몇몇의 신규교사들은 축하인사를 받고, 교육지원청을 걸어 나왔다. 정식은 아니지만 그래도 첫 출근날이었다.

봄기운이 가득한 아침. 강아름은 검정 코트를 바람에 휘날리며 앞으로 출근길이 될 전철을 타고 동춘역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큰 대로를 통하여 아파트 사이를 걸었다. 두 손엔 갓 받은 발령장과 꽃다발이 들려 있었고, 얼굴은 수줍은 설렘으로 붉어져 있었다.

“아… 저 아이들… 진짜 초등학생이네.”


횡단보도 앞 한 초등학교가 보였고, 교문 앞에는 파란색 모자를 쓴 아이들이 줄지어 걷고 있었다. 어떤 아이는 장난감 가방을 질질 끌고, 어떤 아이는 친구와 깔깔 웃으며 과자를 나눠 먹고 있었다. 강아름은 무심코 입꼬리를 올렸다.

“곧 나도… 저 아이들 앞에 서는 거겠지.”

참결초등학교의 교문이 점점 가까워졌다. 겨울 끝자락을 지나며 나뭇가지마다 연초록 새싹이 움트고 있었다. 교문 앞, ‘환영합니다! 영전을 축하드립니다.!’라는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여러 선생님들 이름이 있었고 강아름 선생님이라는 이름도 유독 선명하게 보였다.

“와… 진짜 내가 선생님이 됐구나...”

그녀는 가슴 깊숙이 숨을 들이쉬었다. 공기가 상쾌했다. 지난 4년간의 대학생활과 임용고시를 통과하기 위해 일 년을 고시생으로 보냈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오늘은 정말 잊지 못할 날이었다. 그날의 햇살도, 골목의 아이들도, 펄럭이던 현수막도.


<3월 3일 오전 8시 현재 시간>


강당 문을 열자, 어둠이 그녀를 삼켰다. 천장은 높고 무거웠으며, 무대 위 커튼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바닥은 적막했고, 아무런 소리도, 스피커도, 조명도 없었다. 암흑이었다.

“… 불은… 어디서 켜는 거야?”

강아름은 한 손에 스마트폰 플래시를 켜고 이리저리 더듬었다. 전등 스위치를 찾기 위해 벽을 따라 걷던 그 순간—

찰칵.

갑자기 온 강당이 환해졌다.

“으악!”

깜짝 놀라 주춤 물러난 그녀는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강당 입구 쪽, 무심하게 열리던 문 사이로 누군가의 뒷모습이 사라졌다. 검은 슈트 재킷을 입은 남자가 순식간에 휘리릭하면서 사라졌다.

“누, 누구지…?”

누가 불을 켜준 걸까? 그리고 왜 아무 말 없이 사라진 걸까? 그녀는 강당 한가운데 서서 숨을 고르며 중얼거렸다.


“… 혹시… 도와주려던 거야?”

하지만 그 물음에 답해줄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그 답을 궁금해할 머릿속의 여유와 시간도 없었다. 그저 조명이 켜졌고, 강당은 그녀 혼자였으며 준비해야 할 것은 태산 같았다. 강당 방송실로 달려가 문을 열자, 낡은 장비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강아름은 노트북을 꺼내며 조심스레 케이블을 연결했다. HDMI 포트를 꽂고, 카메라 전원을 확인하고, 마이크 선을 풀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하는 거 맞겠지… OBS, USB 캡처 카드… 어제 본 대로면…”


그러나 처음 보는 오디오 믹서와 앰프들, 그리고 각종 무대 장비들. 페이더는 어디 있고, 스피커 테스트는 어떻게 하지? 불안한 마음에 손끝이 계속 떨렸다.

그녀는 한참을 바라보다 문득 고개를 숙였다.

“… 괜찮아. 괜찮을 거야. 처음이니까… 모두 실수하겠지. 근데… 제발, 너무 큰 실수만 아니면…”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다시 떠오른 문장.

“실시간 중계도 부탁드려요.”

“아 XX 진짜..”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욕설. 강아름은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다, 살며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다시 숨을 들이쉬었다.

“그래. 내가 강아름이잖아. 내 이름처럼, 아름답게 시작하자. 무섭지만, 피하지 말고... 그냥 해보자.”

멀리서, 강당 천정 옆창, 카튼 사이로 부드러운 아침 햇살 한 줄기가 흘러 들어왔다.


<다시 열흘 전, 2월 24일 오전 10시 30분>


학교 2층 복도. 그리고 교무실 문 앞에선 강아름. 큰 숨을 들이쉬는 순간 문이 벌컥 열리고, 너무나 놀란 강아름은 그저 눈을 크게 뜰 뿐이었다. 문을 열었던 중년의 여성은 미소를 짓더니, 바로 물었다.

“어떻게 오셨나요? 혹시 성함이?”

“아, 네. 강아름입니다. 오늘 발령받고 바로 학교로 찾아왔습니다.”

“아하, 강아름 선생님, 오셨군요. 이쪽으로 오셔요. 환영합니다.”


여성을 따라 들어가며 슬며시 교무실을 살펴보았다. 눈에 띄게 정돈된 사무 공간. 그 미묘하고 조용한 기운이 그녀를 맞이했다. 순간 강아름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책상 위로 가지런히 놓인 서류더미, 벽에 붙은 학교 현황과 월중 행사 일정표, 똑딱거리는 시계 소리 하나까지 긴장감을 더했다.

단정한 단발머리에 날카로운 눈매를 지닌 중년 여성이 다가왔다. 그녀는 바로 교감, 한지수였다. 미소를 머금은 인상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바른 자세로 서야 할 것만 같았다.

“첫 발령 축하드립니다. 참결초등학교에 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해요. 이곳에 발령받으신 것은 정말 복이 많으신 거예요.”

“아,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한지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곧장 교무부장을 불렀다. 한 손에는 메모지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빠르게 사인을 정리하던 남자 교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십을 갓 넘긴 듯한 중후한 인상, 이름표에는 ‘강인봉’이라 적혀 있었다.

“여긴 강인봉 교무부장 선생님이세요. 실무적인 부분과 학교의 이모저모는 앞으로 교무부 장님께 자세히 안내받으실 거예요.”

“안녕하세요, 강아름입니다.”

“환영합니다, 강 선생. 오늘 처음이시죠? 부담 갖지 마시고 하나하나 배워가시면 됩니다. 오늘은 간단히 자리랑 학년 소개만 받고 가셔도 괜찮아요. 사실 교장 선생님 먼저 뵈어야 하는데, 교장선생님께서 해외 연수 중이셔서 개학 전까지는 계속 자리를 비우시게 되었어요.”

이어 연구부장 전수현과 교무실무원도 소개받았다. 무뚝뚝해 보이지만 고개를 살짝 숙여주는 인사가 정중했다. 그 가운데 어색한 미소를 띠며 강아름은 자신이 마치 조각난 풍경에 던져진 듯한 기분을 느꼈다. 잠시 뒤, 강인봉 부장이 안내하겠다는 손짓과 함께 복도를 따라 걸었다.

“6학년으로 배정되셨습니다. 보통 신규 선생님들이 부담스러워하는 학년인데... 올해는 조금 다른 분위기입니다. 선생님 제외하고 다 남자교사네요. 초등학교에서는 이런 경우가 무척 드문 경우라서요.”

“아, 그런가요?”

“학년부장은 독고철 선생님입니다. 성격은 좀 강직하면서 완벽주의적인 면이 있어서 까다롭게 느낄 수 있지만 아이들과 선생님들 모두 부장님을 잘 따릅니다. 윤허담 선생님은 아직 3년 차 신규교사지만 체육부장을 맡고 있고요, 남도윤 선생님은 창의융합교육이라고, 예전에 영재교육이라고 불렸던 업무를 담당하고 계십니다. 공교롭게도 선생님을 제외하고 모두 남자 선생님이시네요. 하하. 셋 다 참결초에서 2년 이상 경험도 있고 책임감도 있어서, 아마 많은 도움 받을 겁니다.”

강아름은 긴장이 덜 풀린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교무실에서의 기계적인 소개보다 훨씬 사람 냄새가 나는 이 설명이 마음을 조금 덜어주었다.

문이 '덜컥' 하고 열리는 소리에 안쪽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6학년 연구실’이라는 작은 명패가 붙은 방문을 지나 강아름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었다. 내부는 생각보다 소박했다. 세 칸의 책상이 ‘ㄷ’ 자 형태로 놓여 있었고, 각 자리엔 이미 선생님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다가 맨 왼쪽에 앉아 있던 남자 교사가 벌떡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아, 신규 선생님이시죠? 어서 오세요!”


목소리에 힘이 있었다. 큰 키에 호리호리한 몸에 탄탄해 보이는 그는 깔끔하게 정리된 수첩을 툭툭 치며 다가왔다.

“저는 6학년 학년부장 독고철입니다. 앞으로 많이 도와드릴게요. 불편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시고요.”

독고철. 이름만큼이나 뭔가 단단하고 바른 느낌이 났다. 얼굴은 무표정에 가까웠지만 말투는 분명하고 또박또박했다. 정장을 빳빳하게 차려입고 있는 모습에서 철저함이 묻어났다. 강아름은 얼떨결에 허리를 굽혔다.

“안녕하세요, 강아름입니다. 부족하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요, 반가워요. 여긴 체육부장 윤허담 선생님이시고, 저쪽은 영재교육 담당 남도윤 선생님이에요.”

독고철이 손으로 가리키자, 오른편에 앉아 있던 젊은 남자 교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을 흔들었다. 후줄근한 점퍼 차림에 운동화, 한 손엔 텀블러가 들려 있었다.

“윤허담입니다. 강 선생님, 일단 적당히 하시고, 너무 긴장하진 마세요. 애들이 무서운 거 하나도 없어요. 선생님이 더 무서워지면 됩니다.”

말 끝에 툭 하고 웃음을 터뜨린 그의 얼굴엔 장난기가 스며 있었다.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유쾌함이 있었다.


“아… 네! 감사합니다. 하하…”

강아름은 억지웃음을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어쩐지 말속에 진심 반, 농담 반이 섞인 느낌이었다. 마주 앉은 또 다른 남자 교사, 남도윤은 조용히 노트북을 덮으며 천천히 일어났다. 눈빛이 날카로웠고, 미간엔 살짝 주름이 잡혀 있었다.

“남도윤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남도윤은 악수를 생략한 채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인사 이상의 말을 하지 않았다. 책상 위엔 깔끔한 회의 노트와 프린트들이 정리되어 있었고, 마우스 옆엔 <6학년 교육과정> 문서가 펼쳐져 있었다. 왠지 모르게 자신을 관찰하고 있는 듯한 느낌에 강아름은 어깨가 움찔했다.

“강 선생님 교실은 2반이고, 연구실 바로 옆 교실이에요.”

독고철이 연구실 한 편의 벽면 사물함에서 키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잠깐 자리 보러 가시죠. 아직은 비어 있지만, 청소는 조금 하셔야 할 거예요.”

“네, 감사합니다.”

강아름은 키를 받아 들고 세 사람의 시선을 등에 업은 채 문을 나섰다. 복도를 걷는 짧은 시간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문 앞에 도착하자, ‘6-2’라고 적힌 명패가 눈에 들어왔다.

‘내 교실이다…’

가슴이 벅차오르며 콧등이 시큰해졌다. 아직 아이들도, 책상도 없는 교실. 그래도 곧 이 공간이 아이들의 하루가 머무는 곳이 되겠지. 문고리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하… 들어갑니다!”

문을 ‘벌컥’ 열었다.


<3월 3일 현재 시간 – 오전 8시 30분>

벌컥하고 컨트롤룸 문이 열리며 수십 개의 차단기가 보였다. 아래에 각 차단기의 이름이 붙어 있지만 글자만 읽을 줄 알았지 뭐가 뭔지는 하나도 모르는 것이었다.

“… 몰라, 다 올려!”

강아름은 컨트롤 패널 앞에서 거의 결심하듯 속으로 외쳤다. 그리고는 차단기들을 위로, 위로, 또 위로 올려버렸다.

딸깍딸깍딸칵—

순식간에 강당 전체가 살아났다. 무대 위 조명이 켜지며 눈이 부셨고, 스피커가 ‘웅—’ 하고 낮게 울렸다. 스크린 모터가 돌아가며 ‘드르르륵’ 내려오기 시작했고, 뒤쪽 카메라의 빨간 LED가 번쩍였다.


“어… 된다…? 된 건가?”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강아름은 노트북을 펼쳐 OBS를 띄웠다. 화면에는 ‘신호 없음’이라는 말이 둥둥 화면을 떠다니고 있었다.


“신호가… 없어? 어디서 신호를 찾나? 어디... 어디 보자.”

혼잣말을 하며 HDMI 케이블을 이리저리 들고 찾아 헤맸다. 카메라 단자, 스위처 단자, 노트북 단자, 천장으로 올라가는 단자… 단자는 왜 이렇게 많은가, 그리고 왜 다 똑같이 생겼나.

“이거 맞나? 이게 비디오 캡처 카드였던가? 카드라고는 비씨, 마스터 밖에 모르는데...”

그때였다. 무릎을 꿇고 케이블을 들여다보던 그녀의 발목에 뭔가 슬금슬금 감기기 시작했다.

“잠깐, 왜 발목이 따뜻하지…?”


선이었다. 독사처럼 길게 뻗은 케이블이 그녀의 종아리와 무릎, 허리까지 휘감고 있었다.

“야, 풀려, 풀리라니까—”


한 발짝 떼는 순간, 노트북 전원선이 푹 빠졌다. 동시에 빔프로젝터 전원 버튼을 누른다는 게, 그 옆에 붙어 있던 ‘국기 게양/하강’ 버튼을 눌러버렸다.

“어, 어, 어……?!”

천장에서 ‘위의 잉, 위이잉’ 풀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태극기가 장엄하게 내려왔다.

무대 중앙까지 내려온 태극기를 멍하니 바라보던 그녀는, 굳이 진지하게 일어나 손을 가슴에 얹었다.

“… 국기에 대한 경래…?”

혼잣말로 읊조리며, 그녀는 바로 다음 초에 선을 밟고 미끄러져 그대로 ‘쿵’ 무대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으악!”

잠깐 정적이 흐르고 멍한 표정이 되고 나서야 긴장이 조금 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하… 이거, 실시간이었으면 역사에 남겠는데? 흑역사…”

눈을 비비며 일어선 그녀는 다시 태극기를 버튼으로 올리려다, 이번엔 확실히 ‘빔프로젝터’ 버튼을 눌렀다. 스크린에는 아직도 신호가 없었다.

“연결은 했는데… 왜…? 아, 이거 ‘소스 추가’를 안 했구나.”

OBS 화면을 누르며 허둥지둥 추가 버튼을 클릭하던 그녀는 또 한숨을 쉬었다.

“아… 나 진짜 초등학교 교사 맞지? 방송국에 입사한 줄…, 방송국 PD 시험이나 볼걸.”

그 순간, 강당 문틈으로 누군가가 조심스레 얼굴을 내밀었다. 하얀 마스크를 쓴 얼굴, 그리고 낮은 목소리.

“선생님, 강당 쓰시나요…?”

“아, 예! 죄송해요, 지금… 아, 교장선생님은 아직… 안 오셨죠?”

“예, 아직요. 근데… 그 태극기는… 왜…?”

“… 우리… 마음만은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

“아… 네.”

그리고 그 교직원은 더 묻지 않고 조용히 문을 닫았다. 강아름은 마이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 헛소리를... 근데. 오늘, 입학식 진짜 할 수 있을까?”


<2026년 2월 24일 – 오전 11시>

문이 열리는 순간, 강아름은 본능적으로 뒤로 반 걸음 물러섰다.

“… 여기가… 제 교실이에요?”

먼지 냄새가 먼저 달려왔다. 책상 위엔 이름 모를 종이뭉치와 마른 매직들이 깔려 있었고, 칠판 아래엔 부러진 분필이 모래처럼 쌓여 있었다. 블라인드도 내려와 있어서 빛이 잘 들지 않아 어둑한 분위기까지. 그녀가 상상했던 ‘감동적인 교실 인상’은 아니었다.

“이 정도면 전쟁터 폐허인데…?”

그녀는 조심스레 한 발을 내디뎠다. 발바닥에 ‘사각’ 하고 작은 종이조각이 밟혀 느껴졌다.

'그래. 누군가가 떠난 자리지. 맞아.'

그 순간, 조금 어색하고 공허한 기분이 들었다. 새로 들어온 자신은, 누군가의 빈자리를 어떻게든 메워야 했다.


“청소부터… 청소부터 하자.”

소맷부리를 걷어붙이자 먼지가 더 풀풀 날렸다. 창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당겼지만, 창틀이 들러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으… 으… 열려, 열리라고!”

마침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호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아름 선생님! 밥 먹고 해요!”

체육복 차림의 윤허담이었다. 숨을 헐떡이며 멋쩍게 웃는 모습은, 아까 연구실에서 본 장난기 그대로였다.

“오늘은 다들 바빠서요. 메뉴는 김치찌개, 제육덮밥, 만둣국. 저는 제육이요.”

“…아, 저는… 뭐가… 좋을까요?”

“그냥 제육이 진리죠. 고민할 시간에 먼지 하나라도 더 털어내야 해요.”

윤허담의 말을 뒤로하고, 복도 쪽에서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독고철이었다.


“강아름 선생님, 전임자 얘기 들었죠?”

“네, 갑자기 군대를… 가셨다고…”

“정리를 거의 못하고 갔어요. 그래서… 인수인계 관련해서 있으면 조만간 교무실에서 확인해 보세요. 방송 담당이시라고.”

“네? 제가… 방송 담당인가요?”

“그건 교무부장님과 정보부장님에게 들으세요.”

독고철은 짧게만 말하고, 다시 서류를 들고 복도로 사라졌다. 잠깐 고요. 먼지 냄새 속에서 윤허담이 슬며시 다가와 어깨를 툭 친다.

“걱정 마요. 우리 다 이랬어요. 첫 해엔 다 멘털 나가고, 둘째 해엔 아이들한테 잡아먹히고, 셋째 해부터는 진정한 어부가 됩니다.”

“… 어부요?… 물고기? 잡는 그 어부요?”

“우리가 사람 낚는 직업이잖아요.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하, 그리고 교실 청소는 제가 도와드릴게요. 대신 체육대회 때 줄다리기 줄 세팅은 제가 부탁합니다.”

“그게… 저 도와주시는 조건인가요?”

“조건 있으면 더 열심히 하는 편이라.”

둘은 잠깐 웃었다. 웃으니 먼지 냄새도 좀 덜했다.

“일단 교무실 내려가 보세요. 강인봉 교무부장님이 찾으실 거예요. 그리고… 청소는 이따가 같이 해줄게요. 작년에 졸업한 우리 반 애들이 와서 도와주기로 했어요.”

“아이들한테… 시켜도 되나요?”

“아이들은 항상 선생님 도와주는 걸 좋아합니다. 문제는 선생님이 도움 받는 걸 어려워한다는 거죠.”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박혔다. 윤허담이 밖으로 나가며 손가락을 두 번 튕겼다.

“밥 먼저요. 일단 밥 먹고, 시작합시다.”

강아름은 허리를 숙여 떨어진 분필 조각을 하나 집어 들었다. 손바닥에 얹힌 하얀 조각이 희한하게 무거워 보였다.

“… 그래 밥 먹고, 일단 밥부터 먹고 하자.”


<3월 3일 현재 시간 – 오전 8시 47분>

OBS 화면에 마침내 카메라 영상이 떴다.


“떴다… 떴다! 제발 마이크만… 마이크만 말썽 부리지 말아 줘.”


그녀는 마이크에 대고 작은 소리로 “테스트, 테스트”를 중얼거렸다. 소리가 강당에 울렸다. 페이더를 내리고 다시 올리다가, 헤드폰을 쓴 채로 ‘삐—’ 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라 뒤로 넘어질 뻔했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아까 그 교직원이 또 얼굴을 내밀었다.


“아, 네! 저, 괜찮아요!”

“태극기는… 다시 올리셨네요.”

“…네. 다시는 내리지 않겠습니다.”

“그 마음, 내년 3월까지 가면 베테랑입니다.”

현타가 왔던 표정으로 웃는 강아름을 보고, 그 교직원도 어쩌다 보니 함께 웃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강당 뒤쪽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강 선생님.”

차분한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남도윤이었다. 서류철을 들고, 시계를 한 번 확인하고, 그녀를 살폈다.

“9시 10분부터 리허설 잡혀 있던데,. 혹시… 지금 상태로 가능합니까?”

“가능… 해야죠.”

“가능과 해야 하는 건 다릅니다.”

“… 지금은… 같은 겁니다.”

잠깐, 남도윤의 입가에 미묘한 미소가 스쳤다.


“좋습니다. 교장선생님 오시기 전에, 빨리 믹서 사용부터 익히죠. 방송은… 사고가 아니라 대응으로 평가받습니다.”

“네? 아… 네…”

남도윤은 말없이 가까이 다가와 페이더를 조심스럽게 잡았다. 그리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은요, 이걸 이렇게 고정해 두고, 리허설 때만 손을 대세요. 선 없는 선생님을 제가 두 명 만났는데, 선 있는 선생님은 처음이라.”

“선… 요?”

그녀가 고개를 아래를 내려다봤다. 아까부터 발목에 감겨 있던 마이크 선(線)이 보였다. 남도윤은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겁이 나도, 마음먹으면 다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선을 높이세요.”

“…네?”

“이해 못 하셔도 됩니다. 방송부터 하시죠.”

여전히 태극기는 무사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강아름은, 아주 살짝— 진짜 아주 살짝— 웃었다.



<3월 3일 현재 시간 – 오전 8시 50분>

“헉… 헉…!”

복도를 거의 미끄러지듯 달려온 강아름은 문패 6-2 앞에서 급제동을 걸었다. 손에 쥐고 있던 USB와 시나리오 종이가 구겨진 채 팔에서 덜렁거렸다. 문을 열기도 전에 가슴은 벌써 터질 듯 쿵쾅거렸고, 이대로 쓰러지면 심폐소생술 담당은 누가 하지? 같은 쓸데없는 생각까지 번개처럼 스쳐갔다.

문을 ‘쾅’ 열자, 교실 안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수십 개의 눈동자가 일제히 그녀의 헐떡거리는 숨소리에 맞춰 흔들렸다 몇 초 되지 않았지만 순식간에 그 눈동자들과 눈 맞춤을 하였다.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다 놀란 아이들은, 입을 ‘ㅡ’ 자로 다문 채, 숨을 삼키듯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몇몇 아이는 눈이 동그래졌고, 몇몇은 저 선생님… 방금 달리기 대회에서 온 건가? 싶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강아름은 눈을 껌뻑이며 찢어질 듯 웃었다. 숨을 참아보려 했지만, 폐가 말썽이었다. 허리를 반쯤 숙인 채, 울분을 터트리듯 목이 터져라 외쳤다.

“……내, 내 이름은… 강아람…!”

순간. 교실은 조금 더 조용해졌다. 아이들의 눈이 조금 더 커졌다. 그리고 웅성 우성 하더니 조용히 한 목소리가 들렸다.

“강아름 아닌가요? 선생님?”

“아! 아 그래 … 강아람이 아니라, 강아름!”

키득거리는 소리가 책상 사이사이에서 새어 나왔다. 너무나 창피한 나머지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정정하며 손바닥으로 이마를 ‘탁’ 쳤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아이들이 또 한 번 놀랐고 키득거림과 웅성거림이 다 사라지고 정적이 흘렀다.

통증 덕분인지 왠지 모르게 심장이 조금 내려앉았다. 다행이다. 적어도 웃을 수 있었다.

“무, 무서운 선생님은 아니고요… 음… 오늘은 입학식이고… 제가… 방송을 맡아서, 아, 잠깐만요. 잠깐만요.”

손에 들고 있던 USB가 손가락 사이에서 미끄러질 뻔했다. 그녀는 얼른 쥐어잡으려고 저글링을 몇 번하였다. 그리고 학생들을 다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제가 지금… 강당… 강당으로… 방송을… 하러… 네… 다녀올게요. 다시 오면… 제대로, 다시… 다시 인사할게요.”

말이라는 건 분명 그녀의 입에서 나왔지만, 문장이라는 형태를 갖추고 있는지 자신할 수 없었다. 아이들은 그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어설픈 고개 끄덕임이, 오늘 아침 그녀에게 주어진 최초의 ‘인정’ 같았다.

그때였다. 교실 뒤쪽 문이 톡톡 두드려졌다. 문 사이로 고개를 내민 사람은, 말끔한 셔츠 위에 과학실 카드키를 걸고 있는 6학년 과학전담 교사였다.

“강 선생님, 얼른 입학식 준비하셔요. 교장선생님께서 찾습니다. 제가 보결로 들어갈게요.”

그 말에 강아름은 무릎이 풀릴 뻔했다.

“네… 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머리를 숙이며 허둥지둥 교실을 나서던 순간, 교탁 위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08:50.

— 10시에 입학식, 9시 10분에 리허설, 그전에 음향이랑 화면, 교가, 국기에 대한 경례…!

그녀는 마음속으로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뛰었다. 나는 지금, 무언가를 아주 잘못 맡고 있는 것 같다. 그 생각과 함께, 복도 위 그녀의 발소리가 크게 울렸다.


<2026년 2월 24일 – 오전 11시 30분, 회상>

교무실 작은 회의실.

긴 테이블 건너편에 교무부장 강인봉, 정보부장 임진한이 앉아 있었다. 둘의 표정은 묘하게 닮아 있었다. 미안함과 단호함 사이, 또는 어쩔 수 없음과 책임전가를 하겠다는 의지 사이쯤.

“강 선생님.”

강인봉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낮고 굵은 목소리였다.

“아마 아직 학교 구조나 업무 분장, 행사 흐름 같은 건 잘 모르실 거예요. 그래서… 오늘은 중요한 걸 하나 먼저 말씀드리려고요.”

“네… 네.”

강아름은 허리를 반쯤 굽힌 자세로 앉아 있었다. 손은 무릎 위에서 살짝 떨리고 있었다. 임진한이 옆에서 작게 종이를 돌려주며 덧붙였다.

“전임자가 갑자기 군대를 가게 되면서, 방송 업무가 공석이 됐습니다. 그래서… 강 선생님이 이 업무에 배정이 되셨어요. 저도 오늘 들었네요.”

“방송… 업무요?”

박자 늦게, 그녀의 목소리가 바닥을 스쳤다. 강인봉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입학식에 방송도 당연히 포함입니다. 모든 학교에서 입학식은… 그 해에 가장 첫 번째로 중요한 행사예요. 연초 입학, 연말 졸업. 현재 제일 중요한 행사라고 해도 될 정도죠.”

‘입학식… 방송… 내가?’

말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임진한은 조심스럽게 USB 하나를 내밀었다. 은색 몸통에 검은 테이프로 ‘입학식’이라고 적혀 있는, 작고 흔한 USB.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건 핵폭탄급 무게를 갖고 있었다.

“여기에… 필요한 기본 파일이 있습니다. 국민의례, 애국가, 태극기, 교가 파일. 일단 형식적인 것들은 이걸로 해결될 거예요.”

강아름은 USB를 받아 들었다. 손바닥 위에서 그것이 미묘하게 뜨겁게 느껴졌다.

“근데… 이게… ‘기본’이라고 하셨죠?”

“네.”

“그럼… ‘기본’ 말고… 또 뭐가 있는 거죠?”

둘은 동시에 짧게 숨을 쉬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강인봉이 먼저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당일 사용할 PPT, 시나리오, 식순은 제가 정리해서 드립니다. 다만… 장비 연결이나, 영상 송출 같은… 그쪽은 정보부장이—”

임진한이 손사래를 쳤다.

“저도… 그 부분은 자신 없어요. 기본만… 알려드릴게요. 저도 밤마다 검색하면서 해요.”

“… 잘.. 잘 모르세요?”

“저도… 정보 부장이지만 방송 실무업무를 맡아본 적이 없어서요. 영상 편집만 해봤어요.”

그 짧은 단어가 처벌처럼 느껴졌다. 이때 실시간 라이브 송출이라는 것을 말했어야 했는데. 침을 삼키는 소리가 자신의 귀에 너무 크게 들렸다.

강인봉은 말을 덧붙였다.

“실수하면 티가 납니다. 그리고 많은 외부 학부모님들 앞에서 티가 나죠. 강 선생님. 중요한 행사입니다. 실수하면 안 됩니다.”

그 문장이, 부드럽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목덜미에 단단히 매듭지어졌다. 실수하면 안 된다. 실수하면 안 된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말이지만, 초임 교사에게는 처음 외줄 타기에 밀려 줄타기를 하라는 말이었다.

“아…”

짧은 신음 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손은 더 떨렸고, 종이 위의 글씨가 일시적으로 흐려졌다.

‘PPT, 시나리오, 식순, 실시간, 연결, 음향, 카메라…’

그때, 임진한이 USB 아래에 얇은 흰색 종이를 하나 더 밀어놓았다.

“전임자가 남긴 편지도 있어요. 짧아요. 근데…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강아름은 손끝으로 종이를 펼쳤다.

‘안녕하세요. 어떤 선생님께서 방송업무를 맡을지 몰라서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저는 갑작스럽게 군대를 가게 되었고 작년 5월에 발령을 받아 사실 입학식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정보부장님께 많이 부탁드려 주세요.

정말 죄송합니다. 필요한 파일만 USB에 담아뒀습니다. 저도 작년에 중간에 들어와서, 아는 게 진짜 없었어요.’

그래도… 선생님은 저보다 잘하실 거예요. 파이팅입니다.

“… 선생님은 저보다 잘하실 거예요.”

그 대목에서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찔거렸다. 모르는 사람들이, 모른다고 말할 때의 무게. 모른다고 말해주지 않는 사람들보다, 훨씬 무겁다.

잠깐의 침묵.

그 침묵 사이로, 창밖을 가로지르는 버스가 보였다. 흐릿한 유리창 너머, 모자챙 아래로 고개를 숙인 누군가가 있었다. 창문을 손으로 한 번 쓸어내리고,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지는 게 보였다. 아마도, 편지를 쓴 그 교사일 것이다.

아마도, 자신과 닮았을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강아름은 USB를 손에 쥐고, 고개를 숙였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정말… 최선을.”

임진한은 작은 위로처럼 덧붙였다.

“못하면… 저도 같이 욕먹어요. 그러니까, 서로 살자고요.”

강인봉이 덧붙였다.

“그리고, 실수할 수 있습니다. 다만… 보고는 먼저 하세요. 실수도 보고, 해결도 보고.”

“네.”

회의실 문을 나서며, 그녀는 USB를 쥔 손을 한 번 더 꽉 조였다.

입학식.

절대 실수하면 안 된다.

그 단어들이 고리처럼 손목을 묶었다.

그런데도—

한편으론 이상하게도, 해보자는 생각이 점점 더 선명해졌다.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다 같이 죽자.


<3월 3일 현재 시간 – 9시 5분>


강아름은 강당을 향해 뛰면서, 방금 전에 교실에서 했던 자기소개를 떠올렸다.

“내 이름은 강아람… 아니, 강아름…! 아! 죽어! 죽어! 죽어!”

담임이 초등학생 앞에서 자기 이름을 틀리는 개망신을 당했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부끄럽고 창피했다. 그리고 사실 문넘에 과학전담교사가 계속 그녀가 자기소개를 마치기를 기다리고 보고 있었다는 생각에, 그리고 자신의 이마를 후려갈긴 모습까지, 그녀를 실성한 사람처럼 혼자 씩 웃게 만들었다. 그래, 이름을 틀렸으면 그냥 아람이라고 이름을 고치고 살면 되지 뭐. 그러나 USB를 쥔 손은 더 세게 굳게 쥐어졌다.

‘어떡하지? 준비가…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는데…’


속으로 계속 주문처럼 되뇌며, 복도를 전속력으로 뛰었다. 복도 양옆에 삼삼오오 서 있던 선생님들이 갑작스럽게 내달리는 그녀를 보고 고개를 돌렸다.

“방송 담당이 저 선생인가?”

“오늘 사고 안 나야 할 텐데…”

“작년에도 애국가가 안 나가서… 휴, 트라우마지.”

속삭이는 말들이 귓가를 스쳐갔다. 강아름은 들은 체도 않고 강당 앞에서 급히 멈춰 섰다. 숨이 가빠 등을 크게 들썩이며 강당 문을 밀었다.

문틈으로 들어오는 강당의 어둠과, 조명이 켜지며 밝아질 찰나 사이.

그 사이—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아주 천천히 사라지고 있었다.

그때 그녀는 몰랐다.

그 조용한 발자국의 주인이,

오늘 하루 종일 그녀보다 먼저 움직이며 그녀가 놓칠 것을 이미 다 챙겨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9시 10분, 리허설이 시작되기 직전—

강아름은 방송실 문을 열며, 자신에게 말했다.

“괜찮아. 실수해도… 보고하고 다시 하면 된다.”

잠시 멈췄다가, 아주 작게 덧붙였다.

“…그리고, 잽싸게 다시 하면 된다.”

USB가 포트에 ‘딸깍’ 꽂히는 소리.

그 소리를 신호처럼, 강당의 전광판에 첫 화면이 떠올랐다.

참결초등학교 입학식 2026.

끝내, 리허설이 시작이었다.


<3월 3일 현재 시간 – 오전 9시 10분>


“헉… 왔습니다!”

그곳에는 교감 한지수와, 무표정한 얼굴의 교장 이태웅이 나란히 서 있었다.


“이 선생이 새로 오신 강아름 선생님입니까?”

교장이 짧게 묻자 교감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올해부터 6학년 2반 맡으셨어요. 방송 담당도 함께 하십니다.”

교장의 눈매가 조금 더 날카로워졌다. 한참 강당 전체를 둘러보던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준비가 잘 되어 있군요. 선생님이 다 하신 건가요?”


강아름은 순간적으로 머리가 하얘졌다. 이 상황에서 뭐라 대답해야 하지? 솔직히 말해야 하나? 아님 그냥…?

“…네. 네. 뭐… 제가 준비했습니다.”

거짓말이었다. 사실 누군가 이미 다 해 놓은 상황. 그저 자신은 정신없이 끈 몇 개 연결하고, 파일 몇 개 확인한 게 전부였다. 남도윤 선생님이 잠시 믹서 페이더로 볼륨 조정하는 것 정도가 다였으니.

“음.”

교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교감에게 눈빛을 보냈다.


“그럼 리허설 한 번 해봅시다.”

강아름은 컨트롤 패널 앞으로 뛰듯 다가가 앉았다. 노트북의 트랙패드를 덜덜 떨리는 손으로 눌러가며 프로그램을 열었다.

그 순간, 교감이 손을 들어 올리며 입모양으로 ‘마이크!’라고 말했다. 강아름은 허겁지겁 페이더를 올렸다.

“삐——이익!!”


순간 강당 전체가 비명을 지른 듯한 소리에 휩싸였다. 교장과 교감은 동시에 귀를 막았고, 강아름도 깜짝 놀라 손을 놓쳤다. 소리는 겨우 꺼졌지만, 이미 세 사람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

교장은 한참을 말없이 강아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며 입을 열었다.

“……정보부장하고, 교무부장. 지금 당장 여기로 오라고 하세요.”

말은 짧았지만, 그 안에 담긴 피로와 짙은 분노는 교감의 얼굴을 하얗게 만들었다. 교감은 곧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제가….”

강아름은 얼어붙은 채 변명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교장은 무표정하게 빔프로젝터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강 선생님은 잘못 없지요. 부장들이 잘 전달하고 준비할 수 있게 도와주고 점검을 했어야 하니.”

그리고 천천히 강당을 떠났다.

그 뒷모습은 생각보다 컸고, 생각보다 더… 무거워 보였다.

그 순간, 교무부장이 들어오며 강아름의 어깨를 톡 치며 물었다.

“아까 세팅… 본인이 다 했다 그랬다면서요? 어떻게? 혹시 수학 선생님한테 물어보신 거예요?”

“수학 선생님이요…?”

“아… 4학년에 있는 분인데, 이름이… 정수학. 방송은 좀 알 거든요. 아니면, 걔가 또 몰래 해놨나… 그럴 수 있어요. 원래 그런 스타일이거든요.”

“정수학… 수학 선생님… 인가?”

강아름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다시 컨트롤러 앞에 앉았다. 손바닥엔 땀이 흥건히 배어 있었다. 그 순간, 컨트롤 패널 오른쪽에 다시 보이는 그 작은 메모. 이번엔 누가 가져다 둔 건지 모를 지침서 같은 메모였다.

‘마이크는 –8에서 시작. 불빛은 오른쪽 두 번째 스위치. 삐익 소리 나면 전원 다시 껐다 켜기.’

“… 누군지 몰라도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로.”

그녀는 아주 작게, 메모지에다 대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손을 떨면서 페이더를 조심스레 움직였다.

이번엔, 삐—— 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첫날이니까. 아직은 괜찮다고… 믿고 싶었다.


<6일 전 – 2월 25일>


카페 안은 겨울 햇살이 무심하게 비추고 있었다. 창가 자리에 앉은 두 사람 사이에는, 커피 잔의 김조차도 얼어붙은 듯했다. 남자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아름아, 너 요즘 너무 변했어.”

강아름은 조용히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눈부시게 웃고 있는 커플이 눈에 들어왔다. 꽃다발을 들고, 손을 꼭 잡고 있는, 나와는 다른 누군가.

“변한 건… 오빠도 마찬가지야.”

그녀가 고개를 돌려 남자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발령받고 나서, 오빠도 계속 바쁘다며. 한 달 동안 우리가 얼굴 본 게 며칠이야? 근데… 지금 내가 바빠지고, 정신이 없다고 하니까 왜 그걸 이해 못 해줘?”


남자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겨우 뱉듯 말했다.

“나는… 그래도 네가 힘들면, 만나서 밥이라도 먹고 얘기라도 들어주고 싶었어. 그리고 나도 말 못 할 힘든 일들도 있었고, 근데 넌... 항상 아무 말도 없이, ‘미안해’만 하잖아.”

“그게 내 진심이니까.”

강아름의 목소리는 떨리면서도 단단했지만, 그 속에는 지친 숨결이 섞여 있었다.

“미안해서 미안하다고 한 거야. 일부러 피한 적 없어. 그런데 지금은… 나도 지금 너무 버겁고, 겁나고, 그냥 하루하루가 너무 피곤하고 귀찮고 그리고 오빠가 낯설어…”

“거짓말이지. 너 그것 때문에 그런 거 아니지? 누가 생겼니?”

남자의 말에 강아름은 고개를 끄덕이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 오빠 진짜 최악이다. 그냥, 우리 여기까지만 하자.”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가방을 집었다.

“진짜 이렇게 할 수 없어서 미안해. 그리고 정말 고마웠어. 이건 진심이야. 대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오빠랑 함께했던 시간 잘 간직할게.”

그 말에 남자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을 감은 채, 텅 빈 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있을 뿐이었다. 카페 문을 열고 나서자, 찬바람이 얼굴을 후려쳤다. 그제야 그녀의 눈가에 맺혀 있던 게 뺨을 타고 흘렀다.


<3월 3일 현재 시간 – 오전 10시 정각-개회사>

“지금부터 2026학년도 참결초등학교 입학식을 시작하겠습니다.”


교무부장 강인봉의 낮고도 또렷한 개식사가 강당 전체에 울려 퍼졌다. 브라스 밴드 버전으로 편곡된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이 울리면서 누군가에겐 인생 첫 입학이, 누군가에겐 자녀의 첫 입학이, 강아름에겐 교사로서의 첫날을 알렸다.

무대 조명이 은은하게 밝아지면서 방송실 안에서 헤드셋을 낀 강아름은 손끝에 땀이 맺히는 것을 느꼈다. 마이크는 켜져 있었고, 사운드는 무사히 흘러가고 있었다. 지금까진.

심호흡을 크게 내쉰 그녀는 살짝 고개를 돌려 유리창 너머 강당을 바라봤다. 자식의 입학식이지만 최대한 멋지게 누구에게 보이려고 했는지 모르는 학부모 룩으로 입은 객들로 가득 찬 강당.

강당의 접이식 의자에 몸을 반쯤 묻은 1학년 아이들이 긴장된 얼굴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아이는 손을 꼭 쥔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어떤 아이는 기지개를 켜며 졸린 눈을 비비고 있었고, 어떤 아이는 엄마를 찾으며 고개를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가 뭔가를 틀리면 어떡하지?’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가던 찰나,

귀에 익은 교무부장의 목소리가 다시 스피커를 타고 들려왔다.


“지금 이 순간, 아이들의 첫걸음을 축복하며, 함께 해주신 학부모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 말에, 강아름의 눈가가 순간 찡해졌다. 자신 역시 누군가에게 첫걸음을 맡기게 된 하루라는 생각이 들었다. 컨트롤 패널의 오른쪽에는 아직도 그 손글씨 메모가 놓여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손끝으로 그것을 눌러보았다. 그리고 다짐했다.

“오늘만큼은… 울리지 말자. 누구도.”

손이 떨리긴 했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만큼은 단단했다. 이제, 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3월 3일 오전 10시 5분 – 국민의례>


“국민의례가 있겠습니다. 강당에 계신 내빈, 학부모, 신입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국기를 향해 서주시기 바랍니다. 국기에 대한 경례!”

교무부장의 또렷한 목소리가 강당을 울렸다.
강아름은 컨트롤룸 안에서 페이더를 음악 재생 버튼 위에 올린 손끝을 덜덜 떨고 있었다.

‘이제야 시작이다… 아니, 이제부터가 진짜다.’

심장이 또다시 고동치기 시작했다. 태극기 전동 버튼을 눌러야 하는 순간. 지난주 리허설 없이 기기만 확인했던 날이 떠오르며, 손에 식은땀이 베여 들었다.


“선생님, 태극기 내리는 건 R1 스위치입니다. 잘못 누르면 스크린이나 현수막이 같이 움직일 수 있으니 조심하셔야 해요.”

무대장치 설명을 해주었던 정보부장의 목소리가 귓가에 겹쳐졌다.

다시 현재.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버튼을 눌렀다. ‘덜컥—’

무대 위에서 조용히 태극기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천천히, 그러나 정확하게.

‘됐어… 됐다!’

어깨를 조금 내려놓는 순간, 교무부장의 시선이 느껴졌다. 입모양으로 전하는 신호를 너무나 정확하게 알아들었다. 그리고 들리는 국기에 대한 맹세문.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정확한 타이밍에 클릭.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듣는 국기에 대한 경례곡이 흐르기 시작한다. 우리의 국민의례 교육은 이곳에서부터 시작되었으리라.

“바로! 이제 애국가 제창이 있겠습니다. 지휘자의 지휘 맞춰 1절을 부르겠습니다.”

애국가 1절의 전주가 흐르자, 강당 안의 모든 학생, 학부모, 교사들이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강아름도 본능적으로 숨을 죽였다.

『…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음악이 조금 느리게 느껴졌다. 강아름은 손바닥에 땀이 배어 마우스를 놓칠 뻔했지만, 고개를 들어 강당 유리창 너머를 바라봤다. 그때였다.


무대 아래에서 학생 대기열을 확인하던 교무부장 강인봉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말없이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천천히 들어 보였다. 입모양으로 “오케이”라는 말까지 따라주는 듯했다. 강아름은 순간 눈이 시큰해졌다.

‘아, 누군가가… 보고 있구나. 믿어주고 있구나.’

애국가와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알리는 멜로디가 끝나고, 컨트롤 모니터에는 다음 식순이 떠올랐다.


'입학허가 선언 → 신입생 선서'

“이상, 국민의례를 마치겠습니다.”

교무부장의 마이크가 종료되자, 이어 교장의 목소리가 강당에 울렸다.

“2026학년도 참결초등학교 신입생 입학을… 허가합니다.”

순간, 박수와 함께 강당 안의 분위기가 환해졌다. 무대 아래에 서 있던 네 명의 아이들이 떨리는 발걸음으로 무대 위로 올라갔다. 가느다란 다리, 머리보다 큰 가방, 서로 눈치를 보며 마이크 앞에 서는 모습. 강아름은 자동적으로 카메라 전환 버튼을 눌렀다. 카메라는 무대 중앙을 정확하게 비췄고, 마이크에 대고 첫 아이가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

“저희는 오늘, 참결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아이의 목소리는 또렷했고, 나머지 세 명도 차례로 선서를 이어갔다. 강당 안은 고요했다. 마치, 숨조차 멈춘 듯.

“선생님, 아주 잘하고 있어요. 조금만 더 집중.”


교감선생님이 방송실 문을 빼꼼히 열고 조용히 응원을 해주었다. 마치 첫걸음을 걷는 자식을 보는 듯한 얼굴표정을 짓고 있었다. 강아름은 모니터에 떠 있는 다음 순서를 바라보며, 작게 속삭였다.

“나도… 이 학교의 신입생이니까요.”

그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이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2026년 3월 3일 오전 10시 15분 – 교직원 소개>


“다음은 교직원 소개가 있겠습니다.”

교무부장의 또렷한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퍼지며, 강당이 잠시 정적에 잠겼다. 강아름은 손에 잡은 리모컨을 꼭 쥐었다.
모니터 화면에 떠 있는 다음 슬라이드를 미리 확인하고, 타이밍을 재며 작은 숨을 삼켰다.

‘슬라이드 넘김… 세 번째 박자에서.’

교무부장의 발성이 일정해지자, 강아름은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교직원 소개】」

첫 화면이 무대 뒤쪽 대형 스크린에 멋지게 떴다. 파란색 물결 애니메이션이 들어간 제목이 깔끔하게 중앙에 자리 잡았다.

“먼저 우리 학교의 든든한 교감 선생님을 소개합니다. 한지수 교감 선생님이십니다.”

조명이 한 번 반짝이며 무대 아래에 앉은 교감 한지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정한 베이지색 투피스 정장, 차가운 인상 뒤로 손끝까지 가지런한 제스처. 그녀는 관객석을 향해 한 번 목례한 뒤, 다시 자리에 앉았다.

‘슬라이드 넘김… 지금.’

강아름은 다음 슬라이드를 눌렀다.

「【행정실】 권귀남 행정실장」

실장의 어깨너머로 고개만 든 권귀남은 반쯤 몸을 틀어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곁에 앉은 누군가가 팔꿈치로 툭 치자, 그제야 일어나 두 손을 번쩍 흔들었다. 학생들 사이에서 웃음이 피어났다.

이어지는 소개는 본격적인 1학년 담임 선생님 소개였다.


“이제 1학년을 책임질 선생님들을 소개하겠습니다.”


강아름은 가슴속에서 뚝뚝 내려앉는 긴장을 다독이며 슬라이드를 넘겼다. 그림자가 드리워진 화면 위로 또렷한 텍스트와 교사 사진이 하나씩 나타났다.

「1학년 1반 – 오필주 선생님 / 학년부장」
카리스마 있는 검정 뿔테 안경, 약간 인상 깊은 미간. 자리에서 일어난 오필주는 단단한 발걸음으로 중심을 잡고 정면을 바라봤다. 정적이 흐르자, 객석에서 누군가 속삭였다.


“선생님이 딱 봐도 무섭대…”
“쉿! 들려.”


「1학년 2반 – 문지은 선생님 / 교육연수」

화면에는 부드러운 웨이브 머리를 묶은 단정한 여선생님의 모습이 등장했다. 문지은은 밝은 미소로 손을 흔들며 아이들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강아름은 그 여유로운 표정이 부러웠다.

「1학년 3반 – 전수현 선생님 / 연구부장」

차분한 인상의 선생님이 고개를 숙이자, 화면에는 연구부장이라는 자막이 강조되었다. 전수현은 소개가 끝난 뒤 살짝 몸을 돌려 강아름이 있는 방송실을 바라봤다. 눈이 마주친 듯한 착각. 강아름은 놀라 슬라이드를 급히 넘겼다.

「1학년 4반 – 김하연 선생님 / 학교예술」

무대 뒤에 앉아 있던 김하연이 살짝 일어나 손을 들어 보였다. 입가엔 따뜻한 미소, 의자 옆에는 그림이 그려진 에코백이 매달려 있었다. 방송실 안, 강아름은 화면을 넘길 때마다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리고 넘길 때마다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갔다.


‘됐어. 지금까진 실수 하나도 없어.’


교무부장의 “감사합니다”로 교직원 소개가 마무리되었고, 조명이 잠시 꺼졌다가 다음 식순의 준비를 알렸다. 강아름은 리모컨을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이제 겨우 중간이야… 아직, 끝나려면 멀었어.’


그러나 처음보다 손끝이 덜 떨리고 있다는 사실에, 그녀는 아주 작게 웃었다.


<2026년 3월 3일 오전 10시 20분- 학교장 환영사>


무대 중앙에 선 교장선생님, 이태웅은 연단 앞에 서자마자 두 팔을 가볍게 벌렸다. 그의 등 뒤로 따스한 주황빛 조명이 천천히 내려앉으며 스크린에는 「학교장 환영사」라는 글자가 또렷하게 떴다.

“우리 참결초등학교에 입학한 사랑스러운 1학년 친구들, 그리고 오늘 이 자리를 함께해 주신 학부모님 여러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낮게 깔린 목소리, 은근한 미소, 그리고 조금은 과장된 손짓. 교장선생님은 연설을 마치기 전부터 스스로에게 흥이 오른 듯 보였다.

방송실 안의 강아름은 그 모습에 슬며시 안도하며 다음 슬라이드를 준비하려는 찰나—.

“자, 오늘은 특별한 날이죠. 우리 아이들에게—”


틱, 틱, 투두둑— 탁!

갑자기 강당 천장의 조명 시스템이 요란한 소리를 내더니, 하늘색 조명과 분홍색 조명이 깜빡이며 춤을 추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건, 갑작스레 돌아가기 시작한 사이키 조명.

빵빵! 빙글빙글!

무대 위 교장의 머리 위로 무지갯빛 선광이 돌며, 현란한 디스코 조명이 강당 벽을 휘감았다. 객석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고, 아이들은 “와아!” 하며 환호했다.

그러나 방송실 안.

“어… 어? 뭐야! 이거 아닌데?”

강아름은 리모컨을 손에서 놓칠 뻔하며 조명 스위치를 누르기 시작했다. 빨간 버튼, 파란 버튼, 위아래로 연타.


“삐-이익… 띠리 리리…”


기기는 말을 듣지 않았고, 당황한 강아름은 모니터와 조명 조작판을 번갈아 보며 진땀을 흘렸다. 그 순간.


“하하하! 네, 우리 참결초등학교는 이렇게 반짝이는 학교입니다!”


교장 이태웅이 두 팔을 번쩍 들며 익살스럽게 외쳤다. 그는 손을 머리 위로 동그랗게 만들더니, 아이들을 향해 노래하듯 말했다.


“조명이 이렇게 멋진데 어울리는 노래하나 불러드릴게요. 자~ 다 같이 부를까요? 환영의 노래~ ♪

어서 와요 참결학교~ 연꽃 피는 행복학교~ 두루미 날고 느티나무 그늘~ 우리 함께 자라나요~”


순간 객석은 박장대소. 학부모들의 어깨에 앉은 아이들은 웃음을 터뜨렸고,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웃음지으기까지 했다. 방송실 안 강아름은 그대로 멈춰 서 있었다. 자신의 실수를 웃음으로 넘긴 교장의 순발력에 놀라고, 동시에 또 자신에게 실망했다.

‘아… 완전 들켰어…’


다행히 그 틈에 조명 패널이 자동 복귀했고, 무대 위는 다시 따뜻한 백색 조명으로 환원되었다. 교장은 마치 계획된 이벤트였던 것처럼 웃으며 연설을 이어갔다.


“여러분, 참결초등학교의 이름에는 ‘참된 결실’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이곳에서 스스로 자라고, 서로를 존중하고, 함께 행복한 씨앗을 틔울 수 있도록 돕는 학교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조금 더 차분해졌고, 방금 전의 위트와는 다른 온기를 띠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아이들은, 이곳에서 첫 발을 디딥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발걸음을 함께 걸어가겠습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이 그 여정의 동반자입니다.”


방송실의 모니터에는 천천히 흐려지는 마지막 슬라이드 위로 연꽃과 두루미의 일러스트가 함께 비쳤다. 그 장면을 보며 강아름은 가만히 입술을 다물었다. 조명이 조금 엉켰지만, 아이들은 웃었고, 교장은 넘겼고, 이 순간은 기억될 것이다.


‘어쩌면, 이 학교가 나를 자라게 할지도 모르겠어.’


<2026년 3월 3일 오전 10시 25분 – 선물 증정과 밴드부 공연>


“다음은, 우리 6학년 선배들이 준비한 특별한 선물이 있겠습니다!”

교무부장의 멘트가 끝나자, 강단 옆 출입문이 살짝 열렸다. 노란 리본을 단 작은 손들이 강단 위로 하나씩 등장했다. 6학년 학생들이 줄을 맞춰 들어와, 1학년 한 명 한 명 짝을 지어 하늘색 박스 안 모자를 씌워주고 있었다.

‘참결’이라는 로고가 수 놓인 학교모자. 그 순간, 강당은 마치 한 편의 드라마처럼 따뜻해졌다. 그러나 진짜 장면은 그다음이었다.

무대 위에 갑자기 학생들이 나타나 악기를 설치하였다. 키보드, 드럼, 기타와 베이스 악기가 세워졌고 학생들이 자리를 잡고 연주를 할 준비를 하였다. 딱 봐도 공연이 몸에 밴 움직임. 그리고 단 10초도 안 되어, 무대 위에는 작은 록 밴드의 포지션이 완벽히 세팅되었다.


“어… 뭐야?”


강아름은 모니터 앞에서 눈이 동그래졌다.


‘이런 공연이 있다는 얘기 못 들었는데…? 누구 준비한 거지?’


그때였다. 조용히 열리는 방송실 문. 강아름의 어깨를 툭툭치자 뒤를 본 강아름 뒤에는 윤허담 체육부장이 자리 좀 비켜달라는 손동작을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믹서 앞에 앉아 능숙하게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고, 뒤이어 독고철 학년부장도 등장했다.


“자, 조명은 여기. 음악은 여길 통해 보내고… 좋아.”


둘은 말없이 분업된 듯 움직였다. 마치 리허설이라도 했던 것처럼, 척척 움직였다. 그리고 무대 조명 너머, 무대 뒤편. 암전 된 공간 한쪽에서 누군가가 손을 들었다. 독고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엄지를 세웠다.

강아름의 시선이 거기로 향했지만, 무대 뒤 조명은 어두워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희미하게 보이는 옅은 파마머리, 팔짱을 낀 남자 교사의 실루엣만이 잠시 스쳐갔다.


‘… 누구지? 방금… 사인 보낸 거야?’


강아름은 아연실색한 채 물었다.


“이거… 다들 할 줄 아셨어요?”


그러자 윤허담은 웃으며 말했다.


“전 1,2년 창 업무가 방송이었어요. 작년에도 우리가 다 했었거든요. 오늘 좀 도와줄까 했는데, 선생님이 혼자서 해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요. 처음인데 정말 잘하던데요.”


독고철도 고개를 끄덕이며 무심히 한마디를 덧붙였다.


“시작도 전에 우리가 직접 해버리면, 다 배울 기회가 없잖아요.”


강아름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말 한마디가 머릿속을 몇 바퀴나 돌았다. …그러면… 왜 진작 도와주지 않았던 거지? 내가 그렇게 우왕좌왕하는 걸 보고도… 왜 아무도…?

그때였다. 무대 중앙의 보컬 학생이 마이크를 잡았다. 귀엽고 단단한 목소리가 강당에 울려 퍼졌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참결초등학교 6학년 밴드부입니다!”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무대로 향했다. 보컬은 빙그레 웃으며 이어 말했다.


“지금 이 자리에 선 여러분 모두는 오늘부터 우리 학교의 새로운 가족이에요. 우리는 오늘 이 노래로 여러분을 환영하려고 해요. 입학, 진심으로 축하해요!”


학부모들의 미소가 퍼졌고, 1학년 학생들 사이에서는 조용한 탄성이 터졌다. 무대 위에선 어느새 드럼의 카운트가 시작되고 있었다.


“하나, 둘, 셋!”


경쾌한 드럼 소리와 함께 음악이 시작됐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밝고 리드미컬하게 강당을 가득 채웠다. 학부모들은 탄성을 내뱉었고, 1학년 아이들은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심지어 교장도 무대 한편을 응시하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무대 중앙에서 베이스 기타가 리듬을 쪼개고, 기타 솔로가 강당을 흔들었다.

반짝이는 조명이 타이밍에 맞춰 바뀌고, 피날레처럼 키보드의 코드가 무대를 감쌌다. 한 곡이 끝나자, 강당 안엔 커다란 박수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거… 이거 정말…”


강아름은 헤드셋을 벗고 중얼거렸다.


“멋지다…”


어쩌면 무대 위의 아이들보다 더 멋진 건, 이 모든 걸 뒤에서 조율한 누군가 일지도 모른다. 윤허담, 독고철, 그리고… 그 암전 뒤의 실루엣. 그 순간, 그녀는 처음으로 ‘누가 도와주고 있는 것일까’를 진지하게 떠올렸다.

그리고— 공연이 끝나자, 강당은 한동안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이 공연은, 단순한 축하가 아니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진심 어린 환영이었다.


<2026년 3월 3일 오전 10시 45분 – 교가제창>


밴드부의 공연이 끝나고, 무대 조명이 잠시 꺼졌다. 강아름은 이어질 프로그램을 확인하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이어서, 교가 제창이 있겠습니다. 1학년 4반 김하연 선생님의 지휘로, 6학년 학생들이 교가를 부르겠습니다.”

교무부장의 또렷한 멘트가 울려 퍼지자, 강당 무대 위로 은은한 조명이 켜졌다. 방송실에 앉아 있던 강아름은 모니터를 바라보다 입을 다물지 못했다.

6학년 전체 학생들이 각자 파트를 나눈 1학년 학생들 옆에 서서 동생들의 손을 잡아 주었다. 그리고 지휘자를 바라보았다.

김하연 선생님이 무대 한가운데에 섰다. 평소에도 예술 수업을 전담하고 있는 선생님답게, 은은한 회색 스카프와 단정한 미소가 그녀를 더 우아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하연 선생님이 팔을 부드럽게 올렸다. 피아노 반주가 조심스레 시작되었다. 마치 교정 너머 느티나무 가지 사이로 햇살이 스며드는 듯한 멜로디였다.

그 순간, 아이들의 목소리가 조용히 시작되었다.


“느티나무 그늘 아래

햇살 품은 교정에서

맑은 마음 싹을 틔워

꿈의 가지 뻗어가네”


노래가 흐르자, 강아름은 강당을 둘러보았다. 학부모들은 조용히 휴대폰을 들어 아이들을 찍었고, 1학년 아이들은 숨소리조차 아끼며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6학년 아이들은 어깨를 펴고, 단단한 눈빛으로 노래를 이어갔다.


“진흙 속 연꽃처럼

우린 포기 않고 자라나

참된 결실 피어나는

우리 참 결의 배움터”


‘진흙 속 연꽃처럼…’


가사를 듣던 강아름은 문득, 자신이 처음 교실 문을 열던 날이 떠올랐다. 먼지가 소복이 쌓여 있고, 형광등 하나도 나가 있던 그 폐허 같던 교실. 그리고 그 속에서 다시, 자신이 두 주먹을 쥐며 청소를 시작했던 순간이—연꽃처럼 떠올랐다.


‘나도… 자라고 있는 중이겠지.’


강아름은 천천히 이어지는 노래에 맞춰 숨을 내쉬었다. 김하연 선생님의 지휘는 마치 바람 같았다. 아이들의 소리가 고요히 하나로 모여 교가의 마지막 음을 감쌌다. 마지막 구절이 울려 퍼졌다.


“우리 참결의 배움터—”


긴 여운을 남긴 채, 피아노 반주가 잦아들었다. 순간, 박수 대신 조용한 감동이 강당을 감쌌다. 그 여운을 끊은 건, 어머니 한 분이 먼저 손을 모아 박수를 친 순간부터였다. 곧이어 온 강당이 따뜻한 박수로 뒤덮였다. 누군가는 눈시울을 훔쳤고, 몇몇 아이들은 ‘멋지다…’고 속삭였다. 방송실 안에서 강아름은 조용히 화면을 바라보다, 고개를 푹 숙였다. 손끝이 떨리진 않았지만,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순간을… 내가 틀리지 않고 잘 전달했다는 게 믿기지 않아.’


그 순간, 뒤에서 누군가 조용히 방송실 문을 닫아주고 갔다. 강아름은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들고, 눈앞의 순간을 마음에 담았다.


<2026년 3월 3일 오전 11시 – 폐회사>


“이상으로 2026학년도 참결초등학교 입학식을 마치겠습니다. 새로운 출발을 함께 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제부터는 1학년 학생들은 언니, 오빠의 손을 잡고 앞으로 생활할 교실로 이동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담임선생님의 학교생활안내를 마치고 부모님과 함께 하교를 할 예정입니다.”


교무부장 강인봉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마이크를 통해 퍼졌다. 강단에 선 그는 단정하게 고개를 숙였고, 이어진 박수가 강당을 가득 메웠다. 음악이 다시 잔잔히 흘렀다. 무대 아래에서는 6학년 학생들이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각자 맡은 1학년 아이들의 손을 잡고 교실로 안내를 하기 위해 조심히 이동하였다. 그리고 그 뒤를 학부모들이 따라가기 시작했다. 강아름은 방송실 안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다, 고개를 들었다.

6학년 아이들과 1학년 아이들이 함께 걸어 나가는 뒷모습은, 어쩌면 처음 보는 풍경인데도 이상하리만큼 익숙했다. 햇살 가득한 교정으로 향하는 그들의 발걸음은 유난히 환했다.


‘참… 괜찮은 하루였네.’


가슴 깊은 곳에서 조용히 뿌듯함이 올라왔다. 말도 많고 사고도 많았던 아침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든 게 잘 끝난 것만 같았다.

방송실 안은 고요했다. 마이크도 꺼졌고, 음악도 멈췄다. 프로젝터의 불빛만이 아직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강아름은 서랍에 손을 얹으며 작게 속삭였다.


“그래도… 하나는 해냈다.”

“내일부터는 진짜 시작이겠지. 아! 맞다!! 우리 반 애들도 갔지!! ”


강아름은 벌떡 일어나 허겁지겁 정리를 하다가 바로 강당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러나 그녀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책상 한구석에 떠 있는 조그만 창, 빨간색의 네모 아이콘, 그리고 그 옆에 또렷하게 떠 있는 글씨.

[LIVE 송출 중]


화면 한가운데엔 아직도 실시간 스트리밍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순간, 방송실 문이 조용히 열렸다. 누군가가 천천히 들어왔다. 그는 말없이 방송 데스크 앞으로 다가가더니, 마우스를 천천히 움직였다.


“톡.”


작은 클릭 소리 하나. 붉은 아이콘이 사라졌고, 송출이 종료되었다. 그 사람은 손을 털 듯 가볍게 바지 옆에 문질렀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대 뒤쪽 문을 열고 조용히 사라졌다.

그리고 오늘 하루, 아무도 모르게 또 하나의 수업이 끝났다.


<2026년 3월 3일 오후 14시 20분 – 입학식 종료 후> 1화 에필로그


강당은 조용했다. 분주하게 움직이던 교사들과 부모, 아이들 모두 사라지고 무대 위의 조명만이 느릿하게 색을 바꾸며 잔상처럼 남아 있었다. 강아름은 방송실 유리 너머로 그 빛을 바라보며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아직도 몸속에서 심장의 북소리가 진동처럼 울렸다.

조명사고… 그건 확실히 실수였다.


“아, 그때 핀 조명 켜야 하는데 사이키 켜서… 하아…”


그 순간, 방송실 문이 열렸다. 제일 먼저 교장 이태웅이 커다란 어깨를 이끌고 들어왔다.


“선생님.”


짧고 낮은 목소리에 강아름이 움찔하며 돌아보았다.


“네… 교장선생님…”


교장은 천천히 다가오며, 뜻밖에도 싱긋 미소를 지었다.


“신규교사가 첫날부터 진짜 어려운 업무를 했냈군요. 축하해요. 음향 사고야 뭐, 안 난 적도 드물고… 조명? 그건 덕분에 분위기가 아주 록 페스티벌 같더군요.”


그의 한쪽 입꼬리가 장난스럽게 올라갔다.


“그래서 노래까지 불렀잖아요. 나 꽤 괜찮았지?”


강아름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 그 장면이 떠오르자 민망함보다도 감사의 마음이 더 컸다.


“네… 솔직히, 정말 멋지셨어요. 덕분에 살았습니다…”


“다음부턴 조명은 사이키 말고 핀으로. 기억해요.”


이태웅은 눈썹을 살짝 추켜올리며 말을 덧붙였다. 뒤이어 교감 한지수가 들어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생각보다 잘 해냈어요. 교무부장이 괜히 칭찬하더니, 신규인데 정말 훌륭하네요. 전임자보다 훨씬 좋아요. 같은 신규였는데 이렇게 차이가 날줄이야.”


강아름은 고개를 갸웃했다.


“… 전임자요?”


교감은 팔짱을 끼고 방송실을 둘러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작년 방송 담당이요. 이름이 뭐더라… 아, 강만수.”


강아름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입술이 바싹 마르고, 손끝이 저릿해졌다.

“…네? 그, 그게…”


교감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졸업식 날, 장비 다 틀리고 태극기도 안 내려오고… 멘트는 틀리고… 완전 개판 쳐놓고 며칠 뒤에 갑자기 군대 갔죠. 참… 진짜 어이없었어요.”


강아름은 그 자리에 굳은 채로 멍하니 섰다. 그 이름. 강만수. 3년을 사귄, 그리고 단 며칠 전에… 카페에서 헤어졌던 바로 그 사람. 그가 자신의 전임자였다는 사실은 세상 모든 우연이 자신의 삶을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하필이면 같은 학교의 후임자라니.


“…그 사람이… 방송 담당이었어요?”

“그렇다니까요? 왜요? 알아요?”


교감은 짧게 한숨을 쉬었다.


“그때 졸업식에서 정말 망쳐놓고 도망치듯이 군대 들어가더라고요. 갑자기. 뭐, 사정이 있었겠죠.”


강아름은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가 말하던 “나도 너무 복잡해서 말 못 했어…”라는 말이 떠올랐다. 입술을 깨문 채, 잠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런 거였구나…”


교감은 강아름의 변색된 표정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지만, 더 묻지 않았다.


“어쨌든, 강 선생은 그 사람보다 백 배는 낫네요. 저는 그런 식으로 도망치는 교사 싫거든요. 아닌가? 감사해야 하나? 그 사람이 가고 강아름 선생님처럼 유능한 교사가 와서 더 다행인 것 같네요. ”


교감이 돌아서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러니까, 남은 학사 일정도 그 열정으로 계속 부탁해요.”


그리고 바로 그 교무부장, 강인봉이 느긋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커피 한 잔이 들려 있었고, 입가에는 능글맞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아~ 강아름 선생님. 아까 조명사고 말인데, 그거 일부러 그런 거죠? 약간 무대 연출 느낌 났어요~”

“그럴 리가요. 아니에요… 완전 실수였어요…”


강아름이 고개를 푹 숙이자, 강인봉은 과장되게 외쳤다.


“실수도 이렇게 품격 있게 할 수 있다니, 우리 강 선생 진짜 대단해!”


그리고는 팔짱을 낀 채, 의미심장하게 덧붙였다.


“입학식까지 해냈으니… 뭐, 교육과정 설명회나 학부모 총회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겠죠?”

“네?!”


강아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강인봉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뒷짐을 지며 돌아섰다.


“내가 초임일 때는 PPT 켜는 것도 몰랐는데 말이지… 하여튼 기대할게요, 유능하신 신규교사 강아름 방송 담당 선생님.”


강아름은 그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작게 중얼거렸다.


“… 입학이 끝난 게 아니라, 시작이었네…”


그녀의 시선은 텅 빈 무대를 넘어, 무대 위에 조용히 꺼진 조명으로 옮겨졌다. 조금 전, 그 빛 속에서 누군가 살짝 그녀를 도와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묘한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도망치지 않을 거야.”


그녀는 천천히 방송실 조명을 껐다. 그리고 작게 중얼거렸다.


“… 진짜 시작이네.”


<1화 입학> 진짜 끝.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