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파동 골목길

창작수필 115호 공모당선작

by 김성철

청파동은 숙명여대가 자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학문화가 자리 잡았으나 소외된 지역으로 낙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지역이다. 사실 청파동은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하면서 용산지역을 군사 요충지로 삼았고 그 인근의 청파동을 주거지역으로 활용하므로 일본식 가옥이 오래동안 존재하였고 나도 그런 일본식가옥에서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내는 그곳에서 초등학교 4년까지 살다가 부모님이 청파동 집을 처분하고 그 돈으로 갈월동에 식당을 열며 그곳을 떠나게 되었다. 나와 동생은 전학을 하라고 하였지만 나는 걷기에는 좀 먼거리였어도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어 전학하지 않고 졸업할 때까지 다녔다. 내가 다녔던 효창국민학교는 지금은 폐교되고 그 자리에 숙명여대 건물이 새로 신축되어 있다.

어릴적의 추억이 담겨 있던 골목이라 방송을 보는 순간 감회가 새로웠고 잊혀졌던 추억들이 다시 떠올라 방송 종료 후에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청파동을 방문하였다.

전철을 타고 남영역에서 내려 청파동으로 걸어갔다, 원효로 방향으로 가는 2차선은 6차선으로 확대 되었고, 삼각지로 흐르던 개천은 그 위가 4차선 도로로 변하였다. 또한 길 옆 단층 건물들은 모두 사라지고 4~5층의 아담한 건물들로 변하여 과거의 추억은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신광여고를 지나 청파 장로교회 옆 골목으로 접어 들자 다시 과거로 돌아온 듯 주변 건물들이 낯익은 모습으로 반겨주었다.

내가 결혼 후 다니던 회사가 서울에서 안산으로 이전하여 나도 부득이 안양으로 이사를 왔고 그 후 부모님이 청파동 옆 효창동에서 사셨으나 부모님 댁을 방문할 적에는 항시 자가용을 타고 가거나 청파동의 반대쪽인 만리동에서 걸어가므로 청파동 골목으로 걸어 본 것은 거의 40년이 넘은 듯하였다.

예전에 딱치치기, 땅따먹기, 비석치기, 술래잡기를 하며 뛰놀던 골목은 그대로인데 골목 좌우의 가정집들은 담을 헐어 가게를 내거나 새로 신축하여 조금 낯설었다. 어릴적에 넓고 길게 기억되던 골목길은 좁고 짧아 잠깐에 골목끝 갈림길에 도착할 정도로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하였다.

갈림길 끝에는 오래되어 보이는 냉면집이 자리하고 있었으나 그 집도 내가 뛰놀던 때에는 정원이 있던 가정집으로 기억이 되고 지금은 붉은 벽돌 건물로 1층은 냉면집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냉면집은 백종원 대표가 배우고 싶다는 회냉면 전문집이다.

내가 추억의 청파동 골목길을 방문한 시각은 점심시간이 아직 안된시간이다. 하지만 그 냉면집은 벌써 번호표를 나눠주고 있었고 나도 그 줄의 끝에 서서 번호표를 받고 잠시 기다리다가 냉면을 먹었다. 그런데 회냉면의 맛은 나에게는 그저 그런 일반적인 맛이었다. 아마 내 어릴적 추억이 그 집에는 없어서 그냥 그런 맛으로 느껴진 듯 싶었다.

냉면집을 나와 우측으로 약 50여미터를 걸어가자 부모님이 갈월동 식당을 하기 전에 잠시 운영하였던 기름집 건물이 보였고 지금은 슈퍼와 야채가게가 자리잡고 있다. 이 슈퍼를 돌아서 조금 가자 내가 살던 일본식 단층집은 없어지고 3층 예쁜 벽돌건물이 나타났다. 이층에는 하숙이라고 자그만 간판이 붙여 있었다.

이 집은 내가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으로 전형적인 일본식 가옥으로 앞 뒤에 자그마한 마당이 있었다. 앞마당에는 작은 빨래터가 있었는데 사각형으로 시멘트를 곱게 바르고 한쪽에는 동글 동글한 자갈이 도드라져 어머니가 빨래를 비비고 두드리고 하였다. 지금은 세탁기가 하는 일은 어머니가 혼자서 다 하였다. 가끔 어머니가 빨래를 다하면 나는 빨래줄에 널어 말리는 일은 도와 드렸고 다 널고 나면 우리 아들 다 컸다고 흐믓해 하시던 모습이 아련하다.

뒷마당은 어머니가 고추와 호박 가지등을 심었는데 그 호박 넝쿨이 옆집과의 경계를 나타내는 담 역할을 했다.호박 사이로 나팔꽃을 심어 노란꽃과 보라색,하얀색의 나팔꽃들이 조화를 이루워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한쪽 구석에는 봉선화를 심어 누님은 그 꽃잎으로 손톱을 물들이고 자랑삼아 내게 보여 주었지만 내는 왜 손톱을 물들이는지 알지 못했다.

손톱에 물들이는 날이면 저녁에 어머님과 누님은 낮에 땋아 놓은 봉선화 꽃잎과 잎, 그리고 백반을 비닐에 넣고 돌로 두둘겨 짓이겨 준 후에 그 꽃잎을 손톱에 고이 붙이고 봉숭아 잎으로 감싸 무명실로 묶어 주었다. 다음날 아침이되면 수줍은 듯 주황색으로 물든 손톱을 보면서 흐믓해 하였다.

다만 물들인 손톱을 보고 기뻐하는 누님 얼굴에 나는 그저 덩달아 좋았고 나도 해달라고 졸랐지만 남자는 하는 것 아니다 라는 어머니의 말에 나는 금방 포기했다.

내가 살던 집 뿐아니라 앞뒷 집들도 새로이 짓고 근처의 다른 집들도 하숙이라는 간판이 있어 이 골목은 청파동 하숙 골목으로 변했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살던 집 위쪽의 작은 골목 끝에는 사방이 나무기둥이고 지붕은 함석으로 덮혀 항시 두레박이 있는 우물이 있었다. 우물 앞에서 친구들과 모여 누가 한번에 많이 퍼올리나 내기하고,두레박을 우물 바닥에 놓고 돌을 던져 두레박에 넣던 장난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가 뛰어 놀다 땀 범벅으로 서로 먼저 마시려고 싸우던 우물은 이제는 아스팔트로 덮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없네’라던 옛말처럼 골목의 형태는 그대로 인데 같이 뛰놀던 친구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어떻게 변하였는지 보고 싶고 궁금해지는 청파동 골목길이다.


백종원 대표가 칭찬한 청파동 냉면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