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 않은 규모의 중견기업에서 정년퇴직한 이후 새로 입사한 이 회사는 직원 8명의 작은 규모의 회사이다. 5층 건물의 한 층을 다 사용하지 못하고 절반만 임차해서 사용하고 그나마 영업직원이 5명이라 모두 외근 나가는 날에는 사무실에는 나와 여직원 단둘이 사무실에서 조용하게 각자의 일을 하며 간간이 들려오는 전화벨 소리와 응대하는 여직원의 목소리가 사무실을 울릴 뿐 항시 조용하다.
오늘도 일찍부터 북적거리던 영업직 직원들의 외근 나간 이후에는 적막을 감돌고 가끔 미화원 아주머니가 오전 청소를 끝내고 들어와 여직원 책상 옆에서 믹스 커피 한잔 들고 수다 피는데 오늘은 이 아주머니도 오지 않았고 커다란 낡은 가방에 양말과 옷들을 가득 담아서 팔러 오던 잡상인도 오지 않아 조용한 사무실 분위기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 점심시간이다.
이런 날의 점심시간이면 여직원과 둘이서 서초동 골목을 헤매고 다닌다.
여직원은 170㎝가 넘는 키에도 굽이 높은 힐을 신고 다녀 대한민국 평균보다 내가 더 크지만 이렇게 둘이 걸으면 내가 올려다보아야 하며 서구적인 미모의 소유자이지만 입맛은 한국의 전통적인 아줌마들의 입맛보다 더 한국적인 입맛의 소유자라 포크보다는 젓가락 사용을 즐기고 파스타보다는 된장찌개를 좋아하는 타입이다. 사무실이 조용한 날은 일찍 점심을 먹고 오려고 노력하지만, 우리가 자주 가는 고0식당이나 전x집 그리고 김치찌개를 주로 하는 000식당은 항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영업직원들과 같이 가는 날은 사전에 한 명이 메뉴며 식당이며 미리 다 결정해서 예약하므로 나는 선택보다는 그냥 대세에 따라 순응하여 메뉴선택의 고민은 할 필요가 없다.
오늘도 사무실에서 나와 왼쪽으로 오십 미터쯤 가서 작은 골목길을 돌아서면 고0식당 이 있고 그 앞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기다릴 것인가 그냥 지나칠 것인가를 잠시 갈등하다가 무심히 지나기를 선택하고 조금 더 가면 전x집 앞에서 기웃거리다가 여직원의 눈치를 한번 보고 순간적으로 또 기다릴 것인가 지나칠 것인가를 잠시 고민하다가 다음 골목의 000식당으로 진출한다, 여기서 결정하지 않으면 다시 왔던 길을 돌아서 회사 건물 뒤편의 단가가 조금 비싼 식당으로 가야 하므로 이곳까지 오면 결정을 한다.
오늘도 점심 한 끼를 위해 몇 번의 선택을, 몇 번의 결정을 했을까???
90년대 후반에 일요일 저녁 우리를 TV 앞으로 불러 모으던 유명했던 프로그램이 있었고 그중의 한 코너가 군에서 막 제대한 이모 개그맨을 스타 반열에 올려놓은 프로그램이었다. 내용은 특정한 설정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다가, 주인공이 어떤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그래! 결심했어!"라는 대사와 함께 선택한 루트의 전개를 하나씩 확인하게 된다.
음악도 Boney M의 Felicldad를 남궁연이 리샘플링하고 이것을 싸이가 재해석해 인생극장 A 버전과 인생극장 B 버전으로 리메이크하여 선택 시 긴장을 고조시켰다. 선택은 A는 보통 이익은 볼 수 없지만, 도덕적인 선택과 B는 이익이 따르는 부도덕한 선택으로 나누어 두 개의 선택에 대한 결말을 보여 준다. 보통은 권선징악적 내용으로 도덕적인 선택을 하면 나중에 그게 복으로 돌아오고, 부도덕한 선택을 한 것은 일이 꼬여 망하는 스토리가 많다. 물론 도덕적인 선택을 한다고 다 잘 풀리는 건 아니고 '다 말아 먹었지만 사랑을 확인한 우리는 마음만은 부자' 같은 엔딩이나, 결과적으로 그냥 소시민적으로 살게 되면서 그때의 선택을 아쉬워하는 엔딩이 나는가 하면, 뭘 선택하건 시궁창인 엔딩도 종종 있었다. 어찌보면 단순한 컨셉의 단순한 전개지만 그 순간의 선택이 결국 도덕적 선택을 해야 복을 받는다는 전형적인 스토리지만 국민정서에 부합해서 큰 인기를 모았던 프로그램이다. <나무위키 인용>
내가 집사람을 처음 만난 곳은 직장 선배의 주선으로 서교동의 제과점이었고 첫 데이트 약속을 한 곳은 무교동의 한 다방에서 만나기로 했다.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는 동작구 대방동에 있었고 전철 1호선이 있었지만, 역까지 걸어가기는 가깝지 않아 회사 정문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약속장소로 갔다. 하지만 러시아워라 길은 차량으로 엉키고 엉켜 버스는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해 약속 시각에서 거의 한 시간 지나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지금은 버스 전용차선과 버스정류장마다 도착시각이 표시되어 시간 예측도 가능하고 핸드폰으로 카톡이나 문자로 상황설명이 가능하여 약속 시각에 대한 부담이 없지만, 그때는 IT의 혜택을 받지 못해 약속장소에서 올 때까지 기다리다 지치면 못 오는구나 하고 쓸쓸한 맘으로 입구의 메모판에 쪽지 하나 적어놓고 다른 곳을 이동하거나 바람맞았구나 하고 돌아가는 것이 보통의 일상이었다.
70년대에 유행했던 펄시스터즈의 ‘커피한잔’이 생각난다.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그대 오기를 기다려 봐도
웬일인지 오지를 않네! 내 속을 태우는구려
8분이 지나고 9분이 오네 1분만 지나면 나는 가요
난 정말 그대를 사랑해 내 속을 태우는구려
아~ 그대여 왜~ 안 오시나
아 사람아 오~ 오~ 기다려요’
10분만 기다리면 간다는데 첫 데이트를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려준 집사람이 고맙고 덕분에 결혼 후 40여 년을 큰 사고 없이 살 수 있었던 선택에 대해 항시 감사하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