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바벨 위에 날리는 하얀 탄마가루
인생이 그렇다.
에이뿔 한우 마냥 사르르 녹으면 좋겠는데
오래 삶긴 닭가슴살 마냥 팍팍할 때가 있다.
아무에도 드러내지 않았지만
처절하고 은밀하게 욕망했던
그러나 살아보지 못한 반짝이는 버전이
나에게도 있다.
이 나이쯤 되면 나도 알게 된다.
그건 어쩌면 내게 맞지 않은 옷 같은 것이 아닐까.
그래도 하루에도 몇 번씩 들춰보곤 한다.
아랫목에 몰래 넣어둔 따스한 군고구마 같은 그 인생을 살았더라면
아마 운동 같은 건 아예 내 인생에 없었겠지.
몸으로 무엇인가를 해낸다는 게
정말 대단히 낯선 일이었다.
특히 그 위협적인 모습의 무거운 쇠붙이들을 보는 건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렇겠지만
그다지 끌리는 일은 더더욱 아니다.
거대한 스미스머신, 목적을 알 수 없는 기구들은
낮선 자들에게는 위압적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육중한 위용을 자랑하는 바벨을 잡을 때는
내 안의 두려움을 자극하는
어떤 감정이 느껴진다.
거친 수많은 홈이 빼곡하게 새겨진
쇠의 맵고 거친 감촉이 까끌대며 손바닥에 안겨올때 그 느낌.
지금도 친절함과 거리가 멀다.
그래서 나는 아마 이렇게 단단하게 살아 견디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두 손바닥의 굳은살쯤이야
정강이의 흉터쯤이야
그대들이 모두 부대끼며 겪는
살아가는 일에 비교할바가 아니다.
과장을 조금만 보태자면 부드러운 솜사탕일지도 모른다.
거침없이 누군가의 보드라운 손을 잡을 때도
내 못 박힌 거칠한 손바닥이 나의 명함이 된다.
짧은 반바지쯤이야 아무렇지도 않을 수밖에 없는 것이
그 시커멓게 변색되어 정강이를 타고 오르는 흉터들은
어느새 나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시간들이 남겨놓은 것이다.
나는 매일같이 잡는 차가운 바벨만큼이나
꽤나
단단하고
묵직한 무언가가 되어가고 있으리라.
오늘도
바벨위에 내려 앉은 새하얀 탄마가루는
아이손처럼 보드랍던 내 손바닥의 희미헸던 손금마저
더 짙고 거칠게
아로새겨 넣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