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에서 오늘도 삽니다

by 맹효심

요즘 컨디션이 좋지 않다. 입술 근처에 포진이 올라오고, 몸도 마음도 바닥을 치는 느낌이다. 그런 상태에서 꾸게 된 꿈은 더 이상했다. 꿈속에서 나는 계속 소금을 먹었다. 한 번도 아니고, 네 번이나. 그리고 어느 순간엔 몸에 소금을 뿌리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꿈에서 깨어났을 때 마음이 괜히 싱숭생숭했다.


찝찝한 기분을 안고 출근을 했는데, 오늘따라 일도 너무 많았다. 정신없이 일만 하다 보니 기운이 쭉 빠져버렸다. 그러다 상사가 크리스마스 분위기 나는 선물 주머니를 건네주었다.


인턴들 이름이 빨간 글씨로 적혀 있었고, 내 이름도 그중에 있었다. 나는 순간 놀랐다. 한국에서는 이름을 빨간색으로 쓰는 건 보통 죽은 사람한테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조심스럽게 상사에게 물어보니, 상사는 미국인이라 그런 문화가 있는지 전혀 몰랐다고 했다. 나는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라고 새삼 느꼈다. 같은 행동도 나라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나는 샌디에고에서 다양한 문화를 배우며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을 배우고 있다.


일이 끝날 때쯤, 나는 너무 지쳐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은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집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몸은 이미 회사에서 10분 거리의 바다로 걸어가고 있었다. 힘들 때 바다를 보면 왜 그렇게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다.


12월인데도 지는 해는 따뜻했다. 마치 “오늘도 고생했어” 하고 말해주는 것처럼, 햇빛이 부드럽게 등을 감싸 안았다. 바닷가에 앉아 있는 동안 내 뒤로는 런닝하는 사람들,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들, 저마다의 속도로 하루를 정리하는 사람들이 지나갔다.


나는 20분 동안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았다.

꿈에서 소금을 먹던 찝찝함도, 빨간 글씨 이름을 보고 놀랐던 마음도, 하루 종일 쌓였던 피로도, 바다 앞에서는 조금씩 풀려내려 갔다.


가끔은 그냥 바다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바다에서 일어설 때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정말 드라마 속 장면처럼 살고 있구나.”


일 끝나고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를 보러 걸어올 수 있는 도시, 따뜻한 햇빛이 나를 감싸주는 12월의 샌디에이고, 바람이 부드럽게 스치고, 노을이 천천히 스며드는 이 풍경 속에 지친 하루의 나를 내려놓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을 만큼 꿈만 같았다.


이렇게 걷고, 이렇게 바라보고, 이렇게 숨 쉬는 순간이

내 삶에 찾아온 작은 기적 같아서 나는 오늘도, 이곳에서의 하루를 천천히 마음에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