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사진사가 된 사연
나는 아침에는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축구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저녁이면 사진을 찍으러 돌아다녔다. 그때는 철이 없어서 그런지, 손전지 하나를 들고 캄캄한 밤에도 사진을 찍어주려 다녔었다. 어떤 때는 군견들이 밤 산책을 하러 나와 돌아다니다가 마주쳐 나를 물 뻔했었다. 북한의 개들은 목줄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사진기를 꼭 붙들고 지나가곤 하였다. 나의 사진 기술은 점점 발전하여 키 작은 사람도 거인으로 만들어주었고 그들이 원하는 사진으로 맞춰 찍어주었다. 내가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 대부분은 군인들이었다. 그들은 밤마다 보초를 서고 몇 명의 군인들과 국경을 지킨다. 남한의 군 복무 기간은 현재 1년 반 정도이지만, 북한은 여전히 10년이다. 북한의 군인들에게 연애, 핸드폰 사용 등은 금지되어 있고 TV도 전기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보기 힘들다. 복무 중 그들에게 유일한 낙은 사진을 찍어 추억으로 남기는 것이 전부였다. 앞에서 말했듯 우리 집에서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던 군인들이 근무를 서면서는 나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연락을 했다. 그러면 나는 재빨리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러 가곤 했었다. 한국에서 음식 배달 시간이 중요하듯 북한에서 사진을 찍는 데도 시간이 중요하다. 군인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기에 빨리 찍기를 원한다. 나는 신속하게 그들에게 맞추어 주곤 하였다.
북한의 경우에는 한 달에 명절이 3번 정도 있다. 토요일에도 일하는 대신 명절을 많이 두어 최소한의 휴식을 취하게 해주는 것이다. 북한 사람들은 명절 때 사진을 많이 찍는다. 그럴 때면 나는 돈을 많이 벌곤 했었다. 처음에는 사진을 찍는 것이 취미였다. 대가 없이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러던 겨울의 어느 날, 4명의 군인이 라면을 찾으며 편의점에 왔다. 북한에는 컵라면이 없는 봉지라면뿐인데, 겨울이면 군인들은 뜨끈한 음식을 원해 라면을 끓여 먹고 부대로 돌아가곤 했다. (나는 북한 량강도 혜산시에 살았는데, 혜산시의 12월 평균 기온은 최저 영하 22도이다.)
편의점에서는 조리를 할 수가 없어 집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온 군인들은 내가 찍은 친구들의 사진을 보면서 라면이 다 익기를 기다렸다. 라면을 끓여 가져다주자 한 군인이 나에게 돈을 주겠으니 자신들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처음으로 돈을 받고 사진을 찍어주게 된 것이다.
사진을 찍어주면서 사진을 좀 더 멋지게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포토샵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북한에서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집에 불을 켜는 것도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 집은 주변에 있는 공장에서 돈을 내고 전기를 사용할 수가 있었다. (북한 가정이 공장의 전기를 사용하는 것도 불법이다. 북한에서는 전기를 구경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전기를 사용하는 것도 남들 모르게 집의 창문들을 가리고 전기를 사용하곤 했었다.) 포토샵은 대학교 교수님한테서 배웠다. 북한에는 사교육이 금지라 강사 등이 따로 없고, 교수나 교사가 과외를 해주는 일도 불법이다. 그래서 배우는 데도 조심스러워야 했다. 포토샵을 배운 다음 나는 사진을 찍는데도 전적으로 더 노력하였다.
북한의 경우에는 남한과 달리 고등학생이 아르바이트할 수도 없는 시스템이다. 또한, 어른들도 직장에 나가 일을 해도 돈을 주지 않는다. 옛날에는 일하면 배급을 통해 먹고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의 상황은 일해도 대가를 주지 않는 시스템으로 변화되어 있다. 어른들이 일해도 돈을 안 주는 상황에 고등학생이 돈을 벌 방법이 없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고 생각하지만 먹고 살기 힘든 상황의 사람들에게는 공부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직장의 경우에는 일을 안 나가면 돈을 내야 하는 상황이고 학교도 공부하는 곳이 아닌 돈을 내고 다녀야 하는 곳이 되어 버렸다. 사회주의 체제이므로 무상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학교에 다니다 보면 군인들을 위한 모금, 컴퓨터실과 같은 시설 조성을 위한 모금 등이 있다. 또한, 교육의 명목으로 감자 캐기, 들쭉 따기, 철길 정비, 자갈 줍기, 모래 나르기 등의 노동에 수시로 참여해야 한다. 참여하지 않으면 불참비를 내야 한다. 적정 수준의 노동은 현장체험학습과 같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그 횟수가 지나치게 많아 북한의 학생들이 공부에만 집중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이게 북한 학생들의 현실이고, 다들 가능하면 일찍 돈을 벌어 안정된 생활을 하기를 바란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취미로 시작했던 사진이 운이 좋게도 보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