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ilbreak
“Intelligence is the ability to adapt to change." (Stephen Hawking)
마치 SF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언젠가부터 해외 출장을 다니면서 세상이 빠르게 변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특히 렌터카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그 변화를 체감하곤 한다.
오래전 Hertz에서 차를 빌릴 땐, 프런트 Desk에 줄을 서야 했다.
내 차례가 되면 원하는 차량 타입과 옵션을 이야기하고,
주차장에 직원과 함께 나가서 차량 확인 후 키를 인도받았다.
Local 지도를 구비해서 서비스로 나눠주기도 했다.
원래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게 바뀌었다.
지정된 주차장으로 가서 맘에 드는 차량을 골라 타고 그냥 나가면 된다.
반납할 때도 지정된 장소에 주차하고 그냥 가면 된다.
누군가 와서 차를 점검하고 정산해 주길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서비스 어느 단계에서도 사람을 마주칠 필요가 없다.
2018년 실리콘밸리에 출장을 갔던 적이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렌터카 반납을 위해 Hertz 표지판을 보면서 찾아갔는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늘 반납하던 곳이 아니었다.
Hertz Return으로 갔어야 했는데 실수로 Hertz Service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거기서 놀라운 광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축구장보다도 큰 공간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고 일하고 있었다.
차를 운전해서 이리저리 이동하는 사람들.
차량을 정비하며 뛰어다니는 사람들.
세차장으로 들락날락 거리며 차를 씻고 청소를 하는 사람들.
서비스 앞단에 자취를 감추었던 사람들이 모두 여기 모여 있었다.
일개미들 같았다. 충격적이었다.
마치 인류가 로봇에게 지배당한 2057년 배경의 SF영화 속으로 들어간 것만 같았다.
그 때 함께 출장을 나갔던 사람들과 함께 Applebee’s라는 레스토랑에 갔었다.
테이블마다 놓여있는 태블릿으로 메뉴를 확인하고 주문을 하라고 했다.
태블릿으로 주문도 하고, 계산도 하고, 팁도 냈다.
팁 디폴트가 20%로 맞춰져 있어서 태블릿 가격을 팁으로 뽑으려 하나 궁금했다.
그 자리에서 카드를 긁으니 영수증은 이메일로 보내준다고 했다.
미국에서 음식점을 가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테이블 서버를 부르기 위해 눈을 마주치려고 얼마나 애를 써야 하는지...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몇 년이 지난 지금은 한국에서도 많은 음식점들이 키오스크로 주문을 받는다.
테이블에서는 태블릿으로 직접 주문을 받기도 한다.
그렇게 주문한 음식들은 로봇이 테이블로 서빙을 해주는 곳도 많이 생겼다.
로봇이 가져온 음식은 고객이 직접 내려야 하지만
고객들은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신기함이 불편함을 일시적으로 잠재운 것이다.
2019년 씨애틀의 아마존 본사를 방문하여 이틀간 워크샵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본사 1층에 있는 아마존Go 스토어에도 여러번 방문하여 테스트하고
담당자와도 많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물었다.
"우리가 여기서 무슨 데이터들을 수집할 것 같니?"
"어떤 사람이 어느 쉘브 에서 얼마나 머물렀는지, 무엇을 집었는지 그런 데이터?"
"물론 그건 기본으로 수집하지."
"그럼 또 추가로 무슨 데이터를 수집하는데?"
"말 그대로 모든 것. 가령, 어떤 사람이 개를 데리고 스토어에 들어오면
몇 번째 입구로 들어오는지, 그 개의 종류가 리트리버인지 카카스페뇰인지..."
"오... 그걸 수집해서 어디에 쓰는데?"
"그건 모르지. 일단 Data Lake에 잘 Tagging에서 쏟아 부어 놓으면
나중에 누군가가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 때 찾아보고 활용할 수 있게 하는거야."
"대단하다."
"그리고 이 수 많은 센서들 뒤에는 사람들이 다 모니터링을 하고 있어.
아직은 기술이 완벽하지 않아서 그 수많은 사람들은 백스테이지에서 일을 하는거지."
"무인이 아니네 그럼."
"서비스 앞단에 사람이 없을 뿐 오히려 사람이 더 많이 필요할 걸..."
그랬다. 사람들은 기술 뒤에 숨어 있을 뿐이었다.
이 모든 것이 과거 몇 년 간 벌어진 일이다.
기술 발전에 따라 서비스의 구조가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사람이 앞단에서 서비스를 하고 기계나 시스템을 보조적으로 활용했다면
이제는 기술이 앞에서 리딩하고 사람이 뒤에서 지원하는 하극상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기계는 점점 더 싸지고, 사람은 점점 더 귀해진다.
멀지 않은 미래에는 뒤에서 지원하는 사람조차 기계로 대체될지 모른다.
그때는, 사람이 직접 대면 서비스를 해주는 것이
VVIP들만을 위한 초럭셔리 서비스로 격상될지도 모른다.
일 자체의 개념도 바뀌고 있다.
예전에 일이란 사람이 하는 것이었다.
경험이 많고 그 일에 필요한 툴을 잘 다루는 것이 일 잘하는 사람의 조건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일을 시스템이 한다. 로봇이 한다.
사람은 시스템이나 로봇이 일을 잘하도록 시키고 지원한다.
주객이 전도되었다.
작년부터 온 세상이 ChatGPT의 열풍이다.
지난 5년간 대세 트렌드였던 AI키워드에 ‘생성형’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며 날개를 달았다.
과거 AI는 일부 자연어를 이해하거나 이미지들을 구분하는 수준의 기술이었다.
사람이 특정 업무를 수행하는데 이런 AI의 기능을 활용해서 혁신하려고 했다.
주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생성형이 되면서 바뀌었다.
다양한 업무를 AI가 직접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KAIST 김대식교수는 GPT가 ‘지식노동의 혁신’이라고 했다.
물리적인 노동은 아직 한계가 있고 로봇과 같은 추가 매체가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컴퓨터 앞에서 수행하는 대부분의 지식노동은 AI가 더 잘하게 될 거라는 것이다.
AI는 지치지 않는다. 잠도 자지 않는다. 실력이 는다고 임금을 올려줄 필요도 없다.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실행한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만든다.
이제 사람은 AI에게 잘 시키고 잘 고르는 것이 실력이 되었다.
잘 시키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사람은 경험하지 못한 것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남보다 먼저 다양한 사용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많이 경험한 사람이 실력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자신이 직접 문서를 만들고, 작곡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 전문가가 되면
이젠 컴퓨터와 경쟁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려면
컴퓨터에게 최대한 구체적으로 시키고 최선의 결과물을 고르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컴퓨터와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옛날 한글을 배우지 못했던 사람들은 글 읽을 줄 아는 사람을 기다렸다가
자기에게 온 편지를 꺼내 읽어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앞으로는 컴퓨터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컴퓨터에 일 시킬 줄 아는 사람을 기다렸다가
자기가 원하는 걸 대신시켜달라고 부탁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방법을 모르면 사는 게 불편해지는 시간이 곧 다가온다.
기술의 궁극적 가치는 편리함이다.
기술발전은 불가능하던 많은 것들을 가능하게 만들어 사람을 편리하게 해 준다.
하지만 그 편리함을 충분히 누리려면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남보다 먼저 경험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하극상이 뉴 노멀이 되는 시대가 온다.
불편을 감수하는 자만이 이 시대의 희생양이 되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