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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mmy Park Mar 14. 2024

002 기회는 악마의 얼굴을 하고 찾아온다

Jailbreak

"Never let a serious crisis go to waste. It's an opportunity to do things you think you could not do before." (Rahm Emanuel)


내 삶이 송두리 채 바뀐 것은 그날 밤이었다. 

 
2016년 겨울이 다 끝나가던 날 어느 늦은 밤, 발을 크게 다쳤다.
높은 곳에서 추락하여 오른쪽 발 뒤꿈치 뼈가 완전히 으스러져 버린 것인데, 개방형 복합골절이라고 했다. 살을 뚫고 나온 하얀 뼈 위로 선홍색 피가 철철 흘렀다. 난생처음 앰뷸런스를 타고 응급실로 실려갔다. 구급대원들은 기적이라고 했다. 머리로 떨어졌으면 죽었을 수도 있었다며 오히려 다행이라고 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급히 뛰어온 젊은 인턴 의사 선생님은 내 발 상태를 보더니 태연하게 말했다.
“이런 개방형 골절의 경우 감염의 위험이 높아서 발을 절단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 까지가 영원 같았다. 온 세상이 무너진 것만 같았다. 다행히도 감염은 아니었다. 조금 후, 발 수술만 20년 넘게 전문으로 해오셨다는 의사 선생님이 오셨다. 마음이 놓였다. 그분 조차도 이렇게 심하게 골절이 난 경우는 처음 본다고 하셨다. 100% 완치를 장담할 수 없지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셨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도밖에 없었다. 며칠 후 수술실에 들어가 전신마취로 수술을 받았다. 눈을 떠보니 수술은 잘 끝났다고 하셨다. 다행이었다. 그 후 열흘 정도 입원하여 경과를 지켜보게 되었다.
 
발을 아예 움직일 수가 없어서 간병인이 필요했다. 부모님 댁이 병원에서 그리 멀지 않아서 아버지가 흔쾌히 직접 간호를 해주겠다고 하셨다. 그다음 날부터 매일 아침 7시 반이면 어김없이 병실에 도착하시는 아버지. 매일 택시를 타고 오셨다. 그 시간에 택시를 타면 거의 오차 없이 4,700원이 나오는데 아버지는 늘 미리 현금 6,000원을 준비했다가 기사님께 드리신다고 하셨다. 그러면 대부분의 기사님들이 물어보신다고 했다.

"어? 왜 이렇게 많이 주세요?"
"그냥 이른 아침이니까요. 덕분에 편하게 왔습니다. 오늘 아주 좋은 하루 되십시오."
"아이고, 감사합니다. 선생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ㅎㅎ"
누워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내게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1,300원이 비록 얼마 안 되는 금액인데 그걸 드리면 기사님들이 되게 좋아하신다. 표정도 밝아지시고. 하루 종일 기분 좋게 일하신다고 하더라. 아빠는 그게 참 좋더라.”
“아침마다 좋은 일 하시네요 아버지 ㅎㅎㅎ”
“그러게 말이다. 사실, 아빠도 젊었을 때는 말이야. 평생을 바친 은행에서 은행장까지 해보고 그만두고 싶었다. 그런데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인생에서 남들이 말하는 큰 성공을 못한 것이 아쉽기도 했다. 그렇게 된 게 내 탓이 아니라 다른 외부 조건이 안 좋은 탓 인가 싶어 억울하다고 생각이 든 적도 있었고.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그게 아무것도 아니더라. 은행장을 했으면 좋았을 수도 있지만, 못 했더라도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그냥 괜찮더라. 은퇴한 뒤에도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살고 있고. 단돈 1,300원이지만 기사님들께 나누어 드리며 행복감을 느끼는 나를 보면서, 그래도 이만하면 잘 살았구나 느끼게 된다. 그러면 된 거 아니냐?”

아버지에게도 이런 면이 있으셨구나. 아버지도 소년, 청년의 시절을 지나 지금의 연세가 되셨을 텐데 아버지와 이런 속 깊은 대화는 처음이었다. 병실에 있는 동안 하루 종일을 아버지와 함께 보냈다. 아침에 깨서 밤에 잠들 때까지, 세수하고 밥 먹고 화장실 가고 하는 모든 소소한 일상을 아버지가 챙겨 주셨다. 마치 내가 다시 갓 난 아이가 된 것 같았다. 괜히 죄송하기도 하고 겸연쩍기도 해서 말씀드렸다.

“괜히 저 때문에 아버지가 고생이시네요. 다 큰 아들을 신경 쓰게 해 드려서 죄송해요 아버지.”
“아니야. 너희들 어렸을 때 챙겨주고 할 때가 너무 좋았어. 어느새 이제 다 컸는가 싶었는데, 이 나이에 다시 한번 아빠로서 챙겨줄 수 있는 기회를 줘서 오히려 내가 고맙다.
 
눈물이 났다. 내내 존경해 왔지만 돌아보니 난 우리 아버지를 잘 몰랐던 것 같았다. 이번 일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나는 아버지를 영영 잘 모른 채 살다가 보내 드려야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찔했다. 이제라도 이렇게 아버지를 만나게 된 게 너무 큰 축복이었다.
 
퇴원 후에도 출근은 하지 못했다. 바닥에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척추 뼈에 이상이 생겨 회복이 필요하다고 했다. 가급적 중력이 가해지지 않도록 누운 상태에서 척추가 다시 자리를 잡도록 하고 10주 정도 상황을 보자고 했다. 수술 후 3개월 동안 휴직을 하고 방의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때까지 한 번도 수술이나 입원을 해 본 적이 없던 나는 난생처음 그런 무료함에 적응을 해야만 했다.

처음에는 불안했다. 빠르게 흐르는 세상에서 나만 멈춰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든 빨리 회복해서 낭비했던 시간을 따라잡아야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다리는 것 밖에 없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멈춰진 시간이 필요했다.

온전히 3개월을 뒤쳐졌다고 생각하면 남들 두 배의 속도로 뛰어야 했지만, 다른 길로 갈아탔다고 생각하니 속도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어차피 인생에는 공동의 결승점도 없고 따라 뛰어야 하는 트랙도 없다. 지금 내가 서있는 곳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며 빛을 찾아가면 되는 거였다. 어느 순간, 조급함을 걷어내니 마음이 좀 편해졌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느리게 살고 있는 40대 남자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덕분에 책도 많이 읽고 잠도 많이 잤다. 거의 침대에 누워만 지내다 보니, 배드민턴 치는 엄마와 아들을 지켜보는 것, 아이들과 밸런스게임을 하는 것, 창가에서 비에 젖은 거리를 내려다보는 것. 그런 소소한 것들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감사에 필요한 건 풍요가 아니라 여유였다. 회사에만 있었을 때는 미처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산다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다치지 않았더라면 가지 않았을 그 길에서 우연히 소중한 것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5월 초 평일 낮에 날씨가 너무 좋길래 처음으로 바람을 쐬러 나갔다. 다쳤을 때가 겨울의 끝자락이었는데 어느새 봄이 와있었다. 큰 아이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몸을 맡기고 아파트 단지 커뮤니티 센터 앞으로 나갔다. 오랜만에 쐬는 바깥공기가 너무 상쾌했다. 아내가 커뮤니티센터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잔과 베이글 샌드위치를 사 왔다. 테이블 위에 두고 네 식구가 조잘조잘 떠들었다. 아이들은 뭐가 그리 좋은 지 깔깔거리며 사방을 뛰어다녔다. 평일 오후의 햇살이 이런 거였구나. 우리 아파트에 이렇게 멋진 인공폭포가 있었네. 아이들도 그새 많이 컸구나. 그냥 그 순간에 들었던 복합적인 느낌들이 너무 소중했다.
 
그날 밤, 문득 그 느낌이 떠올라 아내에게 말했다.
"오늘 너무 즐거웠어. 고마워..."
그 말을 듣자마자 아내가 나를 한참 쳐다보더니 갑자기 눈물을 펑펑 쏟는다.
"왜 그래 정말. 그렇게 활동적이던 사람이... 그까짓 게 뭐라고... 겨우 아파트 단지 돌아본 거 가지고... 흑흑..."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방금 내가 한 말이 너무 웃겼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둘이 함께 웃기 시작했다. 한참을 배꼽이 빠져라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이상하게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함께 엉엉 울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인생에서 이런 경험은 너무 소중하다. 작은 일상에서도 가슴을 뛰게 하고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준다.
하지만 이런 경험을 해보자고 내가 일부러 발을 부러트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어쨌든 그 일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미 벌어졌고,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일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발견하는 일이다. 결국 그런 경험들이 우리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
 
행복은 매우 감각적인 느낌이다.
후회와 자책이던 날들이 어느덧 보물 같은 하루하루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응급실에서 발을 절단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절망적이었다. 인생 최대의 위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는 알지 못했다. 평생을 잘 모르고 지냈던 아버지를 그렇게 다시 만날 줄 몰랐다. 가족들과 일상에서의 소소한 행복을 그렇게 감각적으로 느끼게 될 줄 몰랐다. 그렇게 슬그머니 절호의 기회가 온 줄 몰랐다.

빌런이 강해야 영화가 재미있는 법이다.
기회는 악마의 얼굴을 하고 찾아온다.


(Happy Family, powered by DALL.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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