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ilbreak
"The first happiness of a child is to know that he is loved" (Don Bosco)
본의 아니게, 그날 정말 즐겁게 놀았다.
아이들이 6살, 4살이었을 때였다.
아기 때부터 이해를 하든 못하든 형제 간의 우애가 중요하다 계속 이야기했더니
두 녀석은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
뭐가 그리 좋은지 늘 둘이서 조잘거리고 뭘 하고 놀아도 늘 함께 했다.
한 번은 두루마리 휴지를 풀면서 노는 재미가 들려서 둘이 계속 휴지를 망쳐놓길래
한번 따끔하게 말해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퇴근하던 내게 딱 걸렸다.
집에 들어서는데 마루에 뜯긴 휴지 조각들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었다.
가뜩이나 회사 일로 머리가 아팠는데 순간 짜증이 밀려왔다.
나도 모르게 두 녀석을 엄하게 불러 세웠다.
그런데 바짝 긴장해서 벽에 붙어 선 아이들을 보는 순간
'아... 이건 아닌데'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난 마치 일부러 장난을 친 것처럼 시치미를 뚝 떼며 말했다.
"너네 말이야. 그 재밌는 걸 너희들끼리만 놀 거야? 아빠랑 함께 놀아야지. ㅎㅎㅎ
저기 마루 끝으로 가봐. 아빠가 굴린다. 잘 봐..."
"오... 아빠 나도 한번 해볼게요. 이거 보세요.ㅎㅎㅎ"
혼 날 줄 알고 바짝 긴장했던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깔깔거렸다.
볼링처럼 바닥에서 두루마리 휴지를 폼 내며 굴려보기도 하고
휴지를 벽에 대고 밑으로 떨어뜨려 누가 더 멀리 가나 시합도 해보고...
뭐든 해도 된다고 마음을 놓고 나니 창의성이 샘솟았다.
한참을 그렇게 놀다가 내가 다시 말했다.
"자, 이번엔 방에서 너희 둘이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해서
휴지 가지고 더 재밌게 놀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고 아빠를 놀라게 해 주는 거다. 알았지?
자... 3 2 1 go!"
둘이 휴지를 들고 신나서 방에 들어가더니 한참을 웃고 떠들다 나왔는데
태성이 손에 휴지를 칭칭 감고 나와서는
손 다쳐서 붕대 감은 거라며 둘이서 까르르 웃어댄다.
아이고 참나...
"에게... 겨우 그거야? ㅎㅎ 아빠가 한번 해볼게.
태성아 이리 와봐. 붕대를 만들려면 온몸 정도는 감아줘야지. ㅋㅋ"
머리도 칭칭 감고, 온몸도 칭칭 감고,
코도 코피가 났을 때처럼 휴지로 틀어막았다.
거의 살아 있는 미라 수준이었다. 완성.
"와 너무 멋진데. 사진도 찍어 줘야지. 태성이 이렇게 서봐... ㅎㅎㅎ"
이쯤 되니,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내가 제일 즐기고 있는 듯했다.
한참을 그렇게 놀다가,
갈기갈기 찢어진 휴지들을 보면서 태인이가 물었다.
"아빠 근데 이 휴지들은 이제 어떻게 해요?"
"글쎄... 아주 좋은 질문인데. 이제 이걸로 뭘 할 수 있을까?
우리 한번 이야기해볼까?"
휴지와 종이를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나무가 필요한지...
한 그루의 나무가 성장하여 자라는데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나무가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조절해 주어 지구의 공기가 얼마나 깨끗해지는지...
나무가 도심에서는 그늘을 만들어 주어 온도조절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산에서는 뿌리가 얽히고설켜 산사태 등 자연재해를 어떻게 막아 줄 수 있는지...
결국, 그날 삼부자는 찢긴 휴지조각들을 앞에 쌓아두고
휴지와 나무, 펄프, 그리고 나무가 주는 깨끗한 공기와 환경에 대해
예정에도 없던 '진지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셋이 함께 그 휴지조각들을 모두 휴지통에 쏟아부으며
앞으로는 휴지를 낭비하면 안 되겠다는 '깨달음' 같은 것을 얻게 되었다.
태성이 왈...
"형아, 앞으로 물 낭비하면 안 되겠지? 그리고 또 휴지도 낭비하면 안 돼.
왜냐면 우리가 깨끗한 공기를 숨 쉴 수 없고 머리도 엄청 아파져. 그치?"
의도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배우게 되었다.
깨달음은 누가 말해 준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깨우치기 때문에 깨달음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그 깨우침을 애써 알려주고 싶어 한다.
부모라는 이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