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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mmy Park Mar 19. 2024

009 옷차림에 신경 써라

Jailbreak

"Do what you can, with what you have, where you are." (Theodore Roosevelt)


아주 오래전 시골 기차역이었다. 
 
혼자 왜 거기까지 갔었는지 이젠 이유조차 희미 해졌다.
느지막한 오후였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나는 충동적으로 강릉행 기차표를 끊었다.
시간이 조금 남아 대합실 의자에 앉았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옆에 버려진 신문지를 집어 들었다.
그런데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헤드라인이 아니라 누군가가 볼펜으로 끄적여 놓은 낙서였다.

“사랑하는 그녀가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녀에게 사랑받을만한 사람이 되는 것뿐”

그 상황이 너무 신기했다.
하늘에서 당시의 내게 내려 준 메시지 같았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그 말이 머리에서 잊히지 않았다.
 
세상 어느 누구도 최선을 다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자기 인생을 대충 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하는 것마다 뜻대로 잘 풀리지 않는다.
아무리 최선을 다하고 싶어도 아예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기도 한다.
반복적으로 좌절을 강요당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자포자기하게 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은 술술 풀려가는 것 같은데 세상이 왜 나에게만 이렇게 가혹할까?
점점 어깨가 움츠려 든다.
뭘 해도 나는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쯤 되면 힘내라는 위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
힘내는 게 가장 힘들다.
 
세상은 원래 마음대로 되지 않는 곳이다. 그게 정상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나름의 때가 있다.
화창한 봄날에 노랗게 핀 개나리를 보면서 코스모스는 초조해하지 않는다.
가을을 준비하기 때문이다. 
당신도 조급할 필요 없다. 당신의 때를 준비하면 된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지금 당신이 있는 곳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걸 찾아야 한다. 
그녀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당신이 어쩔 수 없지만
그녀에게 사랑받을만한 사람이 되는 것은 당신이 해낼 수 있다.
 
내가 만약 야구 선수라면,

타율을 3할로 올리겠다고 목표를 세우는 대신에
매 타석마다 공을 끝까지 보고 1루까지는 죽을힘을 다해 달릴 것이다.

내가 만약 피아니스트라면,

한 곡을 완벽하게 1,000번씩 치겠다고 결심하는 대신
매일 아침 눈 뜨면 그 곡을 치면서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내가 만약 다이어트가 필요하다면,

책상 앞에 10kg 감량이라고 써 붙이는 대신에
오늘 퇴근길부터 당장 한 정거장 미리 내려 집까지 걸을 것이다.

문화심리학자로 유명한 김정운 교수는 이를 '조작적 정의'라고 불렀다.
1루까지 죽을 힘을 다해서 달리고, 매일 아침을 그 곡을 치면서 시작하고,
퇴근길에 한 정거장 미리 내려 걷는 것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구체적인 행동이다.
했는지 안 했는지 즉시 판별이 가능한 손에 잡히는 목표인 것이다.
이러한 조작적 정의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실제로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반복할 수 있다.
그래서 변화할 수 있다.
 

다짐은 필요 없다. 각오도 필요 없다.
가능한 ‘구체적인 행동’을 정해서 바로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게 뭐라도 괜찮다. 쉬워야 한다.

변화는 거기서부터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핵심은 당신이 컨트롤 가능한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어떤 TV 프로에서 들은 말인데,

자존감이 부족해서 걱정이라는 한 학생의 사연에
사회자가 “용기를 내시고 본인의 꿈에 도전해 보세요”라고 하지 않고
대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매일 아침 집 나서기 전, 지금보다 옷차림에 더 신경을 써보세요."
 
옷차림이 달라진다고 자존감이 올라갈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뭔가 바뀐다는 것이다.
내 마음가짐이 바뀐다. 표정이 바뀌고 말투가 바뀐다. 그러면 내 주변의 모든 것이 바뀐다.
차려입고 외출한 김에 그동안 가지 않았던 곳을 가볼 수도 있다.
거기서 상상도 못 했던 사람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다 의도치 않았던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세상이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게 오히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옷차림에 조금 더 신경을 썼을 뿐인데 말이다.
 
옷차림에 신경 쓰는데 무슨 대단한 각오가 필요한가? 그냥 하면 된다.
이 얼마나 훌륭한 조언인가...
 

(Empty train station, Powered by DALL.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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