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mmy Park May 06. 2024

잘못된 칭찬은 고래도 눈치 보게 한다

Jailbreak

"If children feel safe, they take risks, ask questions, make mistakes, learn to trust, share their feelings, and grow." (Alfie Kohn)


지금도 내가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아주 어려서 말을 알아듣기 시작했을 때부터
좋은 습관들에 대해 틈틈이 이야기해 주었다.
가령, 밥을 먹을 때는 그릇에 한 톨도 남김없이 깨끗이 먹으라든지,
양말을 벗은 후에는 빨래통에 가져다 넣으라든지,
공공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종이로 닦을 때
휴지는 똘똘 말아서 부피를 작게 만들어 휴지통에 넣으라든지...
 
몇 년이 지났을까...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었을 때 아이들을 앉혀 놓고 말했다.
 
"얘들아, 아빠는 너희들이 좋은 습관들을 많이 가진 것 같아서 너무 고마워.
그런데 이제부터는 아빠가 하나하나 설명해주지는 않을 거야."
"네? 왜요?"
"왜냐하면 그런 것들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야."
"네? 좋은 습관을 갖는 건 중요하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물론 중요하지. 중요한데...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아."
"잉?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빠? ㅎㅎㅎ"
"물론 살면서 좋은 습관들은 가지는 건 중요해.
하지만 그런 것들을 어긴다고 해도 어떻게 되는 건 아니란다.
가령 양말을 빨래통에 안 넣어도 경찰 아저씨가 잡아가지는 않아.
밥그릇에 밥알을 남겨도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니고..."
"..."
"그래서 혹시 다른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을 욕할 필요는 없어. 
누구나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사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그건 너희 스스로가 선택하는 거란다."
"..."
"아빠는 이제부터 너희가 양말을 아무 곳에나 벗어 놓더라도
빨래통에 가져다 놓으라고 말하지 않고 그냥 아빠가 가져다 놓을 거야.
한번 발견하면 한번 가져다 놓을 거고 백번 발견하면 백번 가져다 놓을 거야.
불평도 하지 않을 거고 그냥 그렇게 할 거야. 왜 그런지 알아?"
"아니요. 왜요?"
"아빠는 그런 사람이 되기로 스스로 결정을 했거든.
아빠가 좋은 습관이라고 알고 있는 행동을 그냥 해버리기로.
혹시 다른 사람이 그렇게 안 해도 강요하지 않고 아빠가 할 수 있는 것들은 그냥 아빠가 해버리는 거야.
스스로 그런 사람이 되기로 결심하면 정말 그렇게 될 수 있단다."
"아..."
"그동안 우리 태인이 태성이가 정말 많이 컸어. 
어렸을 때는 너희가 잘 모르니까 반복적으로 설명해 주곤 했었는데
이제는 너희들이 커서 뭐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판단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할 수도 있는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해.
한번 생각해 봐.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이제 너희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해서 책임을 지는 거야. 할 수 있겠지?"
"아... 알겠어요. 아빠."


아이들이 훌쩍 커서 고등학생이 된 지금
내 눈으로 볼 때 여전히 이런저런 나쁜 습관들이 남아있다.

하지만 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냥 눈에 보이는 벗어 놓은 양말이 있으면 가져다 내놓고
혹시 다 먹은 빈 캔이 눈에 띄면 재활용 통에 대신 내버려 주면서  
아이들과 그저 친하게 지낼 뿐이다.

이왕이면 좋은 습관으로 모범적으로 살아가면 좋겠지만

스스로 판단해서 행동하고 책임지는 사람이 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다.

내 참을성의 문제다.


칭찬과 야단.

아이들을 기르다 보면 부모로서 계속 맞닥뜨려야 하는 행위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쩌다 부모'가 되고

사랑스러운 아가들을 너무 잘 키우고는 싶은데

좋은 부모가 되는 방법을 알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많다.

야단.
가급적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야단을 맞아야 잘 큰다는 어르신들도 있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야단을 맞아서 잘 큰 게 아니라
야단을 맞았음에도 고맙게 잘 자라준 것이다. 

특히 아이들이 큰 실수나 잘못을 했을 때 호통치는 것은 효과가 없다.
가령, 아이가 장난을 치다가 대대로 내려오는 골동품 도자기를 깼다고 해보자.
아무리 아이라도 얼마나 큰 잘못을 했는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고

부모님이 오실 때까지 이 엄청난 일을 저지른 것에 대해
충분히 스스로 마음고생을 했을 것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것은 전혀 도움도 되지 않는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해야 한다.

깨진 도자기는 괜찮다고, 오히려 어디 다친데 없는지 묻고

다음부터는 조심하라고 따뜻하게 안아준다면
아이는 감동하면서 다음부터는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할 것이다.

이미 도자기는 깨졌고 남은 것은 부모와 아이뿐이다.

도자기는 다시 붙지 않지만
이 사건을 통해 부모와 아이의 관계는 더 끈끈하게 붙을 수 있다.


반면 아이들이 사소한 잘못을 했을 때에는
오히려 분명하게 꾸짖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가령,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정류장에서 새치기를 했을 때,
또는 학교 시험에서 커닝을 했을 때 등
잘못이지만 어렸을 때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그런 상황에서는
처음 발생했을 때 단호하게 말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흐지부지 넘어가면 사소한 잘못은 괜찮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일 수 있다.
어려서부터 잘못된 도덕적 잣대를 세팅해 주는 꼴이 될 수 있다.

그 행동들이 인간으로서 왜 하면 안 되는지,
남한테 어떤 피해를 주는지를 처음부터 분명하게 전달하여
아이 때부터 좋은 습관을 갖도록 도와주는 게 좋다.

이런 경우에도 이성적으로 대화를 해야 한다.
감정적으로 화내는 것은 최악이다.

앞에서는 반성하고 뉘우치는 것 같이 행동하지만

장마철에 소나기 피하듯 잠시 피해 갈 뿐이다.


칭찬.

아이들은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들을 통해 자존감을 키운다.

'넌 몰라도 돼'라고 아이 취급을 받아온 사람이

어른스러운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는 건 모순이다.

미래의 가능성을 알아봐 주고 넌 할 수 있다고 인정받은 아이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그걸 기억하며 용기를 내게 된다.


하지만 칭찬은 잘해야 한다.

잘못된 칭찬과 인정은 오히려 자녀를 망쳐놓을 수 있다.


좋은 칭찬은 '의도'와 '과정'에 대한 칭찬.
나쁜 칭찬은 '현상'과 '결과'에 대한 칭찬.


"수학 100점 맞았어? 우리 아들은 정말 천재다 천재야."

"또 1등 했어? 정말 잘했다. 약속대로 주말에 놀이동산에 가자."

천재라고 칭찬받은 아이들은 무의식 중에 천재다워지려고 한다.
계속 그 기대에 부응을 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을 받게 되고 
힘든 것은 아예 도전 자체를 포기해 버리기도 한다.
뭐든 쉽게 성공해 보여줘야 천재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1등을 했다고 칭찬을 받아 버릇한 아이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시 1등을 하고 싶어 한다.
설사 그게 잘 못된 방법이라도...
낮은 등수로 밀려날지 모른다는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다.
잘못된 칭찬은 고래도 눈치 보게 한다.

나쁜 칭찬은

칭찬과 보상을 외적인 동기가 되게 만든다.
그런데 여기서 함정은
외적인 동기가 있을 때 단기적 효과가 더 좋아지기도 한다는 것.
그래서 결과만 보고 모든 게 잘 풀려가는 걸로 착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부모들이 여기서 간과하면 안 되는 것은
외적인 동기로 행동을 유발하는 과정에서
아이들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흥미를 느끼고 성취하는
소중한 경험의 기회가 통째로 날아가 버린다는 사실이다.

잘 못된 외적 동기가 내적 동기를 갉아먹는다.


똑똑하다고 칭찬만 하지 말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물어라.
결과적으로 잘했다고 인정만 하지 말고
중간에 뭐가 어려웠는지, 그걸 어떻게 극복했는지 물어라.
그런 독특한 생각을 해내서,
스스로 믿는 것에 두려움 없이 도전해서,
어려움이 있어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해서
자랑스럽다고 칭찬하라.

좋은 질문은
아이들을 애써 조종하려 하지 않고 스스로 성장하게 돕는다.
그리고 좋은 칭찬은
그렇게 스스로 성장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게 돕는다.


20세기의 가장 훌륭한 첼리스트로 불리는 스페인의 파블로 카잘스.

그가 97세의 나이로 타계하기 2년 전

영국의 BBC방송국과 다음과 같은 인터뷰를 가졌다.


"카잘스 선생님, 당신은 이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첼리스트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95세의 나이임에도 아직까지 하루에 여섯 시간씩 연습을 하는 이유가 뭔가요?"

"지금도 내가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영감을 주는 대답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더 발전하고 싶은 본능적인 욕구가 있다.

스스로 더 실력을 갖추거나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바람이 있다. 

95세 할아버지가 그렇듯이
5살 아이도 그렇다.


부모는 그걸 믿고 인정해 주기만 하면 된다.

가끔 상기시켜 주기만 하면 된다.
그걸로 충분히다.


(Pablo Casals, Powered by DALL.E3)



이전 03화 옷차림에 신경 써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