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ilbreak
"The thing that's always a big mistake is going after a giant market on Day 1." (Peter Thiel)
독점은 끝났다. 다시 생존경쟁이었다.
MIT MBA 당시 Duncan Simester라는 유명한 마케팅 교수님이 계셨다.
마케팅을 이론적으로만 접근하지 않고 스폰서 기업들과 실험을 통해 검증하는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하셔서 실제 쓰임세가 많은 가르침을 주시곤 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가르침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니치마켓'에 관한 것이다.
교수님 아내분이 학교 근처에서 델리를 하고 계셨는데
위치가 Charlse강 바로 옆이고 주택가가 아니라서 손님이 많지는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주변에 다른 가게가 없으니 매출은 꾸준히 나왔다고.
그런데 하루는 퇴근하는 교수님께 아내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고 한다.
"여보, 오늘 소식을 들었는데 이 옆에 엄청 높은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온데.
나중에 거기 사람들이 입주하면 우리 델리 완전 대박 날 것 같지? 너무 좋아. ㅎㅎㅎ"
"어 이런... 그게... 좋은 싸인이 아닌데..."
"응?"
니치마켓은 정말 좋은 마켓이다. 독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 장점을 유지하기 위한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절대 성장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시장이 성장하는 순간 큰 경쟁사들이 들어와 시장을 잠식하게 된다.
더 이상 독점할 수 없고 출혈경쟁에 가담해야 한다.
신사업을 해오던 내게는 꽤 강렬한 메시지였다.
6년 후 나는 LG에서 Tone+라는 제품의 신사업을 담당하게 되었다.
Tone+는 목에 걸고 핸즈프리로 통화를 할 수 있게 해주는 블루투스 넥밴드인데
6년 만에 4천억 원이 넘는 매출을 할 만큼 급성장하였다.
게다가 다른 제품군들 대비 영업이익도 획기적으로 높았다.
LG의 다른 제품들은 상품기획, 디자인, 기술 등 모든 걸 내재화하여
두 자릿수 영업이익률이 나오기는 거의 힘들던 시절이었다.
Tone+는 OEM을 활용하여 영업이익 최고 17.3% 까지 기록하였으니
이는 어느 부서에서도 본 적 없는 미스터리 한 숫자였고
당시 고전하던 휴대폰본부에서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Tone+가 처음부터 그렇게 기획된 것은 아니었다.
원래는 스마트폰의 액세서리 사업을 하는 조직이었는데
신사업 아이디어를 내는 와중에 한 협력사가 넥밴드 아이디어를 들고 왔다.
논의 끝에 의사결정을 하고 그 협력사와 함께 제품을 만들기는 했는데
세상에 없던 카테고리라서 처음엔 어떻게 팔아야 할지 몰랐다.
게다가 스마트폰에 마케팅을 몰아주다 보니 Tone+ 마케팅은 꿈도 못 꾸었다.
신규 스마트폰을 통신사들에 영업하러 갈 때 따라가서
회의실을 떠나려고 하는 고객사를 잡아 세우며
“잠깐만, 이런 것도 있어요. 한번 봐주세요.” 수준으로 영업을 했다.
첫 해 판매 실적이 몇 백대 수준.
사실 이 정도면 사업을 접어야 했다. 그게 맞는 의사결정이었다.
그런데 그냥 버텼다.
본부가 스마트폰이라는 주력상품에 대해 온통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이 모호한 신규 제품에 대해 접자 말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대세에 지장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무관심이 자식 성공의 비결'이라는 말이 딱 이런 경우였다.
3년 차 때부터 갑자기 물량이 터지기 시작했다.
핸즈프리라는 개념이 먹히면서 입소문을 탄 것이다.
특히 택배 배달, 트럭 운전 같은 업무를 하시는 분들 사이에서
일할 때 두 손을 자유로이 쓰면서 통화를 할 수 있어서 좋다는 평가들이 많았다.
철저하게 '편의'를 주는 액세서리 제품이었다.
잘 팔리기 시작하자 신기능들을 추가하며 모델을 다변화하기 시작했다.
디자인도 날렵하게 개선하고 방수 기능을 넣어 스포츠용 모델도 만들었다.
이어셋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지 않도록 줄 자동 감기 기능도 추가했다.
처음엔 모노로 전화 통화만 주로 했던 것을 스테레오로 개선했고
나중에는 Harman과 제휴를 통해 음질을 개선해서 음악감상용으로도 소구 했다.
그렇게 모델 수는 급격히 늘어났고
$49의 편의 액세서리였던 제품 포지셔닝은
$199의 퍼스널 오디오 제품 포지셔닝으로 빠르게 확장되어 갔다.
'좋은 음질'을 주는 오디오 제품으로 격상된 것이다.
사업도 커지고 회사 내에서의 사업부의 입지도 올라갔다.
그저 작은 액세서리 중 하나인 줄 알았더니 버젓한 독립 제품군이 되었다.
새로 부임한 CEO는 어떻게 그렇게 높은 영업이익이 나올 수 있는지
내부 벤치마킹을 지시할 정도였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사업만 성장한 게 아니라 시장도 따라 성장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편의 액세서리'를 만들어 니치마켓을 공략했는데
이제는 '퍼스널 오디오'라는 신규 주력마켓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경쟁구도가 급격히 바뀌기 시작했다.
처음엔 눈길도 주지 않았던 Sony, JBL, Bose 같은 오디오 강자들이
비슷한 넥밴드 모델을 만들어 경쟁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가격대도 수백 불대에서 $299, $249로 내려오며 우리 제품과 겹치기 시작했다.
브랜드나 음질로 싸워야 한다면 우리는 승산이 별로 없었다.
독점은 끝났다.
다시 생존경쟁이었다.
우리는 넥밴드에 스피커를 장착한 Tone+ Studio를 만들어 반격을 시도했다.
생존을 위해 새 니치마켓을 만들어야 했고
‘퍼스널 스피커’로 잘 소구 하면 니치마켓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중요한 건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하는 것이다.
전혀 새로운 카테고리 제품이라서 알리는 것이 관건이었다.
난생처음으로 억대 비용을 투자하여 광고 동영상도 시리즈로 3편을 제작했다.
이제 ATL 마케팅에까지 돈을 쓰는 사업이 되었다.
하지만 이건 그렇게 알린다고 해결되는 제품이 아니었다.
스피커를 넣기 위해 모양도 두꺼워지고 무게도 약간 부담스러웠지만
양쪽 귀 바로 밑에서 스테레오 사운드가 올라오는 경험은 정말 쇼킹했다.
고객들에게 너무 들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고객들이 직접 목에 둘러보기 전에는 절대 알 수가 없었다.
직접 써봐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업의 성패는 BTL 마케팅에서 결정 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고객들이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게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쫓아다녔다.
게이머들에게 실감 음질을 체험시켜 주려고 NVIDIA GeForce Day에 참여하기도 했고
VR과도 좋은 궁합이 될 것 같아서 부산 VR쇼도 열심히 쫓아다녔다.
신사동 Trek 자전거 대리점에 약속도 없이 들어가서 들이대기도 했고, 그걸 계기로
자전거대회 'Around 삼척'에 가서 세계적인 Rider 옌스보이트를 만나 직접 씌워주기도 했다.
여의도 CGV 앞에서 관람객 대상으로 체험행사를 하기도 했는데
지나가는 커플들에게 공손히 인사한 후 목에 쓱 Tone+ Studio를 씌웠다.
처음엔 피하는 듯하다가 사운드를 듣자마자 "우와... 이거 뭐예요?" 하면서 깜짝 놀랐다.
너무 신기하다며 얼마냐, 언제 출시냐 다들 관심을 보였다. 그런 제품이었다.
연예기획사 JDB엔터에 찾아가 김대희, 유민상, 김민경 등 개그맨들 목에 걸어주기도 했고
인지도 높은 데니스홍 박사님을 개인적으로 만나 소리를 들려드리며 홍보를 부탁하기도 했다.
그러다 이걸 아예 대놓고 설명하지 않으면 고객들이 영영 모를 것 같았다.
‘생활의 발견’이라고 당시 개그콘서트 코너 이름을 붙이고
일상에서 뭐 할 때 쓰면 좋은지 하나하나 적었다. B급 감성 유머도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컬러프린트를 해서 매대 옆에 뿌리기 시작했다.
뭐라도 해야 했다. 절박했다.
그렇게 한 8개월을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정말 신바람 나게 일했다.
하지만 이 모든 노력은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유는
조.직.개.편.
너무 어이없지만 대기업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어차피 지금은 AirPods로 시장이 넘어갔기 때문에 수명이 다한 기술이 되어버렸다.
이젠 '그때 참 재미있었지...' 하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았다.
혹시 다시 돌아간다 해도
무엇을 다르게 했을지 모르겠다.
그저
Ducan 교수님의 가르침이 계속 머리에 맴돌 뿐이다.
니치마켓은 좋은 시장이다.
하지만 절대 성장해서는 안된다.
PS.
Duncan 교수님께 아내분 사업은 그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물었다.
예상대로 큰 델리가 따라 생기는 바람에 판매는 줄었고
그래서 주변 학교 대상의 케이터링 전문 델리로 포지셔닝을 바꾸었다고 했다.
말하자면 B2C 니치마켓을 B2B 니치마켓으로 바꾼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