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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mmy Park Apr 01. 2024

017 익숙함의 밖으로 나가라

Jailbreak

“Everything you want is just outside of your comfort zone.” (Robert G. Allen) 
 
와인색이 너무 잘 어울리시네요.
 
메타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옷 장에 똑같은 회색 티셔츠만 있다고 했다.
왜 항상 같은 옷만 고집하는지 묻는 사람들의 질문에 그는
매일 뭘 입을지와 같이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사람들은 그의 철학에 감탄했다. 나도 그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고 싶진 않았다.
 
오래전 삼성에 다닐 때 휴스턴으로 장기 출장을 다닐 일이 많았다.
그때 내 출장 가방에는 모든 옷들이 흰색, 검은색, 회색밖에 없었다.
뭘 집어 입고 매칭을 해도 어색하지 않았고, 나한테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게 이유라면 이유였다.
주말에 혼자 쇼핑몰에 갔는데, Banana Republic 셔츠가 Buy 1 Get 1 세일이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내가 가장 사지 않을 것 같은 색깔을 하나 사볼까? Buy 1 Get 1인데 뭐...
고민 끝에 검은색과 와인색 셔츠를 하나씩 집어 들었다.
빨간색에 검은 잉크를 몇 방울 섞은 듯한 와인색이었는데
내 돈 주고는 절대 사지 않을 것 같은 색이었다. 

그다음 날, 친구가 소개해 준 분을 만나러 갈 일이 있어서 그 티셔츠를 입어 봤다.
해외이고, 처음 보는 분이고, 앞으로 또 볼 일도 없을 것 같아 용기를 낸 건데
그분이 나를 보자마자 말했다.
“와인색이 너무 잘 어울리시네요.”
안 그래도 셔츠 색깔 때문에 내심 어색했는데 기분이 묘했다. 이게 뭐라고...
어색한 건 그냥 내 기분 탓이었나?
오래전에 잃어버렸던 색깔 하나를 다시 찾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옷뿐만 아니라 안 해봤던 다른 것들도 한번 시도해 봐야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뭔가 내 삶이 더 풍부해진 것 같은 느낌.
옷장에 티셔츠 색깔 하나 추가되었을 뿐인데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루틴을 가지고 살아간다.
특히나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일수록 삶이 단순화되는 경향이 있다.
출근시간이 정해져 있다 보니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 출근하고 일하다가 보면 금세 저녁 퇴근시간이다.
집에 오면 피곤하니 폰이나 TV, 책을 좀 보다가 취침.
이 하루를 다섯 번 반복하면 주말.
주말엔 미뤄두었던 집안일을 하거나, 경조사도 쫓아다니고, 가족 모임도 가고...
그러다 보면 금세 월요일.
이걸 4번 반복하면 한 달, 52번 반복하면 일 년이다.
 
이렇게 루틴을 만드는 것은 사람의 습성이다.
반복되는 것은 익숙해지고 익숙한 것은 편해지기 때문이다.
신경 쓰지 않아도 필요한 것들을 빠뜨리지 않게 도와준다.
덕분에 규칙적이고 성실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마크 저커버크처럼 사소한 것까지 루틴을 단순화시키면 삶은 더욱 편해진다.
무리 없이 굴러간다. 매우 효율적이다.
 
하지만 
루틴 효율화는 체험적 삶을 단축시키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하루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24시간이지만
지나고 나서 돌아보는 기억 속의 삶의 길이는 서로 다르다. 
인간의 뇌가 그렇게 만든다.
새로운 경험들은 뉴런이 시냅스를 조절하여 기억의 방을 만든다고 한다.
가끔 루틴을 깨고 새로운 경험들을 많이 한 날 밤에 침대에 누우면
아침이 까마득할 때가 있다.

하루 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그날은 뇌가 열일을 한 것이다.
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루틴 한 경험들은 뇌가 압축 저장한다.
근육이 기억하여 몸이 알아서 움직이니 뇌는 굳이 기억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치열한 것 같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어찌 지나갔는지 모른다.
딱히 기억나는 일이 없다.  

매일 아무 생각 없이 누르던 도어록 비밀번호도 종이에 쓰려하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매일 들락거리는 대문 색깔이 남색인지 초록색인지도 헷갈려지는 상황이 온다.
반복되는 인생의 장면들을 우리 뇌는 애써 기억하지 않는다.
루틴 해져버렸기 때문이다.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이 무료해질 때가 있다.
반복되는 하루 끝에 퇴근시간만 기다리며 시계를 힐끔거리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그때는 돌아보라.
면접 후 조마조마하며 결과를 기다리던 날을.
합격 통지를 받고 세상 다 얻은 것 같은 행복감이 들었던 날을.
처음 긴장해서 출근했던 가슴 벅찼던 날을.
첫 번째 발표를 잘 끝낸 날 퇴근 후 동기들과 처음 생맥주를 마셨던 날을.
지금도 그때와 달라진 건 없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 모든 게 익숙해져 버린 나 자신뿐이다.
익숙함에서 빠져나와라. 일과에 새로운 경험을 집어넣어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라. 새로운 주제를 공부하라.
서점에 가서 낯선 장르의 책을 골라 들어라. 듣지 않던 장르의 음악을 들어보라.
식당에서도 처음 보는 메뉴를 골라라. 조금 돌아가더라도 다른 길로 출퇴근하라.
일할 때도 어떻게 다르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해라. 사소해도 좋으니 바꿔라.
중요한 건 자꾸 새로운 생각을 하고 새로운 행동을 하는 것이다.
루틴 하지 않아서, 두뇌에게 열일을 시키는 것만으로도 성공이다. 아침이 까마득하게 느껴질 것이다.
루틴이 나쁜 것이 아니다.

익숙한 루틴에만 머무는 것이 나쁜 것이다.
새로운 루틴을 만들면 된다. 
 
사랑하는 가족이 무덤덤해질 때가 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편안함과 항상 내 편이라는 안도감이 당연히 여겨질 때가 있다.
그때는 익숙함의 밖으로 나가보라.
매일 먹던 집의 식탁에서 벗어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근사한 레스토랑을 예약하라.
집에서 함께 출발하지 말고 사람들이 붐비는 거리에서 만나라.
카톡으로 어디인지 묻지 말고 10분 먼저 나가서 기다려라.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며 그 사람이 환히 웃으며 다가오는 모습을 그려보라.
신선한 느낌과 약간의 긴장감이 어우러져 기다리는 일분 일분이 새롭고 소중할 것이다.
이 사람이 이랬었나? 밖에서 마주친 그 사람이 조금은 달라 보일지 모른다.
근사한 저녁을 함께 하고 함께 집에 돌아오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된다.
하지만 가끔은 사람들이 붐비는 거리에서 헤어져라.
인사를 하고 뒤돌아 수많은 인파 속으로 멀어져 갈 때 그 뒷모습을 바라보라.
안쓰러움, 미안함, 약간의 걱정 등이 어우러져 더욱 애틋한 마음이 싹틀 것이다.
더 이상 매일 당연히 집에서 보던 그 사람이 아니다.
낯선 곳에서 만나고 낯선 곳에서 헤어지기.
잊고 지냈던 애틋함이 고개를 들 것이다.
 
효율성이 주는 안도감과 이별하라.
익숙함이 주는 달콤함에서 탈출하라.


삶에는
효율성이나 익숙함보다 더 소중한 무언 가가 있다.

익숙함의 밖으로 나가보면 알 수 있다.


(Meeting on the street, Powered by DALL.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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