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ilbreak
"We worry about what a child will become tomorrow, yet we forget that he is someone today.” (Stacia Tauscher)
그럼 마음으로 본 거네요...
두 아들이 2학년, 4학년 때의 일이다.
회사에 일을 하고 있는데 아내에게 문자가 왔다.
반장선거에서 태인이는 반장이 되고 태성이는 떨어졌는데 태성이는 지금 엉엉 울고 있다고.
그게 뭐라고... 문자만 봐도 상상이 가면서 너무 귀여웠다.
끝나자마자 서둘러 집에 들어갔다
퇴근해서 돌아온 나를 보더니 태성이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린다.
"엉엉... 꼭 반장 되고 싶었는데..."
"그랬구나. 괜찮아 태성아. 이제 처음 도전해 본 거잖아.
아빠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너희들이 스스로 도전한 거 자체가 훌륭하다고 생각해.
너는 많이 아쉽겠지만 솔직히 아빠 생각에는 차라리 잘 된 것 같아. 왜인 줄 아니?"
"아니요. 왜요?"
"태성이가 처음 도전했는데 쉽게 돼버리면 앞으로도 모든 게 너무 쉽게 느껴질 것 같아.
반장 선거에 나갔다 떨어진 다른 사람들 마음도 잘 이해가 안 갈 거고.
그런데 이렇게 실패를 해보고 나중에 반장이 되면 이게 얼마나 소중한지도 알 수 있고
아마 그땐 기분도 훨씬 더 좋을 거야. 안 그래?"
"네. 맞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맘이 좀 편해지지 않아? 그런데 왜 계속 울어?"
"몰라요. 저도 모르게 그냥 자꾸 슬퍼요. 엉엉..."
"그래. 기분이 그럴 때가 있지. 태성아 그건 감정이야.
그런 감정이 들 때는 좀 울어도 돼. 그게 스스로에게 솔직한 거야.
우는 건 창피한 게 아니야. 아빠도 많이 울어."
"아빠도 울어요? 잘 못 봤는데..."
"아니야. 아빠도 많이 울어. 너희들 태어났을 때도 기뻐서 울었고.
영화나 드라마 보다가 감동받았을 때도 울고.
근데 우리 태성이 다 울고 나면 그때는 아빠가 한 이야기 다시 잘 생각해 봐. 알았지?
감정은 때로는 어쩔 수 없지만, 생각은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단다."
"네. 흑흑..."
그러고 한 시간쯤 지나니 예전의 그 활발하던 태성이로 돌아왔다.
"태성아, 이제 슬픈 마음 좀 없어졌어?"
"네. 처음 도전해서 떨어진 게 차라리 잘 된 거잖아요. 2학기때 반장 다시 도전할 거예요. ㅎㅎㅎ"
"금세 마음을 다잡았네 태성이. 대단하다... ㅎㅎㅎ"
태인이에게 갔다.
"태인아, 우리 아들 반장된 거 진짜 축하해. 아빠는 태인이가 결국 해내서 너무 기쁘다. ㅎㅎㅎ"
"감사합니다. 아빠 덕분이에요. 어제 스피치도 봐주시고 의견 주셔서 잘 된 것 같아요.
근데 사실... 전 반장이 되었다는 게 아직도 실감이 안 나요. ㅎㅎㅎ"
"그래. 그럴 수 있지. 근데 태인아... 너 그거 알아?
낮에 태인이 반장 되고 태성이는 떨어져서 울고 있다고 엄마한테 문자 받았을 때 아빠 울컥했다."
"왜요? 제가 반장 돼서요?"
"아니. 태성이가 떨어졌는데 엉엉 울고 있다고 해서..."
"..."
"태인아, 그동안 반장선거 나갔다 떨어졌을 때마다 너도 똑같이 슬펐을 텐데 왜 안 울었니?
그때 우리 태인이가 얼마나 혼자 슬프고 마음 아팠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
너도 슬프면 슬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도 돼.
아빠가 보면, 우리 태인이는 큰 형아라서 그런지 속으로 참고 삭이는 게 있는 것 같아.
앞으로는 꼭 그러지 않아도 돼 태인아.
가끔 슬프거나 힘들 때가 있는데 그게 절대 창피한 게 아니야.
2학년 1학기, 2학기. 3학년 1학기, 2학기. 네 번이나...
우리 태인이가 그동안 얼마나 속으로 혼자 슬펐을까 생각하니 아빠가 눈물 나올 뻔했어."
"아니에요 아빠. 저 괜찮아요..."
그렇게 말은 하지만 감성적인 태인이 눈시울이 이내 붉어졌다.
아무 말 안 하고 한참 동안 꼭 안아줬다.
난 비교적 아이들과 대화를 많이 하는 아빠다.
아이들이 3~4살 때쯤 말을 알아듣기 시작했을 때부터 아이 취급을 하지 않았다.
궁금한 게 있을 때 어리다는 이유로 "아직 몰라도 돼"라고 하거나
아주 쉬운 설명으로 대충 넘기지 않았다.
어른 대하듯 꼼꼼히 설명해 주고 이해가 가지 않아 다시 물어보면 또 설명해 줬다.
아이들은 가끔 못 알아듣고도 지겨우면 그냥 넘어갔다. 나도 넘어갔다.
천지창조는 미켈란젤로가 피렌체 성당의 천장에 그린 그림이라는 것.
90세가 넘은 파블로 카잘스 할아버지가 왜 날마다 첼로 연습을 거르지 않았었는지...
무게와 마찰, 미끄러짐의 상관관계.
왜 스케이트는 잘 미끄러지고 운동화는 안 미끄러지는지...
전륜구동, 후륜구동, 사륜구동의 차이.
고모차 같은 스포츠카들이 왜 눈길에 잘 미끄러지는지...
오감 중 시각이 가장 많은 정보를 주지만 시각을 잃으면 다른 센스가 강해진다는 것.
오감은 외부의 느낌을 내부(Brain)로 가져오는 것이고,
반대로 말은 두 되가 생각하는 것을 외부로 표현하는 거라서 서로 다르다는 것.
그래서 시각을 잃어도 말을 잘하게 되지는 않는다는 것.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면
google image에서 키워드로 이름을 타이핑하면 된다는 것 등.
초등학교도 가기 전에 두 녀석한테 해주었던 말들이다.
이런 대화를 계속하면서 느낀 게 있다.
어른들은 쉽다 어렵다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에겐 재밌다 재미없다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처음 듣는 건 어른들 입장에서 아무리 쉽게 설명을 해도 아이들에겐 어차피 어렵다.
게다가 아이들은 조금 어렵다, 많이 어렵다의 개념도 없다. 어려운 건 그냥 어려운 거다.
그래서 어떻게 조금이라도 덜 어렵게 설명할까 하는 것보다
어떻게 더 재미를 느끼게 해 줄까 가 더 중요하다.
그렇게 재밌게 설명을 하다 보면 아이들 눈이 반짝거리고 질문이 많아진다.
그렇게 들은 이야기들은 시간이 한참 지나도 잘 잊어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반복되다 보면
한 달 전에 들은 것과 일주일 전에 들은 것, 그리고 오늘 배운 것이
서로 연결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는 스스로 뿌듯해한다.
스티브잡스가 말했던 "Connecting the dots"가 아이들에게도 적용된다.
내가 애써 아이들 그릇에 맞게 만들어 넣어줄 필요는 없다.
언젠가 배우게 될 것이라면 뭐든 그냥 쏟아부으면 된다.
그러면 아이들이 스스로 그릇의 크기를 늘리고 모양을 바꿔서 담아낸다.
그게 아이들이다.
"그럼 마음으로 본 거네요..."
태성이가 6살 때, 스티비원더가 왜 눈이 안 보이게 되었는지 함께 인터넷을 찾아보다가
딸이 너무 보고 싶어서 눈수술을 했는데 여전히 눈이 보이지 않았다는 글을 보고
그 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태성이가 한 말이다.
감동이었다.
그랬던 녀석들이 지금은 키가 나보다 훌쩍 더 커져 버렸다.
아는 것도 많아지고 자신만의 생각도 생겼다.
그렇게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나 보다.
언제 이렇게 컸는지...
아이들은 부모가 안 보는 곳에서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