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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mmy Park May 19. 2024

중립 기어

Jailbreak

"A lie can travel halfway around the world while the truth is putting on its shoes." (Mark Twain)


나의 아저씨를 다시는 볼 수 없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한 2년쯤 전 미국 출장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기내 엔터테인먼트를 돌려보다가 우연히 발견했었다.

나의 아저씨.

1편부터 5편까지 다섯 편이 올라와 있었다.


일전에 고등학교 친구들이 술자리에서 이 드라마가 자기 인생 최애 드라마라면서
서로 세 번 봤네, 네 번 봤네 하며 떠들던 게 떠올랐다.

이게 그렇게 대단한 드라마인가?

어차피 10시간을 가야 하니까 도대체 뭔지 한두 편만 볼까?

그렇게 가볍게 시작했는데 그 자리에서 내리 다섯 편을 다 보고 말았다.


뭔가 참 기분이 묘했다.

엄청 대단한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닌데 계속 궁금하게 하고

보는 사람을 안쓰럽게 하고, 응원하게 하고... 아무튼 그랬다.

결국 공항에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Netflix를 통해 틈틈이 끝까지 다 봤다.

이선균이라는 배우가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난 트레이드 마크인 그의 목소리도 그리 좋아하지 않고

그의 과거 작품들도 딱히 감명 깊게 본 적이 없지만

그 드라마를 보고 나서는 그냥 왠지 응원하고 싶어졌다.

나의 아저씨는 그런 드라마였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술집, 마약, 불륜, 음모, 협박, 배신...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온갖 추악한 말들이 날이 갈수록 살을 더했고
급기야는 녹취록이라고 음성 파일이 나와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온 국민이 자기 귀로 직접 듣게 되었다.
단편적이고 일방적인 전화 내용이었지만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마치 다 알았다는 냥 떠들어 댔다.
사건이 일파만파 커지는 걸 더 이상 견디다 못해 그는
한 순간에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스스로 죽음을 택함으로써 사람들의 안주 그릇을 엎어 버린 것이다.

몇 주가 지나자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갔다.
더 이상 아무도
나의 아저씨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정치권에도 하루가 멀다 하고 스캔들이 터진다.

뇌물, 재산 비리, 자녀 비리, 성추문, 불륜, 쌍욕...

이름이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실제로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사람들일 수도 있고

상대당의 후보 또는 같은 당의 라이벌을 흠집 내기 위한 음모일 수도 있다.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믿는 정치적 신념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기꺼이 거기에 동참하여 스캔들을 부풀리고 전파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나에게는 오히려 잘 됐다 싶은 것이다.

그런 이기적인 생각과 행동들은
이런 불행한 사건들의 불씨에 바람을 일으켜 활활 태우는 연료가 된다.

매우 비이성적이지만 실제로 주변에서 매일 벌어지고 있다.

비단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인간이 살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오늘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인간의 확증편향도 큰 몫을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현상이 벌어지면 사람들은 그 원인이 밝혀져야 마음이 편해진다.

뭐라도 설명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설명은 내가 평소에 믿던 사상과 일치해야 동의가 된다.

"연예인들 겉으로는 번지르 해도 속으로는 다들 그렇지..."

"정치하는 사람들은 다들 자기 잇속만 차리려고 하는 거지.

표 달라고 할 때만 굽신거리고 선거 끝나면 다 똑같아..."

이렇게 생각하던 사람들이 그런 뉴스와 스캔들을 보게 되면

그것만으로 '내 이럴 줄 알았지' 확증을 하게 된다.


워런 버핏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사람들이 가장 잘하는 것은
기존의 자기 견해가 잘 유지되도록 새로운 정보를 걸러내는 일이다."

그가 세계 최고의 투자자인 것은
보편적인 인간 심리를 꿰뚫고 있음과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난
그냥 쿨하게 인정하기로 했다.

우리는 결코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을.


그저 겉으로 드러난 몇 가지 단편적 사실 조각과 정황,
그걸 보고 떠드는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참고하여 추측할 수는 있지만

그것들이 내게
정확한 진실과 그 진실 이면의 복잡 미묘한 흐름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게다가 딥페이크다 뭐다 해서 이제는 세상이 바뀌고 있다.
내 눈으로 봐도 사실이 아닐 수 있고
내 귀로 들어도 사실이 아닐 수 있다.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그들의 뜻대로 우리의 마음을 조종하기 쉬운 세상이 되어 가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사건기자처럼 정확한 진실을 파해치려고 직접 노력하지 않는 이상

나도 동참하여 추측성 한두 마디 보태는 건 의미가 없다.

나중에 내 말이 맞으면 뭐 하겠고 틀리면 뭐 하겠나?

부질없고 의미 없다.


그래서 난 그럴 때 망설임 없이 중립기어를 박는다.

정확히 잘 모르는 상황에서 경솔하게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오로지 사실만을 객관적인 눈으로 관망하며

나중에 진실이 확인되었을 때 비로소
변속기를 직진에 놓을지 후진에 놓을지 움직일 준비를 하는 것이다. 


잘 모른다고 침묵하는 것.

어쩌면 비겁하다고 욕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난 차라리 비겁함을 택하겠다.

적어도 본의 아니게 내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걸 막을 수 있다면

내가 한 말과 행동에 후회하게 될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면

난 기꺼이 비겁하겠다.


남들이 모두 한 목소리로 떠들어 댈 때 홀로 침묵하는 것.

나도 한 마디 거들고 싶은 마음이 솟아 올라와도 끝까지 참고 견디는 것.

때로는 그 비겁함을 감수하는 것이
진정한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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