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ilbreak
"You will never find time for anything. If you want time, you must make it." (Chales Buxton)
나도 그 적막한 운동장에 함께 서있는 것 같았다.
작년에 한 예능에서 김병현이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홈구장을 찾아가는 장면이 나왔다.
메이저리거로서 완벽한 마무리 투수 시절을 보냈던 그 구장.
체구가 작은 한 동양인 선수가 난데없이 나타나
시속 150km가 넘는 마구를 뿌려대며 삼진을 연거푸 잡아내는 모습에
온 세계의 야구팬들은 열광했다.
그때 김병현 나이 22세.
불혹이 되어 다시 돌아온 텅 빈 운동장.
말없이 구석구석을 둘러보다가 그는 갑자기 오열하기 시작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를 들썩이며 한참을 그렇게 서있었고
그 누구도, 어떤 말도 건네지 못했다.
그때가 인생 최고의 전성기였는데 그걸 몰랐다고...
천년만년 계속될 것 같아서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다고...
그의 쓸쓸한 등을 보고 있자니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쏟아지는 눈물이 너무 공감되었다.
하루는 물류교육을 통해 알게 된 형님 한 분이 회사를 찾아 주셨다.
그 형님은 인천공항 옆에서 보세 창고를 운영하시고 계신데
인생을 정말 멋지게 사시는 롤모델 같은 분이다.
본인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인 '보스턴 마라톤' 출전을 준비하다가
문득 내가 보스턴에서 학교 다녔던 걸 기억하시고는 갑자기 회사로 찾아오신 거였다.
커피를 앞에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해주신 말씀.
등산을 해도
올라갈 때는 숨이 차고 다리도 후들거리며 힘이 들지만
정상에 도착하면 숨도 좀 고르고
살랑거리는 바람에 땀을 식히며 충분히 쉬다가
다시 기운 차려서 기분 좋게 내려오면 되는 건데,
어디가 피크인 줄도 모른 채
쉬지도 못하고 계속 다그치며 힘들게 올라가기만 하다가
문득 돌아보니 아 그때가 피크였구나
뒤늦게 깨닫고 후회하는 게 인생이라고...
그 말씀이 오래도록 가슴에 울림을 주었다.
지금껏 나도 그렇게 살아왔구나 싶었다.
하루는 어떤 VC 모임에 모임에 갔는데 한 분의 옷 등에 'Golf is Life' 라고 쓰여있었다.
Malbon이라는 브랜드의 골프웨어였다.
부담스러운 멘트였다.
선수도 아닌데 뭘 Golf를 인생이라고까지...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 저 말이
Golf is my life 가 아니라 Golf is like a Life 면 말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프가 인생을 많이 닮아있기 때문이다.
잘 관리된 필드의 초록 잔디를 마주하면 가슴이 웅장해진다.
하지만 가다 보면 계곡도 있고, 호수도 있고, 벙커도 있다.
가장 아름다운 홀에는 늘 난해한 해저드가 도사리고 있다.
오르막이 심해서 어렵게 그 홀을 버텨내면
조금 후에는 어김없이 가파른 내리막 홀이 나온다.
인생도 그렇다.
멀리서 보면 너무나 찬란하지만 정작 그 과정은 순탄치 않다.
삶의 코너마다 예기치 못한 위험들을 만나게 되고
우리는 어떻게든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가끔은 인생의 오르막을 만나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잘 버티면 반드시 순탄한 내리막이 찾아온다.
필드에서는 거리가 멀수록 무의식 중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하지만 억지로 힘을 쓰면 쓸수록 거리는 줄어든다.
공을 띄우려고 올려 치면 오히려 공은 바닥으로 깔리고
아래로 내려 치면 공은 오히려 높이 뜬다.
의도와는 반대다.
인생도 그렇다.
너무 간절하여 잔뜩 힘이 들어갈수록 일을 그르친다.
오히려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하면 술술 풀리기도 한다.
잘난 척하며 스스로를 높이면 사람들은 그를 내려보지만
겸손하게 스스로를 낮추면 사람들을 그를 인정하고 높여준다.
사람 사는 이치가 그렇다.
이 번주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후
다음 주에 컷 탈락을 하는 유일한 운동이 골프다.
우리 인생도 그런 게 아닐까?
지금 잘 나간다고 우쭐댈 것도, 당장 힘들다고 절망할 것도 아니다.
수시로 바뀌는 바람의 방향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인생의 마지막 홀이 끝날 때까지 진지하게 즐기면 된다.
삶의 이치에 대해 생각한다.
매일 조건 없이 새롭게 주어지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가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빨리 우리 곁을 떠나가는지...
삶을 대하는 태도를 생각한다.
늘 오늘이 내 인생의 피크라는 마음으로 살아야지.
행운이 허락되어 내일 아침이 오면
그 내일이 또 오늘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