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단어로 찬란하게 부서지는 파랑, 파랑.
6번째 책리뷰_
천선란 - 《천 개의 파랑》 / 허블
천 개의 단어로 찬란하게 부서지는 파랑, 파랑.
이 작품은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휴머노이드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가까운 미래를 그린 SF소설이다. 소설에서는 경마장에서 말이 더 빨리 달릴 수 있도록 특수 제작한 기수 로봇이 주인공으로 다뤄진다. 이 로봇은 제작 과정에서 실수에 의해 만들어진 말하자면 ‘불량품’ 로봇으로, 칩이 바뀌어 잘못 끼워지는 바람에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로봇이 되었다. 소설은 이 로봇이 여러 우여곡절 끝에 “콜리”라는 이름을 갖게 되고, 여러 사람을 만나고, 결국에는 한 생명을 구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공학을 공부하는 나에게는 이 소설이 하나의 질문으로 다가온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어야 하는가?”라는 조금은 진부한 질문이다. 초기의 인류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진 기술의 진보는 인간에게 많은 것을 주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많은 것을 앗아가기도 했다. 앞으로의 기술은 우리가 잃어버렸던 것을 다시 되돌려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효율과 경제성만을 따지는 차가운 공학이 아니라. 감성과 사랑으로 다가가는 따뜻한 기술로서 말이다.
더욱 진보된 기술 사회를 그리는 이 작품은 과속 되어 가는 발전 속도에 오히려 경종을 울린다. “더 빨리, 빨리!”가 아니라, “천천히, 천천히.” 달려도 괜찮다고. 모두가 더 많은 것을 바라는 사회에 중요하고도 새로운 의식을 환기시키는 이야기다.
✏인상깊었던 구절✏
“왜 말을 타다가 하늘을 바라본 거야?”
“하늘이 그곳에서 그렇게 빛나는데 어떻게 바라보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p. 69
“이미 이 행성은 인간 중심의 행성이 됐잖아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세상 밖으로 나가면 어느 동물도 살아남지 못해요. 동물들이 살 수 있는 네트워크가 아예 존재하지 않아요.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부분을 고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아예 다시 프로그래밍을 해야 된다는 말이에요. 이 사회가.” -p. 157
만일 보경이 이유를 물어봤다면 은혜는 이렇게 대답했을 거다. 돌아오는 길이 외로워, 엄마. 힘들지는 않은데 외로워. 외롭다는 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 길을 외롭다고 부를 수 있을 거 같아. -p. 186
“당연하지. 살아간다는 건 늘 그런 기회를 맞닥뜨린다는 거잖아. 살아있어야 무언가를 바꿀 수 있기라도 하지.” -p. 261
“그렇다면 아주 천천히 움직여야겠네요.”
콜리가 보경을 향해 조금 더 몸을 틀었다.
“멈춘 상태에서 빠르게 달리기 위해서는 순간적으로 많은 힘이 필요하니까요. 당신이 말했던 그리움을 이기는 방법과 같지 않을까요? 행복만이 그리움을 이길 수 있다고 했잖아요. 아주 느리게 하루의 행복을 쌓아가다 보면 현재의 시간이, 언젠가 멈춘 시간을 아주 천천히 흐르게 할 거예요.” -p. 286
“기술은 그러기 위해 발전하는 거니까요. 나약한 자를 보조하는 게 아니라, 이미 강한 사람을 더 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p. 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