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와 사주팔자

by 프로스윤

확실히 시골 생활에 익숙해졌다. 해 뜰 무렵이면 잠에서 깨는 것이 그 증거다.

자연의 시간에 내 몸이 스스로 반응하고, 맞추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옛날 어릴 적에 시계가 없던 집에서 아버지, 어머니는 이 자연시계에 항상 맞추어 사셨다. 집안에 괘종시계는 없었고, 아버지가 사용했던 납작한 시계는 자주 고장이 나거나 물이 들어가서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집안에서 유일한 그 시계를 버리지는 못했고 오랫동안 사랑방 앉을 책상 서랍 속에서 나뒹굴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집에는 라디오가 1대 있었는데 시간을 알 필요가 있으면 그 방송을 귀를 기울여서 들으면 충분했다. 정확한 시간에 맞추어서 해야 할 일이 특별히 없었고 해가 뜨고 지는 시간 정도면 생활하는데 지장이 없었다. 누나와 어머니가 밭일을 가면서 연속극이나 음악을 들으려고 라디오를 가져가서 밭이나 논둑에 두고 일을 할 때 나는 밭둑 옆 길에서 비석 치기나 여치 잡는데 몰두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수렵 채집 단계를 지난 농경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던 시기였다.


이 농경인도 문자를 쓰고 해독할 수 있었고 자신들의 사주팔자를 기록해 두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마을에서 서당을 하셨고 그래서 ‘서지 영감’으로 불렸고 책을 읽어서 그랬는지 농사일은 전혀 하지 않았으며 남에게 한자 편지나 써주고 몇 마지기 되지 않던 농토로 자식들로 하여금 농사를 짓게 하고 그냥 근근이 먹고살았다고 한다. 이 할아버지는 붓으로 제법 문장도 남겨두기도 했고 손자들이 태어난 시기에 각자의 사주(四柱)를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로 정확하게 기록했다.


내가 태어나기 전까지 다섯째 형까지의 사주를 ‘갑자년, 을축월, 병인일, 정묘시’ 형식으로 정확하게 기록해 두었다. 내가 어머니에게 당시에는 시계가 없었는데 어떻게 태어난 시간을 기재하셨는지 물으니 ‘너그 할아버지는 별을 보고 시간을 아셨다’고 했다. 추성법(推星法)으로 시간을 알아서 손자들의 사주를 기재해 둔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는 물론이고 대학까지 다닌 큰형도 할아버지의 이 출생시각 기재의 정확성에 대하여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태어났으므로 아버지가 다섯째 형의 사주 밑에 나에 관한 것을 기재해 두었는데 태어난 시간에 대한 천간과 지지는 없었다. 아버지는 추성법(推星法)을 할아버지로부터 배우지 못했다. 그렇지만 영리한 어머니는 ‘너는 태어난 것이 음력 5월 중순이고, 낳는 날 새벽 무렵에 별이 시퍼렇게 있었고 낳고 나서 한 참 있다가 저 앞산 마루에 붉은빛이 있었으니 너는 인시(寅時)에 태어난 것이 맞다’고 하셨다. 나는 나의 출생시각이 새벽 3시에서 5시 사이인 ‘인시’가 맞을까, 5시가 조금 넘은 ‘묘시’ 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집에 시계가 생겼을 때 해가 뜨려고 앞산마루가 희끄무레하게 밝아 오는 시간이 5시 무렵인 것을 확인하고는 나는 인시에 태어난 것임을 완전히 믿었다.


오늘도 농경인은 해야 할 일이 많다. 잔디밭에 그늘을 만들어 줄 대형 파라솔을 설치해야 하고, 잔디밭 대형 화분에 심다가 모자란 흰색 데이지 꽃도 추가로 구매해서 심어야 한다. 맥문동 심을 곳의 땅을 파고 일구어 놓아야 하고 아침 주식인 사과도 떨어졌으니 시장에 가서 사과도 사 와야 한다. 오후에는 산책길인 제방 둑길을 따라 길게 심어진 매실나무 꽃들이 다 피었는지 가봐야 한다. 1주일 전에 꽃망울이 맺힌 녀석들이 꽤 보였는데 그 사이에 만개하고 일부는 꽃이 떨어졌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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