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촌사람

by 프로스윤

예정에 없던 일정이 갑자기 생겨서 어제 서울 집으로 왔다. 예정에 없었지만 스스로 만든 것은 맞다.

일주일째 계속되는 편두통에 잠을 잘 자지 못하는 날이 많아서 우선 신경과에 가서 치료를 받기로 했다. 심한 두통은 아닌데 한쪽 머리가 띵하고 무거워서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이 연속되니 그냥 내버려 두기가 아무래도 찝찝해서 어제 부랴부랴 신경과에 예약을 했다. 심한 두통은 아니어서 그냥 참아보려고 하다가 마침 점심이나 같이 하자는 선배의 연락도 있어서 다른 날로 잡을까 하다가 병원도 가볼 겸 해서 바로 오늘로 점심약속까지 잡았다.


최소한 두 개의 약속은 있어야 강화에서 서울로 온다. 할 일 없이 서울에 올 필요는 없고 가급적 강화에 머무는데 그러다 보니 한 달에 2/3 이상을 강화에서 지낸다.

이러니 완전히 촌사람 다됐다. 정원에서 잡초를 뽑거나 일을 할 때 얼굴에 선크림을 바르는 것이 번거로워 매번 빼먹었더니 얼굴이 시꺼멓게 됐다. 서울의 햇볕보다는 강화의 햇살이 더 강한지 얼굴이나 살이 금방 탄다. 팔이나 다리를 걷어 보면 정말 새까만 것이 타지 않은 부분과 대비된다. 얼굴, 목, 팔, 다리 모두 새까맣다. 이렇게 촌로의 모습으로 서울 집 커뮤니티의 지하 샤워장에라도 가면 금방 표시가 난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피서 갔다가 온 것으로 여길지도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의 살색과 정말 비교가 된다. 그래도 피서를 갔다 와서 건강한 살갗이라고 우길 수도 있고 아무도 왜 그렇게 까맣냐고 묻지도 않으니 정말 좋다. 대도시 생활의 좋은 점은 이런 익명성이다.


2002년에 제주에서 서울로 온 이후 1년의 중국생활을 제외하고는 전부 서울에서 생활하였고 모두 아파트에서 살았다. 23년 동안 3번의 이사를 하였지만 알고 지내는 이웃은 전무하다. 그래도 재건축하기 전의 12층짜리 아파트 10층에 살 때에는 복도식 아파트여서 엘리베이터 앞에서 이웃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라도 했다. 특히 신앙심이 돈독한 참 선하게 생긴 부부는 우리 부부를 만나면 함께 교회라도 갔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레 말하기도 했다. 그분들도 같이 교회에 가자고 말한 사람은 우리 부부밖에 없다고 하면서 같은 아파트에 살아도 말을 섞는 경우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분들의 권유에 따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저층 아파트에 사니까 이런 모습도 있었다. 그러나 재건축 후 30층 고층 아파트로 옮기면서는 이웃이라고는 옆집 한 집 밖에 없다. 각 층에 두 세대가 있고 엘리베이터도 두 개가 있으니 얼굴 마주칠 일도 거의 없다. 물론 아주 가끔 얼굴을 보기는 하지만 그냥 가볍게 목례만 하고 지나간다. 길에서 만나면 사실 누구인지도 구분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 편하기는 한데 뭔가 항상 허전했다.


그러다가 강화로 가면서 이런 생활은 완전히 변했다.

길고양이도 놀러 오고, 산제비도 와서 짹짹 인다.

옆집 사장님은 매번 김치며, 호박, 고추도 가져다준다. 어제는 함께 고구마를 캐자고 했는데 몸이 좀 불편해서 거절했는데 아직도 미안하다.

빨리 일정을 마치고 강화로 돌아가고 싶다. 촌사람은 촌에 살아야 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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